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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법무팀장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입을 통해 삼성비자금의 실체를 고발했다. 5일 오후 2차 기자회견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의 조성 과정과 사용처 등을 다시 폭로했다. 정치인을 비롯해 검찰, 국세청 등 전방위 로비에 대해서도 "명백한 범죄"라고 고백했다. '삼성게이트'를 방불케 한다. 그는 이어 "공범으로서 처벌 받아야할 순간이 되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삼성도 방향을 바꿨다. 그동안 개인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무시해왔다. 하지만 2차 회견 직전에 두툼한 자료를 내놨다. A4용지 25쪽 분량으로 공식적인 삼성 입장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더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게이트'의 진실을 둘러싼 복잡한 퍼즐게임이 본격화됐다. 양쪽의 주장과 입장을 통해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 본다.

 

① 삼성에서 잘나가던 그가 왜 폭로했을까

 

김 변호사가 폭로하게  동기는 크게 두 가지. 퇴직 후 언론에 난 삼성 비판기사에 대해 삼성이 자신을 의심하고 압박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삼성 압력에 의해 자신이 다니던 법무법인 서정에 쫓겨난 후, 고민 끝에 폭로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삼성 쪽은 서정을 그만둔 것은 김 변호사의 개인적인 비리와 내부 변호사들과의 마찰·갈등 때문이었다고 반박했다. 삼성은 오히려 김 변호사의 퇴출 소문을 듣고, 서정 쪽에 "김 변호사가 계속 근무할 수 없겠느냐"고 부탁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에 대한 미행 등도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② 나도 모르게 50억 비자금이 만들어졌다?

 

김 변호사는 삼성 사장단, 고위임원, 재무와 인사 등 핵심보직 임원 등이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도 모르게 내 명의로 개설된 은행계좌에 50억원대의 현금과 주식이 있었다"면서 "이는 불법으로 만들어진 회사 비자금"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 존재는 인정했다. 하지만 구조본 재무팀 근무당시 동료 임원이 김 변호사의 동의를 얻어 개설했다고 주장했다. 매년 발생하는 세금을 제공받아서 자신이 대신 납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해당 임원'이 누군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관리'의 삼성이라는 곳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제3자'의 돈을 따로 관리했다는 설명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③ 삼성 비자금 규모는 10조원?

 

김 변호사는 임직원 이름으로 만들어진 차명계좌가 1000여 개에 이른다고 말해왔다. 지난 2일 <경향신문>에선 "주요 임원급이 2000명정도 되는데, 모두 다 차명계좌 비자금이 있을 것이며, 최소 50억원으로 따졌을 때 규모가 10조원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게다가 김 변호사 스스로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임원들 숫자도 왔다갔다하고 있고, 단순 계산으로 10조원이라는 것은 과장이고 왜곡이라는 것이다.

 

일부 과장이라고 하더라도, 차명계좌를 통한 검은돈 거래에 대한 삼성 쪽 해명이 부족하다.

 

④ 삼성계열사 비틀어서 비자금 조성했다?

 

이 같은 삼성의 '검은돈'은 계열사로부터 거둬 들였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는 심지어 대형 부실을 안고 있는 회사에서도 수십억원씩 비자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들은 이중 장부를 이용한 매출 부풀리기와 건설공사 분식회계를 통해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만들었다고 했다.

 

물론 삼성은 부인했다. 회계 기준에 따라 적정하게 처리하고, 외부 회계법인의 정밀한 감사와 재무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것. 이어 기업들의 통상적인 회계 처리 과정을 비 전문가인 김 변호사가 분식회계로 잘못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분식회계를 둘러싼 관련 자료가 공개될 경우 다시 논란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⑤ 비자금을 정관계 로비에 사용했다?

 

비자금은 정관계 불법로비에 사용됐다는 것이 김 변호사의 주장.
 
그는 구조본에서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 40명에게 추석과 설, 휴가때 정기적으로 돈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금액도 500만~1000만원이라고 했다. 국세청은 이 금액에 '0'이 하나 더 붙어 억대의 돈을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삼성은 검사나 판사를 상대로 떡값이나 휴가비를 돌린 적이 없으며, 김 변호사에게 그 같은 일을 지시한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만약 김 변호사가 법조계 인사들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했다면 사적관계에서 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자신의 업무가 검찰과 법조계 인사를 관리하는 것이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또 수백만원을 들여가며 사적으로 만남을 가졌다는 삼성 쪽 설명은 선뜩 납득하기 어렵다.

 

⑥ 거액 뇌물 받은 정관계 고위층 명단 언제 나오나?

 

김 변호사와 사제단에선 거액의 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아온 검찰과 법원, 고위 공무원 등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김 변호사는 현직의 최고위급 검사 가운데서도 삼성의 불법적인 검은돈을 받은 사람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명단 공개 여부에 대해선, 사제단은 검찰 등의 움직임을 보고, 공개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도 "(명단을) 밝혀야할 공적인 기회가 오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른바 '떡값'리스트의 신빙성에 무게를 두지 않고 있다. 검찰 사정에 밝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명단을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출처불명의 '괴명단'이 나돌아 사회적 혼란이 있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하튼, 빠른 시일 안에 이들 명단이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경우, 명단 공개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⑦ 이건희 회장이 정관계 로비 직접 지시했다?

 

이 부분은 '회장지시사항'이라는 제목의 삼성 내부문건이 공개되면서부터다. 문건을 보면, 이 회장은 '호텔할인권' '와인' 등을 들면서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한 로비를 매우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물론 삼성에 비판적인 언론과 시민단체를 관리하라는 지시내용도 들어있다.

 

김 변호사는 MBC <뉴스후>에서 "이건희 회장이 '지방특수부 검사들도 잘 관리하라'"면서 "'일본 대기업은 동경지검장의 애첩까지도 관리를 했다, (검사를) 관리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한다'는 말을 이 회장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 회장이 식사 자리나 일상생활에서 자유롭게 한 말을 수행직원이 메모해 두었다가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로비지침서'로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텔할인권 등도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보라는 것이었고,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자신이 직접 호텔할인권을 받아 집행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삼성 최고 권력자인 이 회장의 지시사항을 검토만 하고 폐기됐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⑧ 2002년 불법대선자금은 회삿돈인가?

 

김 변호사는 또 지난 2002년 불법대선자금은 회사 비자금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4년 검찰은 370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이학수 삼성 부회장을 사법처리했다.

 

검찰은 당시 '이 자금은 회삿돈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 개인돈'이라는 삼성 쪽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 변호사는 당시 구조본 법무팀장으로 검찰 수사에 대응했다. 3년이 지나서 김 변호사는 당시 사실상 자신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은 2002년 대선자금이 이 회장 개인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라며, 당시 김 변호사가 법률적 쟁점과 증거관계 등을 분석해서 검찰에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이제와서 법무팀장으로서 한 일이 조작됐다는 것은 논할 가치조차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변호사 말대로 불법정치자금이 회삿돈이 밝혀질 경우, 이건희 회장 등 삼성 최고위층에 대한 검찰의 전면 재조사가 불가피해진다.

 

⑨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매각 증인 조작됐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매각 사건에 대해서도, 사건 증인이나 진술 모두가 조작됐다고 김 변호사는 폭로했다. 에버랜드 사건의 책임은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었는데, 이를 모면하기 위해 관련자들의 진술을 미리 짜맞추고 서류도 조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별도로 삼성 태평로 빌딩에 검찰조사실을 꾸며놓고, 검찰 출신 변호사를 동원해 예행연습 등도 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기업 법무실에선 사건이 발생하면, 변호사가 당사자들을 만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법정에서 효과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업무라고 반박했다. 물론 검찰 조사실 등은 사실 무근이라고 했다.

 

또 검찰 수사과정에서 에버랜드 실무진·이사진 등 참고인들이 빠짐없이 조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과 변호사들은 사실관계에서 다툼이 없었으며, 단지 법률적 해석과 판단이 다를 뿐이라고 밝혔다.

 

에버랜드 CB 사건은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로 그룹 경영권이 넘어가도록 하기 위해 삼성계열사들이 헐값으로 전환사채를 매각한 사건이다. 1심과 2심 법원은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으며,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⑩ 폭로 안하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

 

김 변호사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폭로를 무마시키기 위해 각종 회유와 협박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딜(거래)은 내가 한 게 아니라 저 쪽에서 했다"면서 "로펌을 차려준다고 했으며, 내가 아는 사람을 모두 동원해 좋은 방법을 찾아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학수 부회장 등이 김 변호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등도 공개했다. 폭로 회견이 있기 10여 일전부터 이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이 김 변호사의 전 부인 집을 찾았다. 이 부회장은 "만나서 뭐든지 풀어보면 유익할 것"이라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삼성도 5일 해명자료에서 이 부회장이 보낸 문자메시지 6건을 모두 공개했다. 이어 "김 변호사의 부인이 삼성에 보낸 편지에서 과거 동료들을 매도하는 등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이 부회장이 '나 하고 만나서 대화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찾아간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로펌을 차려주겠다는 제의 자체를 결코 한적이 없다"면서 "누가 했는지 그런 제의를 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반박했다.


태그:#삼성 비자금,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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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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