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0년대 KBS에서 방영됐던 <이상한 나라의 폴>, 당시 어린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80년대 KBS에서 방영됐던 <이상한 나라의 폴>, 당시 어린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다츠노코 프로덕션

관련사진보기


잠시 즐거워지자. 80년대 동심을 사로잡았던 <이상한 나라의 폴> 주제곡이다.

[클릭!] <이상한 나라의 폴> 주제곡

그 땐 꿈과 모험과 정의가 있었다. 20년을 훌쩍 넘긴 고전이지만 지금 들어도 신난다. 주인공 폴이 대마왕에게 잡혀 있는 여자 친구 니나를 구하는 이야기. 마법의 인형요정인 찌찌가 열어주는 4차원 세계, 큰 귀를 펄럭이며 폴을 싣고 나는 애완견 삐삐, 대마왕의 꼬붕인 버섯돌이들…. 결국 폴은 딱부리라는 요요로 대마왕의 뿔을 공격해 승리한다.

뜬금없이 웬 만화 타령? 22일 문국현 캠프의 한 취재원을 만났다가 들은 얘기다. 그는 얘기 중에 불쑥 이 만화영화를 작금의 대선 상황에 빗댔다. 그는 자신의 바람에 따라 문국현 후보를 주인공 폴로 설정하고는 정동영, 권영길을 조연역의 삐삐와 찌찌로 삼아 이명박 후보와 싸우는 모험담으로 재구성해 냈다. 볼모로 잡힌 니나는? 국민이란다.

정색할 필요는 없다. '이명박 원사이드'로 싱겁게 끌날 수도 있는 대선을 전망하다가 나온 웃자고 하는 얘기다. 

'반이명박' 가치연대, 정책연합 급부상

지난 두 차례의 '이명박 대 이명박' 시리즈를 통해 진보개혁진영의 위기론을 진단했다. 해법이 나올 차례다. 파편적인 움직임은 감지된다. 크게 보면 '가치연대'이고, 좀더 구체화 하면 '정책연합'이다.

대상이 좀 광범위하다. 이인제부터 사회당까지 거론되지만 아무래도 중심축은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다. 진보진영 내 좌우를 망라하고 있다. 이들의 최소강령은 '이명박은 아니다'는 것. 그 선상에서 공유할 수 있는 가치와 정책을 교환하자는 얘기다. 이대로 가다간 진보 '진영'은 물론 진보의 '내용'마저 괴사해 버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투표율? 이론적으론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계층 간 이해관계가 첨예해 지면서 투표율이 올라가야 하지만, 투표율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란 현실론이 우세하다. "역대 선거 중 가장 큰 득표율의 격차를 낳을 것"(정상호 교수)이라는 예상 또한 지배적이다. 미국처럼 '우파들의 나라'가 될 것인가.

[정당] "경쟁과 연대를 통해 혁신하자"

16일 오후 서울 신촌에서 민생투어에 나선 (가칭)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길거리 좌판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신촌에서 민생투어에 나선 (가칭)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길거리 좌판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지난 17일 저녁 여의도 모처에서 정동영(대통합민주신당) 문국현(창조한국당) 권영길(민주노동당) 금민(한국사회당) 후보의 정책통들이 모였다.

정동영 캠프에서 사회 분야 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 임채원(서울대 한국행정연구소 연구원), 문국현 캠프에서 공보팀장을 맡고 있는 고원(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권영길 후보의 정책특보로 내정된 오건호(당 정책전문위원), 금민 후보의 선대본부장 안효상(당 부대표)씨가 참석했다. 이미 일주일 전 상견례가 있은 뒤 두 번째 만남이었다.

이들은 '개인 자격'의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자칫 후보단일화 등 예민한 이슈로 와전될 것을 우려한 것이기도 했지만 정책 연합을 반드시 이뤄낸다는 목표 아래 구성된 만남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모였다.

"진보세력이 집권하고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사회경제질서의 지각변동이 있었지만 진보개혁세력은 대처하지 못했다. 담론의 부재였다. 늦었지만 한국적 진보의 가치가 무엇인지 제기해 보자는 것이다. 진보 시장에 좌판을 열고 각축을 벌이자. 사분오열인 채로 가면 다 망한다."(임채원)

"87년 이후 이른바 노동자민중세력과 민주개혁세력으로 갈라지면서 각자 차이를 드러 내는게 중요했지만 지금은 둘 다 위기에 빠졌다. 같은 지반임을 확인하고 그 안에서 건설적인 차이를 드러내보자."(안효상)

'진보개혁 세력의 위기와 과제, 경쟁과 연대를 통한 혁신' 정도의 이름이 붙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모임의 또 다른 참석자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한민국 대연정"이라고 한발 더 나아갔다.

대표적으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해소'가 접근해 볼만한 이슈다. 물론 오건호 위원은 "정동영 후보의 공약은 급진적인 레토닉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며 문 후보에 대해서 역시 "4조2교대, 평생학습 등은 정규직의 안정화 프로그램이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관한 뚜렷한 실천의지를 확인할 수 없다"고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가 12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선대위 첫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가 12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선대위 첫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온도차는 존재한다. 매번의 선거에서 사표론에 시달려온 민주노동당이 가장 조심스럽다. 혹여 범여권 후보단일화의 들러리를 서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경계심이 적지 않다.

오건호 위원은 "낮은 수준이나마 가치의 연대가 가능한지 탐색해 보자는 취지"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정책검증을 통해 반한나라당과 이명박의 대항 가치를 수립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고원 팀장은 "진보개혁세력의 위기에 대해 정파적 해석을 뛰어넘어 공통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상당히 중요한 이슈가 오갈 수 있다"며 자파 이익을 떠나 '대선 이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책에 대한 공유, 협력, 연대를 논의하는 기반 위에서 다음 정권이 서게 되면 개혁 목표가 보다 분명해 지고, 정파를 초월한 대타협의 정신도 도출할 수 있게 된다. 대선을 단순히 권력 쟁투가 아니라 다음 정권의 개혁 기반을 만든다는 데 공동의 인식이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내용 없는' 연대나 연합은 없다는 점이다. 가치연대나 정책연합의 '결과'로서 후보단일화 논의도 열려 있다. 후보들의 입을 통해 '가치'와 '노선'에 바탕한 연대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참석자들은 "차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공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나올 것"이라며 기대를 접지 않았다.

[학계] 27개 '정책적 마지노선' 제시

학계도 움직이고 있다. 정해구·서동만·손혁재·김호기 등 진보개혁 진영의 학자들로 구성된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약칭 '의제 27')은 지난주 기자회견을 열어 "정책경쟁을 통한 진보개혁 진영의 후보단일화를 촉구한다"고 밝혔다.(18일 <오마이뉴스> "정동영 '평화'와 문국현 '경제'를 합치자" 기사 참조)

후보단일화가 승리를 위한 정치적 야합이나 선거공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정당 간 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인제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에게 '정책적 마지노선'을 던지고 '정책 경쟁'을 벌이라는 주문이다.
  
곧바로 공유할만한 정책 의제들을 내놨다. 우선 ▲결선투표제 도입 ▲무상보육 실현과 아동 수당 도입 ▲사회적 일자리 100만개 창출 등 세 가지를 제안했다. 순차적으로 27개의 의제들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런 뒤 후보들이 테이블에 앉아 토론하고 검증하는 자리도 만들 예정이다.

22일 저녁 영등포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실에서 김근태 상임고문, 이해찬 전 총리, 정동영 대선후보, 손학규 전 지사, 오충일 대표가 손을 모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22일 저녁 영등포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실에서 김근태 상임고문, 이해찬 전 총리, 정동영 대선후보, 손학규 전 지사, 오충일 대표가 손을 모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시민사회] 7대 과제 제시, 공약 폐기 운동도

진보개혁적 시민사회진영도 내부정렬을 마치고 정책선거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2007 대선시민연대'(공동집행위원장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지난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7대 과제'를 발표한 뒤, 각 후보들의 공약 채택을 압박했다. 아울러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공약에 한해서는 공약 폐기 운동을 펼칠 것이라 공언하기도 했다.

이들 역시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를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교육, 국방, 환경, 여성 등 각 분야의 공약들이 전국의 361개 단체들로부터 제기된 '상향식' 구성이라는 점에서 명분과 힘을 응축하고 있다. 김민영 위원장은 "지나치게 보수담론에 치우쳐 있는 의제 이동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항도 예상된다. 공약 폐기 운동과 현행 선거법과의 충돌이다. 이 때문에 대선시민연대에선 공식 후보 등록 전까지 활동할 수 있는 예비 후보를 내세우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1일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전남지역 선대위 출정식을 열고 호남 민심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21일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전남지역 선대위 출정식을 열고 호남 민심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 강성관

관련사진보기


"대안경쟁으로 '무능론' 정면 돌파"

외부의 시각도 그 어느 때 보다 정책선거에 대한 기대가 높다. 이주희 교수(이화여대 사회학)는 문국현 후보가 제시한 비정규직 공약(채용사유제한, 노조 등 제3자에 차별신청권 부여)에 대해 "진보적 안"이라며 문국현-권영길의 정책 연합이 가능한 사안이라는 인식을 보였다.

박명림(연세대 정치학) 교수는 진보개혁 진영의 이같은 흐름에 대해 "최초의 정책선거가 될 수 있다"며 "보수쪽의 제기한 '민주세력 무능론'으로 민주진영이 헤게모니를 상실한 상황에서 더 나은 비전과 사회경제정책으로 '무능론 프레임'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양극화 해법 등을 놓고 누가 더 유능한지 '대안 경쟁'을 벌이자는 얘기다.

소수파의 한계로 대선 때면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을 거듭해온 진보개혁 세력. 하지만 이번엔 1997년이나 2002년처럼 극적인 반전, 다시 말해 <이상한 나라의 폴>을 도운 상상의 도구 '마술봉' '요술차'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누가 주인공 폴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폴의 무기 '딱부리'는 오로지 가치와 정책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었다.


태그:#정책연합, #가치연대, #반이명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