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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 비자금조성·전방위로비 의혹 폭로에 대해, 검찰의 공식적인 입장은  "현재까지 주장만 갖고는 수사에 나서기 어렵다. 보다 정확한 자료를 내놓든지, 정식고발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삼성그룹의 법무팀장을 지낸 인사의 폭로이고, 삼성그룹에서 자신도 모르게 만든 비자금 관리 계좌번호를 공개했는데, 인지수사로도 가능한 것이냐, 어렵지 않은 비자금수사 아니냐"는 질문에, "자금의 주인이, 개인간의 차명계좌일 뿐이라고 주장하면 더 이상 반박하기 어렵다"고 답합니다.

 

사실 "현직 최고위급 간부검사들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는 주장까지 나온 상황에서, 검찰의 운신폭은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전 검찰을 담당하던 시절에 알고 지낸 몇몇 검사들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다른 데 한눈 안파는 괜찮은 검사들이라고 생각하는 인사들입니다.

 

[특수부] "수사는 간단, 다른 임원들도 비자금 계좌 있는지 조사해보면 된다"

 

특수수사 전문인 한 부장급 인사는 "삼성의 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김 변호사의 집에까지 찾아갔다는 것을 보면 뭔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의심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는 김 변호사와 같이 움직이는 단체가, 박종철 열사 죽음의 진실을  전함으로써 1987년 6월 항쟁의 물꼬를 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라는 점도 검찰로서는 상당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고 전합니다.

 

그는 사건과 관련해 "계좌 명의자가 직접 밝혔다는 점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삼성그룹에서 말하는 돈주인이라는 임원은 끝까지 아니라고 할 텐데, 그 입증은 간단하다"고 합니다.

 

다른 임원들, 좁혀서 법무팀이나, 재무팀 임원들 정도만 김 변호사와 같은 비자금계좌가 있었는지 조사해보면, 김 변호사 주장의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실제 수사가 벌어지면 이게 관건이 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그러면서 "삼성의 로비력은 상상을 불허하는데,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내줄까" 이런 걱정도 합니다. 밖에서는 검찰의 수사의지를 의심하는데, 검찰은 법원을 우려하는 형국입니다.

그 다음 말이 더 흥미롭습니다. "삼성에 대한 수사가 벌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검사장] "삼성이 악덕 기업도 아니고,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만약 내가 맡게 되면 기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 아래, "삼성이 아주 파렴치한 악덕기업도 아니고,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해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지 않느냐는 그런 생각들"이라는 것입니다.

 

법원에서 얼마전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집행유예판결을 내린 것도 이같은 정서, 즉 "현대나 삼성이 임금 떼먹는 악덕 파렴치한 기업은 아니지 않느냐", "경제살리기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정서가 깔려있다는 전언입니다.

 

김 변호사의 검찰선배이고, 같이 일해본 적도 있다는 한 검사장급 인사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그는 "삼성이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인가, 삼성만큼만 하면 그래도 괜찮은 것 아닌가"라고 합니다. 수십년 검사 생활하면서 이런 저런 범죄 다루고, 이런 저런 조직을 다뤄봤지만, 문제가 많다고 해도 삼성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겁니다.


이른바 검찰인사 떡값문제(정확하게는 뇌물이 맞겠죠)에 대해서도 "공무원이 삼성의 관리대상에 들어갔다면 그는 엘리트다. 아마 영광으로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삼성이 우리 공직사회에서 어떤 조직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저는 이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삼성의 로비기술에 대해 "삼성은 업무와 직접 관련해서는 돈을 안 준다. 사건과 관계없이 미리 깔아놓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부장검사] "김 변호사, 진정성 있다면 혐의내용 전체 공개하고 고발해야"

 

비슷한 말을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의원직을 잃었을 때다. LG, 현대에서는 보내주던 사회동향 보고서가 끊겼는데, 삼성은 계속 보내주더라. 해외에 장기체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원생활 하다 끝나면 만날 사람도 확 줄어든다. 그럴 때 삼성사람들은 같이 골프 쳐주고, 골프비 내준다. 큰 돈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감도 안 든다.

 

내가 재기할 거라고 봐서 그렇게 신경을 쓴 것이겠지만, 어쨌든 고맙다. 나중에 다시 국회들어와서 삼성 관련 문제 있으면 돕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사건에 대한 다른 부장급 검사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내부자 시각인지 모르지만, 김 변호사가 진정성이 있다면 혐의내용 전체를 공개하고 고발해야 한다"면서 "마치 검찰을 조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대선이 두 달도 안 남았고,  검찰 내부적으로도 검찰총장이 바뀌는 시기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선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무슨 의도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현재 검찰은 정상명 총장이 물러나고, 임채진 총장 후보자가 13일 인사청문회를 거쳐  바통을 이어받게 되는 상황입니다. 물러나는 총장이 수사결심을 하기 쉽지 않은 시기라는 것이죠.

 

 

'천방지축' 검찰에게도 삼성은 대단한 존재

 

정치권에서는 '천방지축'이라는 말을 듣는 검찰에게도 삼성은 대단한 존재입니다. 한국경제의 20%를 차지한다는 말을 듣는, 한국 대표 그룹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래서 견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마저도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국민들은 삼성이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만큼, 삼성이 괴물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번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삼성이 내용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또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검찰이 명예를 회복할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다른 생각이 있든 없든, 우리 검찰은 그 정도는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곁불을 쬐지않는 무사' 집단이라고 자칭하는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룰지 지켜보겠습니다.


태그:#삼성 비자금,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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