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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있는 논들이 태풍에 쓰러져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
▲ 연동마을 가을 풍경 마을 입구에 있는 논들이 태풍에 쓰러져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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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 연동마을 '어머니(미국에 있는 정동순 시민기자의 친어머니로 필자와 '연동 어머니'-'순천사위'로 인연을 맺음...관련기사 참조)'께 올 여름엔 한번도 찾아 뵙지 못했다. 수박이라도 한 덩이 들고 찾아가야지 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만 몇 번 드리고 말았다. 그러다 추석이 돌아오자 찾아 뵈려고 오랜만에 수화기를 들었다.

“잘 계셨어요. 요새 비가 많이 왔는디 나락은 안 쓰러졌능가 모르겄네요 잉? 인자 힘든 게 농사 그만 짓고 편히 사세요. 마음은 청춘이지만 몸은 절대 아니랑게요.”

“그라니도 감나무 꼴짜기에 있는 꼬추밭은 팔아부렀소. 지심(풀) 땜시 못 지어묵는당게라우. 올해는 집 가까운 밭에 고추만 쫴께 심었고만이라우. 확실히 몸이 작년 달고 올 다르데요. 몸이 무장무장 무겁고 기운이 떨어지더랑게요. 그라니도 통 연락이 없어서 전화 한번 히볼까 생각허고 있었는디 요로케 전화가 온 게 겁나게 반갑소. 올해 우리 집 닭 농사가 완전히 망해부렀소. 그라니도 엊그제 마을 사람들한테 순천 사우(사위) 오먼 닭 잡아 주어야 헌디 다 죽어부러서 어치게 히야헐랑가 모르겄다고 웃었고만이라우. 글매, 닭장 옆에 있는 의짓간(헛간)에 거름을 쌓아두었디 거름이 썩음선 거그서 나오는 까스에 닭들이 질식히서  죽어부렀는갑써라우. 비 온 날 고추 밭 매고 온 게 다 쓰러져 있더랑게요. 열 다섯 마리를 키웠는디 딱 네 마리 살고 다 죽어부렀어라우. 고 놈은 영감 제사 때 쓰고 명절 때 쓰먼 딱 맞아 아들이고 사우고 올해는 아무도 못잡아주게 생겼당게라우.”

“닭은 무슨 닭이에요. 연락 한번 히야제 험선도 여태껏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뜨거운디 농사 짓느라 애쓰셨네요. 농사 져서 자식들 나눠주는 재미도 있지만 몸 아파 누워불먼 그때부터는 미너리(며느리)들한테 눈치 받으며 살아요. 긍게 안 아프고 사시는 것이 자식들에게 도움 주는 것잉게 올해만 농사짓고 인자 짓지 말랑게라우.”

연동 어머니는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사셨다. 마치 호미를 놓는 순간 어머니 일생이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고 계셔서 농사를 그만두라고 자꾸 졸라댈 수도 없다. 아직도 건강하게 농사 짓는 걸 행복으로 아시는 어머니는 해가 갈수록 농사일이 힘에 부치는지 올해부터 밭 농사를 많이 줄였다.

된장, 참깨, 참기름, 들깨가루
▲ 겸면 어머니께서 주신 정이 듬뿍 담긴 선물 된장, 참깨, 참기름, 들깨가루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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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내게 올해까지만 논농사 짓고 앞으로 안 짓겠다고 약속했는데 몇 해 더 짓고 싶단다. 밭 농사는 풀이 너무 잘 자라 매려면 너무 힘들어 앞으로는 고추 농사나 좀 짓고 다른 건 안 짓겠단다. 논 농사는 심어만 놓으면 수확할 때 볏가마니 들고 날리는 게 문제지 그 외는 크게 손이 가지 않기 때문에 더 짓고 싶단다.

올해 일흔일곱이신 연동 어머니. 몸이 건강해 호미를 놓고 싶지 않다고 하니 좋기는 하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오신 분이 하루아침에 호미를 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추석 전날 찾아 뵙지 못할 것 같아 과일 두 상자를 챙겨 연동마을로 향했다. 미리 전화 드리고 가면 혹시 논밭에 나가 있으면 나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일만 방해될 것 같아 마을 근처에 도착해 전화를 드렸다. 마침 집에 계셨는데 내가 도착하자 벌써 대문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

“아이고! 참말로 반갑소 잉. 뭐더게 요론 걸 사가지고 댕긴데아. 절대 뭐 사 들고 댕기지 말라고 힜는디 또 들고 왔네. 나는 아무것도 준비를 안 힜는디 벌써 추석 선물을 사 들고 왔는게 벼.”

“걍, 배 한 상자 들고왔고만이라우. 여름에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해 정말 죄송했어요. 얼굴은 참 좋네요. 인자 농사 그만 지세요. 맘은 아직도 청춘이지만 몸은 아니랑게요.”

“그리야 헌디 고게 맘대로 안되고만이라우. 나 얼릉 어디 좀 갔다 올랑게 집에 들어가 계싯쇼 잉.”

“저희도 앞집에 좀 다녀올께라우. 어서 다녀오세요.” 아내와 함께 앞집 겸면 어머니 댁에 배 한 상자 들고 찾아갔다. 겸면 어머니는 우리 부부를 보더니 왜 이리 오랜만에 왔냐며 반갑게 맞이한다.

닭장 왼쪽에 거름이 쌓여있다.
▲ 연동 어머니 집 닭장 닭장 왼쪽에 거름이 쌓여있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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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작은 딸(아내를 딸로 부름) 줄라고 참기름도 짜 놓았는디 왜 인자사 왔어. 올해는 된장이 하도 맛싯게 떠서 좀 떠줄텅게 가지고 잉. 완전 웰빙 된장이라 맛싯을 것이여.”

“올 여름엔 한번도 못찾아뵜는디 뭐더게 요로케 귀한 걸 우리한테 주요. 자식들한테 나눠 주세요. 우리는 맨날 얻어 묵기만 헝게 여기 오기가 미안해요. 그라니도 포천 형님(사위)께서 명절 때마다 굴비 한 상자씩 보내 줘 미안히 죽겄당게요. 엊그저께 또 굴비 한 상자를 보내왔더랑게요.”

“우리 집은 농사를 안 진 게 와도 뭐 싸줄 것이 없어. 올해는 밖엔 양반이(남편) 적적하다고 콩밭에 뭣 좀 심어보자고 히서 참깨를 좀 심었어. 그리서 참기름 좀 짜 놓은 거여.”

도착하자마자 마을 어디로 부리나케 달려간 연동 어머니.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를 않는다. 아내는 아이들이 배고프다며 저녁밥 차려 달라고 계속 전화온다며 어서 가자고 재촉한다. 연동 어머니는 내가 집에 도착하면 맛있는 것들을 꺼내와 함께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데 도대체 어디를 가신 것일까.

대문 밖에 나가 기다렸다. 잠시 후 골목 길에 나타난 어머니. 닭을 한 마리 들고 오는 게 아닌가.

“올해는 닭을 못 잡아 준 게 하도 서운히서 ‘석곡떡’ 한테 닭 한 마리 달라고 사정히서 잡아왔소. 자기들도 닭이 모자란다고 안 판다는 것을 견치 뺏아왔고만이라우.”

“뭐더게 닭을 사 왔어요. 참말로 미치겄고만. 닭 안 잡아 주어도 묵은 것이나 다름 없는디 요로케 넘덜 집이서 닭을 사와불먼 어치게 된다요.”

수탉 한 마리 무겁게 들고 오며 골목 길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연동 어머니. 검게 그을린 주름진 이마에 햇살 한줌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연동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돌아가신 내 어머니 ‘월곡떡’이 아들 몸 보신 시켜주려고 닭을 잡고 있는 것만 같다.

조기 한 꾸러미 추석 선물로 보내왔다.
▲ 포천 형님께서 보내온 조기 조기 한 꾸러미 추석 선물로 보내왔다.
ⓒ 김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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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연동 어머니가 전생에 울 오메(우리 어머니)였는가 벼. 그러지 않고서는 남의 자식인 내게 이렇게 잘헐 수 있겄어. 한 해도 빼 놓지 않고 저렇게 닭을 잡아주는 것을 보면 분명 전생에 나와 무슨 인연이 있긴 있는가 벼. 안 긍가?”

“당신은 좋겄소. 위 아래 집 두 어머니께서 이렇게 당신을 친자식처럼 챙겨주시고 생각해 주시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행복이 또 어디 있겄소.”

닭 잡으러 가 닭장 속에서 이 닭 저 닭 들어올려보며 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닭을 잡아왔을 연동 어머니. 참깨랑 된장이랑, 여름 내 땀 흘려 가꾼 고소한 냄새 풍기는 참기름 병 바라보며 우리 부부를 손꼽아 기다렸을 겸면 어머니. 두 어머니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해주며 아름다운 삶을 퍼트리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태그:#도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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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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