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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왜 단풍은 여러 가지 색깔이야?”
“음, 그건 말이야. 나무마다 제각기 꿈이 있기 때문이야.”
“나무도 꿈을 꿔?”
“그럼. 나무도 사람처럼 꿈을 꾸지. 가을 수채화처럼 맑고 고운 꿈을 꾸지.”

 


딸아이는 함박 웃는다. 순진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가 아이의 얼굴에 흐른다. 그 얼굴 위로 가을 단풍의 미소도 살포시 흐른다. 계곡에 흐르는 비취빛 물줄기는 또 어찌 그리 투명한지. 


딸아이와 함께 가을 단풍 여행을 떠났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계곡을 따라 산들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길을 떠났다. 배낭에는 향긋한 점심과 생수, 그리고 막걸리 하나 담았다. 딸이 먹을 과자도 잊지 않고.


10여 분을 걸었을까? 발그속속하게 물든 단풍잎을 계곡 가에서 만났다. 그 단풍잎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민 계곡의 물은 에메랄드빛이었다. 물이 너무 맑아 그 어떠한 생물조차 살 것 같지 않았다. 그 물빛을 뒤로하며 다시 가기를 10여 분. 이번에는 계곡 사이로 노라발갛게 서 있는 소박한 단풍을 만났다. 계곡의 바위는 역광을 받아 순두부처럼 말갛게 빛나고 있었고, 작은 다람쥐들은 먹이를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그때 하늘은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본격적인 산행 길. 힘들어하는 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오르막길로 접어들기 30분. 녹의홍상으로 물든 산봉우리들을 연이어 만났다. 그 봉우리들에선 푸른 물감과 붉은 물감, 그리고 노란 물감이 은하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그저 말없이 그 풍경을 쳐다본다. 어느덧 아이도 그 풍경 속의 한 장면이 되고 만다. 그 풍경 옆에는 놀면한 자태로 하늘을 쳐다보는 단풍나무가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붉게 핀 산 속의 단풍잎, 억새의 손짓을 받으며 노랗게 계곡수를 쳐다보는 단풍잎. 그리고 산행 길의 한 쪽에서 고운 처녀의 자태처럼 살포시 고개 숙인 단풍잎. 가을 수채화는 이미 아이의 머릿속에 완성되어 있었다. 아이는 말했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왜 사진을 찍어서 소중한 기억을 없애느냐고.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사진 속에 담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감나무에서 노란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그 노란 향기를 담고 있었다. 그 맑은 눈동자 속에 가을의 수채화가 어려 있었다. 딸과 함께 떠난 가을 산행은 수채화의 여정이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10월 28일 울주군 대운산의 단풍을 담았습니다. 


태그:#가을여행,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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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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