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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부인 김윤옥씨가 19일 저녁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부인 김윤옥씨가 19일 저녁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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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예상대로 '경제대통령' 이명박 후보가 역대 최대의 표차로 당선되었다. 주요 언론들은 "이변은 없었다"로 기사제목을 통일시킴으로써 이 모든 정황을 확증해주었다. 그러나 왜 이런 결과가 1년 전부터 예상되었는지, 이런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처한 위치와 견해에 따라 진단이 판이한 듯하다. 당연한 일이다.

환경과 생태를 중심가치 삼아 사는 이의 눈도 예외는 아니다.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 현 정권 심판 등의 주류 논리와는 조금 다른 척도로 이번 17대 대선 결과를 응시하게 된다.

국민은 '보수'나 '반 노무현'이 아닌 '이명박' 선택

무엇보다도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보수가 진보에게(혹은 우파가 좌파에게) 압승했다'는 흔한 평가다. 진보와 좌익을 어떻게 규정을 하더라도 이런 평가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우선 대통합민주신당을 진보로 보기는 어렵다. 민주세력, 개혁세력, 중도세력이라면 몰라도 이라크 파병을 하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 세력을 진보 좌파라고 말하기엔 역사적으로 규정된 그 개념이 너무도 명료하기 때문이다.

문국현 후보는 조금 진보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철저한 정치신인인 그에게 한나라당이 이 정도 표차를 벌이지 못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변이었을 것이다. 끝으로 민주노동당을 진보 좌파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민주노동당에 압승했다는 분석은 좀 엉뚱하지 않은가?

다음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평가다. 현 정권이 진보든 보수든 우익이든 좌익이든 간에 너무도 정치를 못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들은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주는 듯도 하다.

과거에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했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지한 후보도 이명박,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지한 후보도 이명박, 범여권 후보들이 단일화를 한다고 가정해도 1위는 역시 이명박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범여권에서 누가 나왔더라도 한나라당의 어떤 후보에게든 패했을 것이며,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찍은 것이라기보다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심판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하필 이명박인가? 지난 1년간의 여론조사에서 단 한 번도 박근혜가 이명박을 앞선 적이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되는가? "BBK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이명박을 찍겠다"는 70%의 여론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국민들은 진보가 싫어서 보수에게, 혹은 노무현이 싫어서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것이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명박이라는 인물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현 집권세력이 키워준 경제대통령

애를 쓰는 이유가 단지 자신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엄연한 흐름 앞에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바로 '경제지상주의'라는 흐름 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가치가 배금주의인 것이야 주지의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그것이 극도로 노골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IMF를 겪고서부터였다.

TV 광고에서 "부~자 되세요"라고 권유하면 시청자들은 그대로 따라했고, 물질적 성공을 최고 우위에 두는 것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상식이 되었다. 모두가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를 했거나 하기를 원했으며, 100%의 우익과 대략 90%의 좌익은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수의 사람들이 골프를 치거나 치기를 원했으며,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SUV와 최신 핸드폰으로의 바꿈질을 멈추지 않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우익은 가진 자들만의 물질적 풍요를 추구한 반면 좌익은 모든 이의 물질적 풍요를 추구했다는 것뿐이다.

한국진보연대는 IMF 10년을 맞이한 11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IMF 10년, 민중생존권.노동기본권 해결을 위한 500인 시국선언'을 했다.
 한국진보연대는 IMF 10년을 맞이한 11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IMF 10년, 민중생존권.노동기본권 해결을 위한 500인 시국선언'을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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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취임 직후부터 IMF 체제 극복을 외쳐야 했던 것이 바로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세력이었다는 것에서부터 현 여권의 딜레마는 비롯된다. 집권기간 10년 내내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한나라당과 다를 게 뭐냐"는 좌파의 비판에 시달리며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적극 추진해왔다.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서 그 결과가 외적 성장과 양극화 심화라는 두 얼굴로 나타나리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했다. 그리고 사민주의적 해결책이 지극히 낯설기만 한 국민들에게 이의 극복방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더 높은 성장, 더 많은 생산, 더 심한 경쟁을 통한 파이 키우기 외에는 달리 없을 것이라는 점도 슬프지만 사실이다.

애초부터 꼭 이렇게만 될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이 나라에도 웰빙이니 삶의 질이니 하는 가치관이 고개를 들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발판 삼아 이제는 북유럽형 복지국가로 나가자는 프로그램까지 지식인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논의 되었었다.

그러나 IMF 사태를 계기로(혹은 빌미로) 현 집권세력은 전혀 다른 비전을 추구해왔으며 자발적인 한미 FTA로 정점에 이르게 된다. 일부 비판세력이 줄기차게 뭐라 했지만 결코 듣지 않았다. 한 마디로 전 국민의 머릿속에 경제지상주의를 심어준 장본인은 다름 아닌 현 집권세력이었으며, 그리하여 내일의 경제대통령을 키운 것도 그들이었다.

모두가 물질적 풍요만을 열망하게 만들어놓고서 정작 자신은 이런저런 이유로 그 많던 인기를 다 까먹었으니 제1야당의 '경제대통령 후보'에게 몰표가 쏠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

인기를 잃은 원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이제 와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부차적일 뿐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과연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인지조차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정치권의 거의 모두가 경제지상주의, 성장지상주의의 전도사로 활동하는 한 사태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명박 당선자가 '경제 살리기'에 실패한다면 다른 사람이 나서서 적임자를 자처할 것이며 국민들은 그 사람을 또 뽑을 것이다. 그렇게 신자유주의와 물신만능풍조는 계속 극단화할 것이며, 여야 간에 차이가 있다면 엄청나게 파생되는 부작용들을 얼마나 돌아봐 주느냐 정도겠지만 병 주고 약 주고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그리고 누구보다 앞서서 이에 대응해야 할 민주노동당이 명목상의 반대를 넘는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늘을 더한다.

성장의 시대, 과연 지속 가능한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본질적인 문제는 설령 모든 부작용을 보듬어 안으면서 분배를 겸비한 성장을 추구한다 하더라도(아마도 문국현 후보의 비전이 이런 것인 듯하다) 그것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지구온난화다.

대선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환경 문제를 꺼낸다면 뜨악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정치와 환경은 그렇게 멀리 떨어진 이슈가 아니다. 약 1개월 전 실시된 호주 총선에서 환경 문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케빈 러드의 노동당이 호주 역사상 보기 드문 압승을 거두며 존 하워드의 11년 6개월 체제를 종식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케빈 러드가 총리에 취임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10년간 미뤄왔던 교토의정서에 서명한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는 사실은 2007년 인류가 거둔 최대의 자각으로 꼽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해결책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이 아직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주변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는 반응의 대부분은 "저 먼 북극에서 얼음이 녹는다더라, 2100년이면 뭐가 어떻게 된다더라, 정부가 어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냐, 과학자들이 좋은 신기술을 개발하겠지" 중 하나다.

과연 그럴까. 이 역시 한 가지 사실만 소개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2040년이 되면 북극의 얼음이 다 녹을지 모른다"던 과학자들이 1년 만에 말을 완전히 바꾸어 "5년 안에 다 녹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NASA에서 발표한 최신 위성자료 분석 결과다. 기상이변의 추이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증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언급하면서 아직도 2100년이며 다음 세대를 운운하는 사람은 물정을 전혀 모르는 셈이다.

지구 온난화로 연신 허무하게 허물어지는 빙하 (자료사진)
 지구 온난화로 연신 허무하게 허물어지는 빙하 (자료사진)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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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지금과 같은 물질적 풍요를 그대로 누리면서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비책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반대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진다. 아예 경제적 성장을 멈춰야만 한다는 것이다.

탄소배출권 거래나 대안 에너지 개발도 단지 이러한 생산을 저러한 생산으로 대체하는 것뿐이지 지속적인 성장을 보증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대재앙을 막기 위해 최소한 경제선진국들이라도 가급적 빨리 경제성장을 중단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국민은 2007년 대선에서 정반대의 미래를 희망했다.

지구온난화를 막는 실천이 지금 당장 아무것도 안 먹고 안 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영역의 전반에 걸쳐 근대산업사회로의 이행 못지않은 대혁신을 초래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최소한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하를 파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식이 될 것만은 확실하다. 어쩌면 성장지상주의를 완전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성장지상주의자 대통령을 선택했다. 크게 다른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세력이 현재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이다.


태그:#이명박, #지구온난화,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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