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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하자 새벽마다 된서리 내려 풀잎과 나무 우듬지가 눈처럼 반짝입니다. 어제까지 잎의 마지막 자존심을 고집하며 붉게 타오르던 단풍잎도 서리기운에 그만 후르르 무너져 내립니다. 올 단풍잎은 하도 붉어 찬바람이 밟고 뒹굴 때마다 선홍빛 핏물을 토해 내며 서서히 말라갑니다.

 

단풍, 은행나무, 낙엽송이 무너지고 나면 서리꽃이 피고 쏜살같이 찬바람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늦가을 붉은 열매들은 만만히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바장거리며 나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잎이 못 다한 사무침을 대신 하려나 봅니다.

 

 
 

늦가을 열매들은 붉습니다. 옷을 홀라당 벗어버린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찔레, 백당 등의 열매가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이나 동물들은 몸이 추워 옷을 껴입는 계절에 나무는 완전히 털어버리고도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뒹굴던 낙엽들이 시린 나무들을 더더욱 따스하게 껴안습니다. 찬바람에도 당당히 서 있는 나목들이 따스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꼭 나목들만 붉은 열매를 달고 있는 건 아닙니다. 상록수 중에도 여름내 잔잔하게 꽃을 피우다 붉은 열매를 길러내는 나무가 있습니다. 나목들 보기가 안쓰럽고 미안스레 생각하던 주목과 사철나무도 빨간 열매를 달고 겨울날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나목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주며 겨울을 당당히 이겨내라 응원을 하고 사인을 보내줍니다.

 

주목(朱木) 꽃은 잎겨드랑이에 4월경에 달리기 때문에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단성화로 수꽃은 갈색, 암꽃은 녹색이지만 열매는 붉습니다. 주목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말만 들어도 늠름하고 의젓하여 상록수의 왕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한데…. 이다지 작은 열매가 달리는지, 푸른 잎 속에 조만한 붉은 열매를 보고 있으면 귀엽고 앙증맞기 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겨울추위를 잠재우고 누그려주는 열매는 사철나무의 환한 모습이 으뜸입니다. 아무리 매서운 추위가 닥쳐와도 밝고 따사로운 웃음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갑니다.

 

 
겨울이 오면, 겨울이 오면 우리들은 가슴 속에 난로 불을 하나씩 피워냅니다. 그 어느 춥던 날, 누군가에게 따사롭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 겨울, 시리고 지칠 때마다 사철나무 곁에서 푸른 잎과 붉은 열매를 다독이며 따뜻하게 몸을 데워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가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바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에 찾아오시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태그:#사철나무, #나목,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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