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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산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꾸준히 가파르고 험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해요. 눈내린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기분은 참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웬 바람이 그렇게 부는지! 무척 애를 먹었지만 퍽 남다른 구경을 하고 왔지요.
▲ 바람재 가는 길 꾸준히 가파르고 험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해요. 눈내린 산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기분은 참 재미있었어요. 그러나 웬 바람이 그렇게 부는지! 무척 애를 먹었지만 퍽 남다른 구경을 하고 왔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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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새해 첫날! 새벽 4시에 일어나 해맞이 준비를 합니다.

자전거 동호회 금오바이크(http://www.kumohbike.com) 식구들이랑 구미 천생산에서 해맞이를 하고, 경북 김천 바람재에 가기로 했어요. 해마다 자전거를 타고 해맞이하러 갔다고 하는데, 올해에는 모두 걸어서 가기로 했지요. 걸어서 산에 가본 지가 꽤 오래된 우리는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올라가보니 그다지 힘들지 않았어요. 아마도 지난 한 해 동안 꾸준히 자전거를 탄 덕이었지 싶어요.

이삼일 동안 날씨가 꽤 추웠는데, 이른 새벽에 올라간 산에서는 더 춥더군요. 천생산 꼭대기에는 벌써 해맞이 행사가 시작되었어요. 구미시와 ‘천생산성보존회’에서 준비한 이 행사에는 구미시장님(남유진)이 나와서 한 해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천룡사풍물단’이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매우 흥겹게 문을 열었어요.

구름 속에 가려져 빠끔히 얼굴을 내미는 붉은 해를 보면서 무엇보다 몸이 튼튼하고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기를 기도했답니다. 올해에도 꾸준히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닐 텐데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황상동 부녀회에서 마련해준 떡국까지 맛나게 먹고 산에서 내려와 이젠 경북 김천 바람재로 갑니다.

구미 천생산에서 새해를 맞이했어요. 붉은 해가 구름에 가려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어요.
▲ 해돋이 구미 천생산에서 새해를 맞이했어요. 붉은 해가 구름에 가려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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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참! 바람재, 이름값을 톡톡히 하네

늦게까지 일하느라고 밤잠을 못잔 사람, 당직이라 새해 첫날부터 일터에 가야 하는 사람을 빼고, 네 사람만 함께 가게 되었어요. 김천에는 내가 어렸을 때에도 눈이 많이 내렸던 걸로 기억해요. 3월까지 골목 귀퉁이에 치워둔 눈덩이가 얼은 채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오늘은 구미에서는 올겨울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눈 구경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어서 무척 설레고 신이 났답니다.

김천에 들어서니, 저 멀리 황악산에는 생각대로 눈이 쌓여 하얗게 보였어요.

매우 조심스럽게 타야 했어요. 바퀴 자국이 깊이 난 곳에는 얼어있는 곳도 많았지요.
▲ 찻길에도 눈이 쌓여 매우 조심스럽게 타야 했어요. 바퀴 자국이 깊이 난 곳에는 얼어있는 곳도 많았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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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멋지다. 오늘 눈티비(눈길에 산악자전거를 타는 걸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대로 하겠는 걸!”
“그러게요. 구미에선 꿈도 못 꿀 일이네요.”


함께 간 사람들도 우리만큼 기뻐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구미에서는 몇 해 동안 눈이 쌓인 걸 본 적이 없어요. 그저 먼지처럼 한두 번 날리다가 말았거든요.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찻길에도 눈이 쌓여있고, 벌써 차들이 지나간 자리는 조금씩 얼어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바퀴를 굴려 갑니다. 바람재로 들어설 때까지 찻길조차도 오르막이라 꽤 힘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바람재에 올라가는 길에 들어서니, 웬 바람이 그렇게나 많이 분대요? 아랫마을과는 온도 차이도 꽤 많이 나는 듯했어요.

오늘 김천에서는 해맞이 행사를 이 바람재에서 했다고 하던데, 소복이 쌓인 눈길에 자동차 바퀴 자국이 여럿 나 있었어요. 몇 번이나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조심조심 올라가는데, 길도 길이지만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몹시 애를 먹었어요. 자전거를 탄 채로 밀려나갈 듯했어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세찬 바람에 떠밀리듯 가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했어요.
▲ 능선을 따라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세찬 바람에 떠밀리듯 가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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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마을이에요. 산골 마을에 하얀 눈이 쌓여 더욱 멋진 풍경이었답니다.
▲ 김천 대항면 어느 마을 산 속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마을이에요. 산골 마을에 하얀 눈이 쌓여 더욱 멋진 풍경이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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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개에서 산에 갔다가 오는 사람도 여럿 만났는데, 우리를 보고 저마다 매우 놀라워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모두 대단하십니다. 길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하세요.”


새해 첫날, 산길에서 낯모르는 이들을 만났는데도 이렇게 서로 복을 빌어주고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분들이 퍽 고맙고 살갑게 느껴졌어요.

날씨는 춥고 길도 오르막인데 무엇보다 바람과 싸우며 올라가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바람에 휩쓸려 눈보라가 치는데 그야말로 살갗을 에는 듯했어요.

“꼭 옛날 효자이야기에 나오는 그런 날씨인 것 같아요. 왜 거 있잖아요. 어린 아들이 병든 아버지한테 해드릴 약초를 구하려고 한겨울 눈보라를 맞으면서 무르팍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헤매다가 끝내 숨졌다는 얘기 말이에요.”
“정말 그러네요. 바람재라더니, 참말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네요.”


바람재 꼭대기까지 해발 1100m가 넘는다고 하네요. 아직 갈 길은 멀고 길도 온통 얼어붙어 움푹움푹 골이 패여 있어서 어지간한 기술로는 잘 올라갈 수 없어요. 모두 잘 가는데, 나는 힘든 길이 나오면 내려서 끌기도 하면서 꾸준히 올라갔어요.

산 중턱에 바람재 2.0km 라고 쓴 알림판이 있었어요. 그런데 삐걱거리는 소리도 나고 왠지 을씨년스러웠어요.
▲ 알림판 산 중턱에 바람재 2.0km 라고 쓴 알림판이 있었어요. 그런데 삐걱거리는 소리도 나고 왠지 을씨년스러웠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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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돌탱이길, 끝없는 오르막길, 참말로 힘들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찌 저리도 잘 가누! 애고 힘들어! 아, 그리고 길이 마치 빗자루로 싹 쓸어놓은 듯하지요? 이게 모두 바람 때문이랍니다. 세찬 바람이 이렇게 말끔하게 쓸어놓고 갔어요.
▲ 애고, 힘들어! 눈길, 돌탱이길, 끝없는 오르막길, 참말로 힘들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찌 저리도 잘 가누! 애고 힘들어! 아, 그리고 길이 마치 빗자루로 싹 쓸어놓은 듯하지요? 이게 모두 바람 때문이랍니다. 세찬 바람이 이렇게 말끔하게 쓸어놓고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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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꽃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다

“아! 저기 좀 봐요. 눈꽃이에요!”
“야, 정말 멋지다! 어디 가서 이렇게 멋진 걸 보겠어요.”


꼭대기가 가까울수록 바람은 더욱 세지만,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나무마다 굉장히 아름다운 눈꽃이 피었어요. 눈보라를 헤치며 바람을 견뎌 예까지 올라왔는데, 눈앞에 펼쳐진 온통 하얀 눈꽃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와요. 눈꽃에 온통 정신이 팔려 힘 드는 줄도 몰랐답니다. 남편은 이제 아예 끌고 가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찍느라고 바빠요.

저 멀리 우리가 백두대간 랠리 때에 가보았던 궤방령과 우두령까지 이어지는 능선에도 온통 하얀 눈이 쌓여있어 매우 아름다웠어요. 아마 온 삶을 살아도 이런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요. 더구나 구미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지요.

바람재 꼭대기에 올라가니 벙커가 있어요. 지난날에 미군들이 쓰던 곳이라고 하네요. 여기에서 바람을 피해 잠깐 동안 쉬면서 빵이랑 초코바를 먹었어요. 힘든 끝에 먹는 거라 어찌나 맛있던지 무척 행복했답니다.

이젠 아예 끌고 갑니다. 온통 하얀 눈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온 삶을 살아도 이런 풍경 다시 볼 수 있을까? 더구나 이렇게 힘겹게 올라와서 맞는 멋진 풍경을...
▲ 하얀 눈꽃에 흠뻑 빠져 이젠 아예 끌고 갑니다. 온통 하얀 눈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온 삶을 살아도 이런 풍경 다시 볼 수 있을까? 더구나 이렇게 힘겹게 올라와서 맞는 멋진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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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로 우리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아찔해요. 저렇게 힘든 길을 올라왔다니... 그러나 산위에서 보는 풍경은 참 멋지네요.
▲ 바람재에 올라서서 산 아래로 우리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아찔해요. 저렇게 힘든 길을 올라왔다니... 그러나 산위에서 보는 풍경은 참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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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다! 브레이크도 못 잡겠네!

이 사진은 올라가면서 일부러 내려오는 걸 연출해서 찍은 사진이에요. 그런데 아뿔싸! 그 사이 눈이 더 쌓여 바로 앞에 보이는 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답니다. 쿵~!!!
▲ 눈길 이 사진은 올라가면서 일부러 내려오는 걸 연출해서 찍은 사진이에요. 그런데 아뿔싸! 그 사이 눈이 더 쌓여 바로 앞에 보이는 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답니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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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어요. 해가 떨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더 추울 테니 서둘러야 했어요.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요? 내려갈 채비를 하며 장갑을 끼었는데, 그야말로 얼음장이었어요. 손에 끼는 순간 뼛속까지 시린 느낌이 밀려오는데 큰일 났어요. 아까 잠깐 쉬면서 장갑을 벗어 놓았는데, 겨울철엔 품속에 넣어둬야 한다는 걸 깜빡 잊었던 거예요. 올라올 때 손은 시리지만 힘을 쓰기 때문에 장갑 안에 땀이 차 있어요. 그게 식으면서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게지요.

손이 꽁꽁 얼어서 굳었어요. 가파른 내리막 눈길을 가려면 브레이크 조절을 잘 해야 하는데 덜컥 겁이 났답니다. 모두 한참 동안 손을 품에도 넣었다가 비비기도 하면서 가까스로 녹인 뒤에 다시 탔지만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어요.

“어! 어! 어!!!!!!!!!!!!!!!!!”
“쿵!…”


지금까지 아무리 험한 길을 가도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던 남편이 그만 눈 속에 파묻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어요. 그것도 아까 올라올 때 아름다운 눈꽃에 흠뻑 빠져 부지런히 사진기를 눌러대던 바로 그곳이었어요. 그 사이에 눈이 더 쌓여서 눈 속을 가늠할 수 없었던 거예요. 다행히 미끄럽고 내리막이라 천천히 내려왔기 때문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다리를 절룩거려요.

끌다가 타다가 하면서 가까스로 바람재 고개를 내려오니, 그렇게나 모진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던 게 거짓말처럼 잠잠해요. 바람도 눈보라도 말끔히 사라졌어요.

“어째 산 위에하고 이렇게 다르냐? 지금 여기서 봐도 저 산 꼭대기가 그렇게 험한 날씨인 줄 누가 알겠어?”
“애고, 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잔차 타고 추워서 고생한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아이고, 그러게 말이에요. 아까는 산에 가서 조난당했다는 사람 심정을 알겠더라고. 내가 딱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


“어쨌거나 모두 애 쓰셨어요. 무사히 잘 내려왔으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다친 데는 괜찮으세요?”
“그럼요. 무르팍 조금 깠을 뿐이에요.”
“오늘 다들 대단하십니다. 눈티비 처음 탔는데도 이만하면 잘 하신 거예요.”


함께 갔던 장인표(닉네임 알짱)씨는 아무 탈 없이 험한 산을 내려온 게 다행이라고 하면서 격려해주었어요. 사실 오늘 함께 간 세 사람은 거의 초보나 다름없고 더구나 눈길에 자전거를 타는 건 모두 처음이었거든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를 이끌고 가셨던 선배님이 날씨가 너무 험해서 말은 안했어도 꽤나 걱정했을 거예요.

“아, 그래도 오늘 정말 좋았어요. 눈 구경도 실컷 했고, 아마 오늘 같은 구경은 두 번 다시 못할 거예요.”

저마다 험한 바람재에 올라가 매우 힘들었지만 멋진 풍경까지 보고, 눈보라와 세찬 바람을 견디며 바람재 꼭대기까지 다녀온 걸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모른답니다.

“오늘 사진을 보면, 우리 회원들 같이 못 온 걸 몹시 후회할 걸요?”
“하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실컷 약 올려야지!”




  

덧붙이는 글 | 새해맞이 이야기를 먼저 쓰느라고 예천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 바로 이어갑니다.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바람재, #금오바이크, #눈길, #자전거,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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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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