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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자로(子路) 13편은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공자와 섭공(葉公)의 유명한 대화를 소개하고 있다. 먼저, 섭공이 다음과 같이 말을 꺼냈다.

“제가 이끄는 무리 중에 몸을 바르게 하는 자가 있습니다. 제 아비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그것을 증언한 것입니다.”(葉公語孔子曰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而子證之.)

섭공은 아들이 아버지의 범죄를 증언하는 것을 올바른 일이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공자 앞에서 자신의 측근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자랑한 것이다.

그럼, 섭공의 말에 대해 공자는 맞장구를 쳐주었을까?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공공의 죄를 지었으면 관에 고발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을까? 공자의 대답을 들어보기로 한다.

“우리 무리 중에 있는 올바른 자는 그와 다릅니다. 아비는 아들을 위해 또 아들은 아비를 위해 숨겨줍니다. 올바름이란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孔子曰吾黨之直者異於是. 父為子隱子為父隱. 直在其中矣.)

공자는 “아무리 범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가족 간에는 서로 숨겨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받아쳤다. 설령 아버지가 남의 것을 훔쳤을지라도 아들이 공공의 법정에서 아버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한 것이다.

여기서, ‘숨겨준다’는 표현은 적극적 차원에서 범죄사실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데에 가담하라는 게 아니라, 소극적 차원에서 범죄사실에 대해 공개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관에 고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게 동아시아사회의 전통적 관념에 부합될 것이다.

그럼, 자식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면 아버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아버지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왜냐?

아버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은 효의 대상에 대한 배신행위이고, 아버지를 위해 관에 거짓 증언을 하는 것은 충의 대상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부모자식 간에 서로의 범죄에 관해 침묵을 지키는 경우에 대해서는 국가적 입장에서의 가치판단을 자제하고 그 부분을 ‘공백’으로 남겨두는 것이 동양사회의 전통이다.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개입’을 자제해왔다. 

‘아비는 아들을, 아들은 아비를 숨겨주는 것이 올바르다’는 공자의 사상은 이후 중국은 물론 한민족의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과거 한민족 왕조에서는 아버지의 죄를 관에 고변하는 자식을 불효죄로 다스리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동양사회는 이러한 가치관을 부자관계뿐만 아니라 형제관계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가족관계에까지 확대시켰다. 그래서 형이나 동생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형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이 동양적 관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국군으로 갈린 두 형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한 것은 물론 혈육애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위와 같은 관념적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혈육이 죄를 범했을 때에 취해야 할 처신에 관한 동아시아사회의 지침은 ‘가급적 침묵을 지키라’는 것이다.

20일에 한국정부는 국제연합총회 제3위원회에서 열린 북한인권결의안 투표에서 기권을 선택했다. “남북한 관계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북한인권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하기로 했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공자와 섭공의 대화는 부자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제 유엔에서의 상황에도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양을 훔쳤다고 의심을 받고 있는 혈육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은 동아시아인들의 가치관에서는 쉽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한국 형법에서 친족 간의 범인은닉죄에 대해서는 특례를 인정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사안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형제가 공공의 장소에서 비난을 받고 돌을 맞고 있는 상황 속에서 친동기가 나서서 남들과 똑같이 욕설을 퍼붓고 돌 세례를 가한다면, 동아시아의 가치관에서는 그러한 친동기를 결코 옳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자신의 형제를 도울 길이 없다면, 차라리 자리를 비키는 것이 동양적 미덕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정부가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기권표를 던진 것은 합당하고 지혜로운 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형제로서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찬성표를 던질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반대표를 던질 만한 뚜렷한 확신도 없는 상황 속에서 내려진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말은 한국이 이른 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야 한다는 말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만약 북한에 정말로 그 같은 인권문제가 있다면 한국도 그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다만, 중대한 형식적 전제가 있다. 그 전제란 무엇일까?

한국이 이른 바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하고자 한다면, 남북관계라는 일대일 공간 속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다 지켜보는 국제무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일 것이다.

죄를 범한 형제와 단둘이 있을 때에는 “너, 왜 그랬니?”라며 형제를 원망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개 법정에서는 일단 형제의 편을 들거나 아예 침묵을 지키는 것이 동아시아의 가치관에 부합한다. 이른 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취하는 것이 동아시아사회의 전통에 부합할 것이다.


태그:#북한인권, #논어, #공자, #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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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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