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럽게 서로 극적으로 상반되는 두 주장을 그 대안으로 찾게 했다. 홍세화와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대학평준화가 급격한 좌선회를 바라는 것이라면, 이명박이 최근 발표한 교육공약은 마찬가지로 급격한 우선회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주장이 모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함께 오늘날의 교육현실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둘 모두 엄청난 혼란과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사회에서 프랑스에 대한 관심은 냉전의 해체와 함께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패션과 문화의 도시로서 파리에 대한 동경은 있었다. 새로운 것은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미국의 자본주의적 폐해가 드러나면서 대안적인 사회의 모델로서 유럽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홍세화가 주장하고 있는 대학평준화 역시 유럽, 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예를 강조하고 있다.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 독일의 경우는 논외로 하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교육을 근거로 들어 그의 논의를 살펴보자.

프랑스에서도 대학은 문제다

일단 그가 칭찬하고 있는 프랑스 대학의 모습은, 적어도 한국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부러운 것이다. 사실 내가 프랑스에서 가장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교육과 의료 두 부분이다.

얼마 전에 교육부 장관이 대학입학자격시험의 합격률을 90퍼센트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하는 뉴스를 보았으니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거의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참고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박사 과정의 경우 1년 등록금이 약 60만원에 불과하다. 나이와 부모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학생에게는 주거와 교통, 의료에 대한 혜택 또한 주어진다.

부럽다. 하지만 부러운 것은 여기까지이다. 프랑스의 대학 역시, 마치 한국의 대학처럼 사회적으로 늘 문제이다. 학생 수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대학의 시설은 부족한 재정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고, 대학졸업 이후 취업의 전망이 없기는 한국의 졸업생과 같다.

입학이 쉽지만 졸업이 어려운 것은 각 단계의 진급시험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일자리를 얻은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프랑스의 대학생들이 비정규직을 도입하려는 정부에 반대하여 시위에 나선 것도 한국의 현실과 유사하다. 대학은 늘 문제이다.

홍세화의 제안은 매력적이지만 위험하다. 그가 교육체계 전반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강조하여 너무 매력적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그랑 제콜’이라고 불리는 엘리트 교육기관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국내에 알려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제도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할 필요가 있다.

홍세화의 제안은 매력적이지만 위험

결국에는 대학교로 번역할 수밖에 없는 그랑 제콜(Grands écoles)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학과는 달리, 국가가 필요한 전문분야의 엘리트들을 국가의 비용으로 교육시키는 고등교육기관이다. 마치 사관학교나 하나의 학교가 된 사법연수원을 상상해보면 될 것이다.

프랑스에는 이런 종류의 학교들이 200개가 넘고, 그 분야도 사관학교나 전문기술학교만이 아니라, 원래 중등교육 교수요원 양성을 목표로 했던 ‘고등사범학교’나 행정 관료를 양성하는 ‘국립행정학교’, 최근 프랑스의 정치지도자 코스인 ‘시앙스포(정치학 학교)’ 등 다양하다.

학비가 무료인 것은 물론 추가로 상당한 정도의 생활비까지 지급 받는 이 학교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 3년간의 추가적인 준비가 필요한 매우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한다. 또 한국에서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이들 역시 학교에 합격한 순간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고 졸업 후 중견간부직으로 배치된다.

물론 특혜의 대가로 이들에게 강제되는 것은 각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함께 뒤따르는 책임의식이다. 이들이 직무와 관련하여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처벌이 뒤따른다. 프랑스에 살면서 이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보았지만 아직 이들이 받는 특혜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없다.

물론 프랑스에도 사립교육기관들은 있다. 초등, 중등, 고등과정에 모두 주로 카톨릭이나 유대교 등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사립학교들이 있고, 최근에는 이슬람 계열의 학교들도 인가를 받아 종교교육 측면에서 약간의 자율성을 누리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상대적으로 비싼 학비를 받으면서 주로 부유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기존 공교육제도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프랑스에도 사립교육기관들이 있지만...

오히려 사립학교들은 패션이나 미용, 요리와 같은 전문직업학교들에 많다. 이 학교들은 비싼 학비를 받으면서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중 하나인 ‘코르동 블루’라고 하는 유명 요리학교가 한국에서 대학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프랑스에서 대학교육을 마친 두 자녀를 둔 그가 프랑스의 엘리트 교육제도를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아마 한국의 지나치게 왜곡된 교육현실을 염려하는 그가 한국교육의 파행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부각시키지 않았으리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유기체처럼 연관되어 전체를 이루고 있는 제도들 중에서 한 가지 점만을 떼어내는 것은 ‘절반만의 진실’이고 결국 이는 옳지 않은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프랑스의 ‘그랑 제콜’에 대한 글들이 유일하게 실리는 곳이 기존의 보수언론들이고, 그것도 엘리트들의 책임의식에 대한 언급 없이 외고와 같은 특수한 학교의 ‘수월성을 강조하는 목적’에서만 이용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사실 대학평준화 이야기는 엘리트 교육과 대중 교육 간의 긴장관계를 정확히 파악한 후에 논의해야 할 점이다. 그 둘이 어떤 연관을 갖는가는 각국이 가지는 역사적 전통에 따라 다르다. 또 한 순간 이루어졌던 균형은 어느 시기를 지나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정확한 목표와 그 재원마련 방식에 대한 합의 없이 이루어지는 교육시한의 연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력의 인플레를 더욱 촉진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특히 나로서는 그의 대학평준화 주장이 ‘반엘리트주의’가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의 많은 특권층이 보이고 있는 비리와 부패, 패거리주의는 그 자체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들이 지도층으로 성장하면서 받은 혜택들이 특별한 것이었음은 당연히 강조되어야 하고, 따라서 그들의 잘못은 더욱 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또 지도자 양성 과정이 더욱 전문화, 다양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많은 연구들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현재 한국 지도층에 대한 불만이 지도층 전체에 대한, 혹은 꼭 필요한 권위 전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도층 없는 공동체는 없고 미래의 엘리트들을 교육시키지 않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프랑스만이 아니라 미국에도, 과거 소련이나 북한에도, 모두가 가기를 선망하는 좋은 엘리트 교육기관은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사람 사는 곳에는 늘 앞서는 자와 뒤따르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번에 쓴 글로 ‘파리유학생’이 되어버린 김정인입니다. 이제는 더 빼낼 시간이 없어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이 글은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제까지 먹은 밥값은 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참고로 저는, 비록 아직도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학생의 신분이지만, 10년이 훨씬 넘도록 프랑스 교육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홍세화 선생님의 ‘대학평준화’를 주장하는 칼럼을 읽고 난 후였는데 아무래도 바로잡을 것이 있어서였습니다. 미적거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마침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께서 교육관련 공약을 발표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몇 마디는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입니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6개의 글로 짧게 나누어 하루에 2편씩 사흘동안 올리겠습니다. 참고로 다음은 각 편의 제목입니다.

1. 교육이 문제다?
2. 이해찬의 함께 켜져 있는 양쪽 깜박이
3. 홍세화의 프랑스식 모델, 대학평준화?
4. 이명박의 미국식 모델, 자율형 사립고?
5. 토론을 위한 전제들
6. 교육문제, 문국현이 정답이다

본문에서는 편의상 존칭을 생략하였습니다.



태그:#문국현, #이해찬, #홍세화, #이명박, #교육공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