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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1TV드라마 <대조영>
 KBS 1TV드라마 <대조영>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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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이순신은 충무공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또 생전의 세종 임금도 세종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충무공 같은 시호나 세종 같은 묘호는 사후에 붙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대조영>의 주요 인물인 측천무후의 경우에는 어떠할까? 지난 10월 28일에 방영된 <대조영> 제118회에서 돌궐족의 묵철은 측천무후가 자신을 속인 사실에 대해 분개하면서 “측천! 이 요망한 년이 끝내 내게 간계를 부리다니!”라고 부르짖었다. 이와 같이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대사에서 ‘측천’이라는 이름이 자주 거명되고 있다.

그럼, 생전의 측천무후는 과연 측천이라고 불렸을까?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 권6 측천황후 본기를 바탕으로, 그에게 붙여진 주요 호칭들을 시간 순서대로 추적해 보기로 한다.

측천황후 본기의 ‘홍도 원년 이전 조(條)’에서는 “측천황후는 무씨이며, 이름은 조”(則天皇后武氏諱曌)라고 하였다. 여기서 측천무후의 본명이 무조(武曌)임을 알 수 있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의 백과사전에서는 “(측천무후의) 본래의 이름은 무측천”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엄연히 사실이 아니다.

다음으로, 측천무후가 당나라 왕조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뒤에 황제에 등극한 서기 690년의 상황을 기록한 측천황후 본기의 ‘재초 원년 조’에서는, 그에게 성신황제(聖神皇帝)라는 존호가 부여되었다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황제로서 재위한 기간인 690~705년에 그의 공식 존호는 성신황제였던 것이다.

지금 <대조영>에 나오는 상황도 바로 이 시기의 것이다. 현재 이 드라마에 나오는 상황은 발해 건국 시점인 699년 이전에 관한 것이므로, 그때까지는 측천무후가 공식적으로는 성신황제라고 불리고 있었다. 만약 대조영이나 묵철이 그를 비하하고 싶었다면, 성신황제 대신 본명인 ‘무조’를 부르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측천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걸까? 그 답은 측천황후 본기의 ‘신룡 원년’ 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신황제 재위 16년(705), 측천무후가 세운 주나라에서 반역이 일어나서 그의 아들인 중종이 황제로 옹립되고 그는 폐주가 되었다. 그리고 중종은 주나라를 없애고 이전의 당나라를 복원했다. 그러나 측천무후의 세력이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에 중종 측에서는 폐주에게 ‘극진한 존호’를 부여함으로써 측천무후 측을 무마하려 하였다. 그 극진한 존호란 무엇일까?

그 부분의 사료는 다음과 같다. 대만 중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25사(史) D/B에서 아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월) 무신일에 (중종) 황제가 존호를 올려 측천대성황제라고 일컬었다.”(戊申,皇帝上尊號曰則天大聖皇帝.)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
ⓒ 대만 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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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중종 원년(705)에 성신황제(측천무후)를 몰아낸 중종 세력은 그에게 측천대성황제라는 존호를 부여했다. 이때는 측천무후의 사망 10개월 전이었다. 측천대성황제라는 존호는 생전에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사망 10개월 전에 받은 것인데다가 이후의 시호에서도 유사한 표현이 계속 사용되었으므로 사실상 시호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 사망하기 직전에 그는 자신의 존호에서 ‘황제’라는 표현을 삭제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의 사후에 이 요청에 따라 ‘측천대성황후’라는 시호가 다시 부여되었다. 이 내용은 위 사료의 뒷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측천무후가 측천이라고 불린 것은 사망 10개월 전부터였다. 이 시점은 그가 이미 권력에서 쫓겨난 뒤였다. 그리고 후대의 역사가들이 이 존호를 기준으로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에, 이후에 측천이라는 존호가 널리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측천무후의 전성기가 그려지고 있는 현재의 <대조영>에서, 대조영이나 묵철 등이 생전의 측천무후를 ‘측천’이라고 부르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다. 그가 측천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나중의 일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대조영>의 이 같은 실수는, 마치 이순신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생전의 이순신을 ‘충무공’이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또 세종 임금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생전의 세종 임금을 ‘세종’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물론 드라마 해설자가 해설 중에 측천·충무공·세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조영>처럼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들이 생전의 성신황제(측천무후)를 상대로 사실상의 시호나 마찬가지인 측천을 거명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일 것이다.   

이는 드라마 <대조영>이 중국측 사료를 충분히 고증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측 사료에 접근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측천무후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드라마의 각본을 쓰면서 <구당서> 측천황후 본기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순신을 소재로 한 드라마의 각본을 쓰면서, 사전에 <난중일기>를 확인하지 않는 것과도 똑같은 일이다.

최근 들어 시청자들이 역사 드라마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에, 역사 드라마의 작가들은 더욱 더 고증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는 픽션이라고 하지만, 역사 드라마의 경우에는 핵심적 사실관계에 관한 한 픽션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역사 드라마를 실제 역사로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 드라마 작가도 역사가에 준하는 일정 정도의 고증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 드라마 작가에게 주어진 ‘고증으로부터의 자유’는 핵심적 사실관계와 무관한 영역에 국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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