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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8일, 학교의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버스에 몸을 싣고 태안 모항항으로 갔다. 모항항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20분, 이미 방제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서 한창 기름을 제거하고 있었다.
 
이미 TV에서, 인터넷에서 심각한 상황임을 알고 왔기에 모두의 마음은 내 손으로 깨끗한 바다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재빨리 장비를 갖추고 모항항 깊숙이 들어갔다. 그 현장에서 나는 가슴 아픈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들어갈 수 없는 바다, 그러나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태안반도는 매년 1800만여 명이 찾아왔던 우리나라의 하나뿐인 해안국립공원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름 띠가 검게 둘러져 차마 국립공원이라 할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놓여 있다. 주변 횟집은 무기한 휴업을 선언했고, 굴이 담긴 대야에서는 썩은 내가 심하게 진동한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관광객 못지 않다. 태안군 해안 기름유출 대책본부 관계자는 28일 모항항을 찾은 사람 수만 4000명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수치였다. 봉사자들이 아니었다면 태안반도에는 회복의 가능성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관광객이 찾아오기엔 너무도 심각한 상황이다. 하루 빨리 기름 띠를 제거해서 앞으로는 자원봉사자들보다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태안이 되길 소망해 본다.

 

이미 70%는 진척되었다지만... 70%보다 더한 30%

 

태안군 해안 기름유출 대책본부 관계자는 “모항항은 70%가 진척된 상태”이며 “나머지 30%는 바위와 자갈의 기름을 닦는 작업, 모래 속에 묻힌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옷더미가 잔뜩 쌓여있는 곳에서 연로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낫으로 옷가지를 베고 있었다. 각자 옷이 담긴 자루를 들고 30%를 위해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70%가 진척되었고, 철새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모항항에서는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4시간 이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날 때도 닦아낸 바위는 닦기 전과 별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게다가 밀물이 들어오면 이미 닦은 바위에 또다시 기름이 묻어 다음 날 같은 작업이 반복된다고 했다.

 

태안이 원래 모습을 찾는데 20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70%는 30%에 비하면 순식간에 진척된 셈이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30%를 위해서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절실하다.

 

옛날에는 돌에다 빨래를 세탁했다지만, 지금은...

 

모항항에 들어간 뒤 다같이 자리를 잡고 옷으로 바위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문질러도 바위는 기름 때에 검은색 그대로였다. 게다가 바위 표면이 매끈하지 않은 탓에 옷이 자꾸 바위에 걸려 닦기가 쉽지 않았다.

 

위를 올려다 보니 붉은색 바위가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언제쯤이면 이 바위도 저렇게 고유의 색을 되찾을 수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열심이었다.

 

더 힘을 주어 박박 문질러 보니 붉은색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나 혼자만의, 몇 시간동안의 노력은 바위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았다.

 

문득 몇십 년 전 세탁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예전에는 강가에서 커다란 돌에다 옷을 놓고 빨랫방망이로 두들겨 세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태안에서는 커다란 돌에다 옷을 놓고 옷이 아닌 돌을 세탁하고 있다. 강가에서 빨래하던 할머니들은 태안의 사태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다.

 

한국에선 땅을 파도 기름이 나오지 않는다지만, 태안에서는...

 

바위를 닦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른 방법으로 기름을 제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굴착기가 땅을 파면, 사람들은 그 안에 고인 기름을 옷으로 문지르거나 그 안에 흡착포를 넣었다. 옷과 흡착포에 흡수된 기름이 새까맣게 묻어나왔다.

 

열심히 바위를 문지르고 있는데, 옆에서 다른 자원봉사자가 말했다.

 

“어이, 여기 땅 파니까 기름이 잔뜩 나온다. 바위 그만 닦고 이리로 와봐.”

 

한국은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다. 그래서 아무리 땅을 파도 기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태안은 다르다. 태안에서는 깊숙하게 땅을 파지 않아도 까만 기름을 볼 수 있다. 나는 땅을 파지 않아도 기름이 가득한 한국 태안에서 더욱 힘주어 바위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에이, 겨우 굴 정도야... ‘생명파괴’ 불감증에 걸리다

 

갑자기 바위를 문지르던 친구들이 어느 커다란 바위 앞에 몰렸다. 한 친구가 돌로 바위를 쳤더니, 조각이 튀어 나오면서 굴의 하얀 속이 드러났다. 그 옆에는 기름이 묻어 죽어버린 굴들이 새까맣게 바위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굴들이 무참하게 엉겨 붙어있는 바위를 보며 내가 생각한 것은 ‘에이, 겨우 굴이잖아’였다. 바위를 닦으면서도 죽은 굴 때문에 닦기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생명이 파괴되는 일에 무감각한 ‘생명파괴’ 불감증에 걸려있었다.

 

TV와 신문 사진에서는 기름이 묻어 죽은 새, 물고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죽은 돌고래 까지 사진에 실렸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굴 따위 생물들이 떼로 죽어있어도 덤덤하게 된 것이다.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떠난 태안에서 생명 파괴에 무감각한 내 모습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오염 제거하는 자원봉사자들, 2차 환경오염의 가능성?

 

4시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한 채 현장을 떠났다. 모항항 출입구에 쓰인 ‘해상 국립공원, 쓰레기 투기 금지 및 감시구역’ 앞에는 폐기물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봉사활동을 마친 봉사자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제대로 점심 저녁을 챙겨 먹지 못해 힘들지만 보람찬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수천명이 다녀가는 모항항을 포함한 태안반도는 2차 환경오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많은 봉사자들이 현장 내외에서 컵라면과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먹고 남긴 쓰레기다.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흔적을 잘 정리하는 가운데 간혹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이 눈에 띈다. 도우려는 마음을 갖고 태안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또 다른 환경오염의 주범이 될 수 있음을 더더욱 주의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2차적 오염의 가능성을 없애야 할 것이다.

 


태그:#태안 , #기름 유출, #자원 봉사, #아이러니,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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