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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삼성비자금 특검법'이 통과됐습니다. 사실 특검법 통과는 정동영·문국현·권영길 3자회동에서 통과될 것이라는 점이 이미 예측됐던 바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눈에 띄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바로, '당선축하금'이라는 부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입니다. 애초에 이 부분을 법안에 삽입할 것을 주장한 이들은 한나라당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통합민주신당 측이 순순이 받아들였다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애초에 청와대는 '보충성과 특정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검법 재검토를 촉구하면서 '공수처법 통과'를 주문했습니다. 이 법이 통과돼야만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공수처법'의 '공'자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155대 17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특검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여당에서 새로운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면, 여당의 핵심은 아무래도 새 후보로 쏠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기존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거나, 신참자가 고참자를 코너로 몰아버리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때 위기로 몰았던 적이 있습니다.

 

청와대가 이야기하는 '공수처법'이란 무엇일까

 

'공수처법'이란, '공직자부패수사처'를 설치하자는 법입니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전담해 수사하는 기관을 따로 설립하자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국가청렴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던 법으로서, 실질적으로 정치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상이 강한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명분을 안고 있습니다. "검찰의 중립과 독립을 위해 오히려 필요한 기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검법'이나 '공수처법' 모두 검찰을 불신하는 풍조에서 비롯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특검법'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것이라 믿으면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한 법. '대북송금 특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장이 큽니다. '공수처법'은 '특검법'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일종의 '시스템화'를 추구하는 법입니다.

 

사실 이런 기구는 홍콩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홍콩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국가부패예방국'이라는 기구를 신설했던거죠. 우리나라의 법무부 장관 격인 중국 국무원의 감찰부장이 국장을 겸임하는 식의 시스템을 법제화한 것입니다.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항시적으로 감시하고 수사하겠다는 뜻은 참으로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수처법'이 논란을 안고 있던 이유는, 바로 '기소권'과 '독립성'의 문제. '기소권'이야말로 검찰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신설기관에도 독립적으로 보장해준다면 검찰의 반발은 안봐도 훤한 일인 것입니다. 게다가,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은 율사 출신이기도 합니다.

 

'공수처법'에 반대하는 측에선, "공직자부패수사처는 대통령 직속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배치될텐데, 그래서야 어떻게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비리를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을 합니다. 오히려 공직자부패수사처가 검찰보다 더더욱 정치권력에 예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죠.

 

양쪽 모두 일리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청와대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비자금 수사 특검에 뜬금없이 공수처법이 왜 나오냐"는 반응을 보입니다. 별개의 문제라는 뜻이겠죠. 어쨌든, 첨예한 문제입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무력화시킨 '삼성 특검법'의 핵심사안

 

지난 5년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사이가 좋지 않은듯한 모습을 자주 보였지만, '이라크 파병안'이나 '한미 FTA' 등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호흡을 과시했던 적이 있습니다. 보수언론도 이례적으로 청와대를 칭찬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삼성 비자금 사태'에 있어서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큰 틀에서는 호흡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내각의 정성진 법무장관이 '삼성 특검법'에 대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및 비례원칙(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 등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 즉 잘못한 죄에 대응되는 벌 이 너무 과중할때 비례원칙 위배를 들어 그 벌을 무효화 시키는 원칙)에 위배되고 국가신인도 타격이 예상된다"는 반응을 보임으로써, 청와대의 속내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애초에, 대통합민주신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이 합의한 특검법 원안은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발행, 증거조작, 증거인멸교사 등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상속 의혹사건과 관련된 사건'입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였다가 4시간 후에 번복해버렸습니다. 한나라당이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거죠.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핵심 의혹 중에 하나가 바로 저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임에도, "이미 수사와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별도의 특검이 실시되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번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어진 협상 끝에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와 관련된 수사 및 재판 과정에 있어서의 불법행위 의혹과 수사방치 의혹을 받고 있는 4건의 고소·고발 사건'으로 변경됐다고 합니다. 4건의 사건은 삼성에버랜드와 서울통신기술의 전환사채 발행,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e삼성 회사지분거래 등으로써, 말이 대단히 애매해졌습니다.

 

3당이 합의한 원안의 핵심은 바로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상속 의혹사건"인데, '위한'이 '관련된'으로 바뀌면서, 사건의 범위도 '4건의 고소·고발사건'으로 축소됐습니다. 핵심을 비켜간 법안이란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002 대선자금'이라는 키워드가 강해졌습니다. 원안과 수정안의 미묘한 어구 차이를 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전자가 원안, 후자가 수정안입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삼성그룹이 불법 비자금을 조성하였다는 의혹 및 그와 관련하여 그 조성을 지시한 주체, 조성방법, 규모 및 사용처, 그 비자금을 이용하여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 등 정치인과 법조인, 공무원, 언론계, 학계 등 사회 각 계층에 포괄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의혹과 관련하여 지시주체, 로비지침, 로비방법 등과 임직원의 임의 사용 여부 등에 관한 사건"

 

"삼성그룹의 불법로비와 관련해 불법비자금을 조성한 경위와 그 비자금이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의혹 등 일체의 뇌물 등 금품제공 의혹사건"

 

'1997년'이라는 시기와 '정치인과 법조인, 공무원, 언론계, 학계'라는 수사대상이 빠졌고,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의 핵심인 '삼성그룹이 비자금의 조성 및 사용 행위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전.현직 삼성그룹 임직원의 은행 차명계좌를 이용하였다는 것과 관련된 의혹 사건'이라는 조항도 빠졌습니다.

 

종합적으로 보면, 핵심적 사안에 관해서는 삼성의 숨통을 틀어준 격이나 다름없어졌습니다. 게다가, 한나라당으로서는 '이회창 대선자금'을 건드릴 수 있게 된 것도 이득입니다. '당선축하금'이라는 용어까지 넣었느니, 대성공한 것입니다.

 

결국, '삼성 특검법'에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통하기는 하지만 서로 죽여야 사는' 기묘한 관계라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삼성'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는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과 같이 견해를 같이 하지만, 어쨌든 양자는 정치적 포지션 상으로는 서로를 죽여야 사는 사이인 것입니다.

 

'당선축하금'이라는 키워드에서 느껴지는 정치공학

 

저 많은 부분에서, 가장 논란이 될 부분은 '당선축하금'입니다. 대통합민주신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었을텐데, 의외로 쉽게 통과됐습니다. 특히 친노계열의 반발이 극심했을 것이라는 반응이 예상됐지만, 생각보다 쉽게 통과됐습니다. '당선축하금'과 관련된 정동영 후보 측 관계자는 "단서가 있다면 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현재, 정동영 후보는 선언까지 했던 '민주당 합당'이 틀어지면서 큰 타격을 입은 상황입니다. '민주당 합당'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황'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노무현 대통령은 '불만'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민주당 합당'은 정동영 후보가 여권의 거품을 빼면서 호남 일대의 지배권을 굳히고 맹주로 부상하겠다는 야심이 느껴지는 이슈였습니다.

 

'대통령 당선'을 떠나, '이회창 부상'이라는 돌발상황을 맞이해 혹시 선거에서 낙선하더라도 실질적인 2인자로서의 위치를 굳혀놓을 수 있는 포석이었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 대통령의 반응이 미심쩍었던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양 대통령의 입지마저 정동영 후보의 손 안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동영 후보가 140대 8이라는 비교가 안되는 살림 규모에도 불구하고 '일대일 합당'이라는 강수를 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명분상 민주당과는 함께 하기 어려운 '친노계열'과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적인 반발, 결국에는 무산됐던 것입니다. 원대한 기획과는 달리, 돌파력과 리더쉽의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당선축하금'을 '삼성 특검법'에 넣자는 한나라당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친노계열 좌장'이라는 이해찬 의원도 찬성자 명단에 껴 있었습니다. 제아무리 '친노계열'이라 해도 '삼성 특검법' 자체를 노골적으로 반대해서는 명분상 타격이 큽니다. 내년 총선을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 없는 입장입니다. 정동영 후보는 이걸 감안해 강행했을 가능성이 있는거죠.

 

위기 속에서 또 하나의 '찬스'를 찾아내려 한 것일까요? '민주당 합당'이 틀어지고, 문국현 후보가 독자노선을 강조하면서 문국현·이인제 양자와 손잡아 범여권의 대표주자로 거듭나고자 했던 꿈,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의혹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포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삼성 특검법'은 '이회창의 대선자금'과 기존 한나라당의 친재벌당 이미지를 감안하면, 정동영 후보로서는 '일거삼득'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당선축하금', 그래서 강행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정동영 후보 본인과는 상관없는 얘기거든요. 문국현·권영길 양자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참여정부 실정론'을 펴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공학'을 딛고 밝혀야 할 부정부패의 끈

 

주주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자유기업원과 전경련 주도로 전래된 경제이론입니다.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도였겠지만, 이게 발목을 잡은거죠. 얼마 안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던 총수 일가의 경영 명분이 사라지는겁니다.

 

그런 마당에, 각종 불법과 탈법까지 저질렀으니 사태가 이 지경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부분은 각 정당과 대통령 후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밝혀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특검 추천을 '대한변호사협회'가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절차가 의혹의 여지를 남겨놓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번 '삼성 비자금 사태'와 관련해 석연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

 

지금으로서는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양심고백하고 누리꾼이 여론을 모으면서, '특검법'이라는 결과까지 이뤄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아무리 획기적인 정치공학이라 할지라도, 원칙과 상식 앞에서는 허약하다는 것을 수사과정을 국민이 엄정한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상기시키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 특검법, #이건희, #김용철, #이용철, #공수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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