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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어제(7일) 한 시민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강제징집된 소년병의 여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이렇게 말했다.

 

"1950년 9월 가을이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오빠에게 '학생이냐'고 물어본 뒤 오빠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아마도 군대로 끌고 간 것 같았다. 당시 오빠는 덕수상고 1학년(17살)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사망한 사람에게 나온다는 광목천이 도착했다. 오빠가 죽었다는 통보였다. 부모님은 대성통곡을 하고 며칠간 식음을 전폐했다."

 

그는 "육군본부와 국방부에 사망자 명단 확인을 요청했지만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며 "내가 죽기 전에 오빠의 시신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흐느꼈다.

 

16대 국회에 이어 17대 국회에서도 자동폐기될 위기

 

이렇게 전쟁의 상처는 깊다. 특히 15∼17세의 소년병과 그의 가족들에게 한국전쟁은 '악몽'과도 같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의 강권력에 의해 전쟁에 동원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소년병의 고통은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학도병'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정부(국가)는 소년병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어쩌면 감추고 싶은 기억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국제법은 물론이고 국내법으로도 15∼17세 아동을 강제로 징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소년병 강제징집은 명백한 불법행위였던 것이다.

 

결국 소년병들은 초로의 나이가 되어서야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6년 창립한 '6·25참전 소년지원병 전우회'(소년병전우회, 회장 박태승)를 통해 소년병의 진실을 알리고, 추모사업(위령제)을 진행하고, 특히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달라고 요구한 것.

 

소년병전우회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소년병은 2만5000여명에 이르고, 생존자(2004년 12월 현재)는 1만4000여명이다. 이들 가운데 국가유공자(상이자·무공수훈자)는 2519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일반참전유공자다.

 

그래서 소년병전우회에서 가장 큰 공을 들인 일은 소년병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법률 개정안의 통과였다. 지난 2001년 2월 안경률 한나라당 의원이 소년병의 국가유공자 예우 등이 담긴 '국가유공자 등 예우와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지만 제대로 심의도 하지 못하고 회기가 지나 자동폐기됐다.

 

16대 국회에 이어 17대 국회에서는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이 다시 국가유공자법 개정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법률소위에 계류중이다. 하지만 '대선'이란 큰 정치일정에 밀려 이번에도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소년병전우회는 지난 5월에 이어 10월에도 자신들의 문제가 잊혀지지 않도록 국회 국방위·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을 상대로 집중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홍보활동도 국회의 무관심 앞에선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소년병전우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이끌어온 박태승 회장조차 "이제는 홍보활동도 하지 않고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소년병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소년병문제, 미 하원 및 유엔 인권위에 호소하겠다"

 

국회가 그렇게 소년병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앞으로 한국전쟁 참전 소년병 문제는 국제적 이슈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심상은 부회장은 지난 10월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소년병을 국가유공자로 예우받기 위해 두 번에 걸쳐 국회에 상정하고서도 얼마 남지 않은 17대 국회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면 불가피하게 미국정부에 당시 작전지휘권과 관련해 아동의 징집 책임을 묻기로 했으며 미 하원 및 유엔 인권위에 소년병들의 절박한 입장을 호소할 계획이다."

 

박태승 회장도 "이젠 우리 정부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며 "미국 정부 등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독립기념관의 '일제침략관'(제3관)에는 일본이 소년병들을 강제징집하는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고 한다. 이 전시의 목적은 분명하다. 일본의 소년병 징집이 반인권·반인간적 행위라는 점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국방부도 지난 5월 소년병전우회의 민원에 대한 회신을 통해 50여년 만에 한국전쟁 당시 소년병 징집의 불법성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국회와 정부는 정작 '우리의 소년병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방금 언급한 독립기념관의 조형물은 '위선'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태그:#소년병,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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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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