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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금성 내의 전각들. 이 같이 외부와 철저히 분리된 곳에서 벌어진 상황은 일반인들에게 쉽게 알려지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권력을 행사한 여걸들의 사생활에 대한 비판은 과연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을까?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3대 여걸이 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의 황후인 여후(?~BC 180년), 주나라를 세워 당나라의 맥을 잠시 끊어놓은 측천무후(623?~705년), 청나라 멸망 직전까지의 40년 동안 실질적인 황제 역할을 한 서태후(1835~1908년)가 바로 그들이다.

 

만약 남자였다면, 이들은 진시황·당태종·강희제 등과 함께 중국 역사에서 존경받는 영웅으로 손꼽혔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남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 중국에서 ‘3대 악녀’로만 불리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그들을 왜 악녀라고 부르는 것일까?

 

‘황제도 아닌 것’이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악녀라고 말한다. 그러나 황제도 아니면서 비정상적 방법으로 권력을 휘두른 실력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치면 정치사에는 수없이 많은 수의 ‘악남’들이 있을 것이다.

 

권력에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악녀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런 권력욕도 없이 정치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남자 정치인들은 아무런 권력욕도 없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일까?

 

뒷주머니로 뇌물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악녀라고 말한다. 그러나 뇌물을 받은 권력자의 사례는 여자보다는 남자에게서 훨씬 더 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된다. 남자는 돈으로 정치하고 여자는 그냥 ‘성의껏’ 정치하라는 법이 있을까?

 

이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악녀라고 말한다. 예컨대, 측천무후는 장역지 형제 등과 추문을 뿌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여자 권력자들이 ‘기껏해야’ 몇 명의 이성과 관계를 가진 데 비해, 남자 권력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이성과 관계를 가졌음에도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 임금도 6명의 부인과 ‘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만약 여후·측천무후·서태후 등이 6명의 공식 남편을 두었다면, 중국의 역사가들은 아마 그것만으로도 열불을 내며 분개했을 것이다.

 

존경받는 남자 통치자들 중에는 여러 명의 부인과 ‘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동시에 여러 명의 궁녀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역사가들은 유독 여자 권력자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혹독한 잣대를 들이댄다. 

 

만약 존경받는 남자 통치자가 부인도 없이 외롭게 살면서 한두 명의 궁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면,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그 사실을 분명히 우호적으로 인식할 것이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막중한 고뇌의 소유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부득이한 관계’라고 변호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실은 평가의 대상에서 배제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의 사후에 홀로 외롭게 살면서 한두 명의 남자와 ‘부득이한 관계’를 맺은 황후 권력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그들은 중국이라는 거대국가를 다스린 통치자들이다. 이성교제를 통해 해소해야 할 고뇌가 있다고 한다면, 다른 나라의 남자 통치자들보다 그들의 고뇌가 더 크지 않았을까?

 

위와 같이, 여걸들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살펴보면, ‘여걸=악녀’라는 논리를 뒷받침할 만한 합리적이고 수긍할 만한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가들이 악녀의 근거로 내세운 것들은 사실은 하나같이 남자 권력자들의 일반적 속성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리고 횟수나 규모로 보아도 남자 권력자들이 동일한 행위를 훨씬 더 많이 저질렀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꼭 하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여자 권력자들의 ‘음행’ 여부를 도대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정사(正史)라는 것은 왕조가 멸망한 뒤에 기록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이전 왕조의 역사가 기록되기도 한다. 1912년에 멸망한 청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청사>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권력자들이 사망하고 나서 몇 십 년 혹은 몇 백 년이 흐른 다음에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근거로 여자 권력자들의 음행 사실을 생생하고 자신감 있게 증언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여자 권력자들의 음행 여부가 그들의 생존 시기에 공식 문헌에 남았을 리도 없다. 특히 측천무후 같은 경우에는 오랫동안 사실상 철권통치를 한 셈인데, 그런 상황에서 과연 그의 구중궁궐 사생활이 기록될 수 있었을까? 또 대개의 경우 환관들은 권력자의 수족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최고권력자의 은밀한 사생활이 과연 대외적으로 쉽게 알려질 수 있었을까?

 

그런 상황에서 최고권력자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대개 떠도는 풍문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 설령 정사의 편찬자들이 문헌자료를 근거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작 <선데이 북경> 수준의 야사를 참조하는 정도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야사들은 대개 반대파들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근거 자료가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여자 권력자가 사후에 ‘악녀’라고 비판받는 상황인지라, 후대의 사료 편찬자들은 별다른 거리낌 없이 <선데이 북경> 수준의 야사를 근거로 여걸을 매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은 오늘날의 상황을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여자 측근이나 여자 장관은 반대파들의 공격 표적이 되기 쉽다. 반대파들은 단지 막연한 추측만으로 “대통령과 모종의 ‘썸씽’이 있지 않겠느냐?” “그런 썸씽도 없이 여자가 무슨 수로 저런 자리에 올라?”라며 대통령과 여자를 동시에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추측이 길거리의 주간지에서 버젓이 기사로 둔갑하기도 한다.

 

만약 무력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라면, 반대파들은 길거리에 나다니는 주간지 기사들을 근거로 전임 대통령과 여자 장관의 ‘썸씽’을 기정사실화할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개 여자 장관은 몸 하나로 권력에 접근했다가 결국 정권도 망치고 자신도 망쳤다”고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상황으로부터도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권력자의 사생활에 관한 세간의 비판은 대개 추측에 불과한 경우가 많고, 또 설사 문헌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빙성 있는 문서가 아닌 경우가 많다.

 

현재 중국에서 서태후 재평가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칭화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서태후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원류를 확인해 보니, 대개의 경우는 당시 반대파들이 쓴 신문기사 정도였을 뿐이라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이허웬(이화원)과 같이 서태후의 탐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의 경우에는 그저 서태후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서태후가 만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근거 없이 매도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역사가들이 여걸들에 대해 얼마나 몰인정하고 편파적인가 하는 점은 무측천(본명은 무조)이 15년간 주나라의 성신황제로 군림했는데도 그를 여전히 당나라의 측천무후로 부르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무측천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가들의 그런 편견 때문에, ‘여걸=악녀’라는 논리가 별다른 근거도 없이 보편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역사가들의 악의적인 기술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여걸들의 사생활이 매우 깨끗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는 게 보다 더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정치적 지위가 매우 미천한 상황 속에서,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계적 강대국의 권력을 차지한 여자라면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라도 자신의 몸가짐을 보다 더 신중하게 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능력은 있지만 학벌에서 밀리는 회사원은 사내에서 행동을 더욱 더 조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같으면 경과실(輕過失)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일이 그에게는 중과실(重過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리한 조건에 처한 사람은 승진이나 출세를 위해서라도 더욱 더 처신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여후·측천무후·서태후 같은 여자 권력자들도 그 권력을 이용하여 인간의 욕구를 맘껏 충족시켰다기보다는, 여자라는 이유로 권력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더욱 더 행동을 조심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어차피 그들이 음행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음행을 했을 것이라고 억지 비판을 하기보다는 이렇게 합리적 해석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또 그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부합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결코 여자 권력자들을 비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 글의 취지가 여성 인권의 신장을 도모하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이 글의 취지는 무엇일까?

 

역사가들이 여자 통치자들을 무조건 악녀라고 치부해버리면, 여자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최고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시대적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기존의 남자 통치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급박한 시대적 문제점이 있었기에 여자 권력자가 예외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여걸=악녀’라는 논리에 휩쓸리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여자 권력자의 사생활에만 쏠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등장을 가능케 한 시대적 배경은 자연히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리안 시리즈에서 이미 3패를 당한 팀의 감독은 후보급 중에서 4번 타자를 내세우는 특단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기존의 주전급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때에 주전 자리를 꿰찬 ‘후보급’이 바로 여후·측천무후·서태후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후보(여자) 주제에 무슨 4번 타자(최고권력자)냐?” 하는 편견을 갖고 속으로 불편해 하다 보면, 감독(시대)이 그들을 4번 타자로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밤중에 방안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대낮에 집무실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료에 나오는 <선데이 북경> 수준의 이야기에 현혹되지 말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 고찰을 통해 여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태그:#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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