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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연(가명. 15살)이가 혼자 우체통을 만들어 골목 밖에 세워 보겠다고 하여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우체부가 오시면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고 우편물을 바로 꽂아 둘 수 있도록 하자고 우체통을 세울 위치도 정했다.

필요한 공구를 챙겨 주었다. 톱과 망치, 그리고 못 통과 줄자, 기억자와 연필도 주었다. 좀 있다 가 보니 내가 책꽂이 만들려고 고이 보관하고 있던 두꺼운 송판을 갖다 톱으로 가운데를 북북 자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다른 목재를 갖다줬다.

우체통을 만들기로 한 종연이가 못질을 하고 있다.
▲ 우체통 우체통을 만들기로 한 종연이가 못질을 하고 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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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망치소리가 탕탕 나서 또 가 봤다. 못이 계속 휘어지고 안 들어 가니까 다시 빼는데 망치 뒷 머리로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서 빼는 줄을 모르고 줄다리기 하듯이 우격다짐으로 못 머리를 걸고 당기기만 하니 못이 빠지지가 않는다. '망치 뒤 머리를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우체통 하나 만드는 거야 쉬울 줄 알았나 보다. 우체통의 폭이나 높이, 우편물 여닫이 문짝의 위치 등 설계도를 먼저 그린 다음 어떤 종류의 목재가 어느 만큼 들지 이른바 '물목'을 뽑고 일을 시작하라 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자르고 박고부터 한다.

그렇지만 재미가 단단이 붙었다. 맨손으로 작업을 시작했었는데 어느새 장갑도 끼었고 눈이 제법 쌓여 있는 곳인데도 슬리퍼를 찍찍 끌면서 어설프게 일을 하던 종연이는 어느새 운동화로 바꿔 신고 있었다. 무릎을 꿇어 나무를 눌러 톱질도 하고, 가르쳐 준대로 펜치로 못 머리를 물고 망치질을 했다.

<스스로세상학교>는 생활원칙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모든 것을 스스로 살고 있는 곳에서 선생님과 해결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집에 연락을 하되 전화를 하지 않고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자편지가 아니고 일반 우체국 편지다.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종연이가 우체통을 이쁘게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나절이 걸려 종연이가 완성해 놓은 것은 못 하나 박힌 각목 하나였다. 우체통 기둥 할 거라고 하는데 땅바닥에 어떻게 세울 것인지, 우체통은 뭘로 만들 것인지, 언제 우체통을 완성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종연이도 씩 웃기만 했다. 하다보면 될 거라고 여전히 큰소리를 치더니 춥다면서 아궁이에 불 때겠다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태그:#스스로세상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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