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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11월 25일 후보 등록까지는 40여 일 남았다.

 

상황은 어떤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경선 직후 60%에 달하던 지지도는 조정기를 거쳐 50%대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50%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다시 50%대로 회복하기를 반복한다. 상대편은 어떤가. 오는 15일이면 대통합민주신당의 후보가 확정된다.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셋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엉망이다. 불법 동원선거 의혹이 불거지면서 경선이 두 차례나 파행으로 치달았다. 완전국민경선제라는 '형식'을 통해 드라마를 연출하려던 시도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어찌됐든 후보는 결정되겠지만 '국민경선제의 위상' '도덕적 정당성' 등은 상당 부분 훼손됐다. 게임은 끝난 것인가.

 

정당정치의 붕괴, 민주주의 위기

 

"이번 대선은 이명박 대 이명박의 싸움이다."
"서울시장 이명박과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대결 아닌가."
"이명박 자신과의 싸움이다."
"사실상 이명박에 대한 찬반 투표다."

 

정치권 안팎에서 떠도는 말들이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은 오로지 이명박 자신의 여하에 달린 것일까. 왜 이런 상황이 된 것일까. 승패를 떠나 '대선이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는 말들이 나온다. "최소한의 정책 인물 경쟁이 실종된 일방적 대선은 정당정치를 왜곡하고 장차 차기 정부의 국정 수행에도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점에는 문제는 심각하다"는 얘기다(<한국일보> 9일자). 2002년 대선만 해도 노무현 후보는 4월 28일, 이회창 후보는 5월 9일 확정돼 정책적, 도덕적 검증을 거쳤다.

 

특정 정파의 입장을 떠나 보더라도 이번 대선은 좀 이상하다. 이명박이 과반의 지지를 받을 만큼 그렇게 뛰어난가. '청계천 효과'가 그리 큰 것인가. 국가지도자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말실수'만 해도 수 차례, 같은 당 경쟁자에 의해 제기된 땅 투기 의혹, 주가 조작 의혹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표공약이라는 경부운하도 폐기해야 한다거나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부정적 견해가 80%에 달한다(SBS 여론조사). 그런데도 지지도는 출렁이지 않는다. 이명박 지지도는 콘크리트를 발랐나?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는 "'묻지마 지지'라고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말 이명박은 '신이 내린 후보'일까?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정치학자 10인에게 물었다. 대부분 '민주파' 교수들이다. 그들 중에는 일부 특정 후보의 캠프에서 자문역을 맡았다가 지금은 대학으로 돌아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여전히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조현옥 박사(이화여대 초빙교수)는 한명숙 캠프에서 일했다가 지금은 연구실로 돌아가 있고, 정대화 교수(상지대)는 신당의 대표비서실장을 맡았지만 최근 사표를 냈다. 고원 박사(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는 문국현 캠프에서 공보팀장을 맡고 있다. 현장정치를 경험한 학자들의 '후기'도 들어볼만 하겠다. 과연 2007 대선, 어떤 정치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단독으로 5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보이고 범여권의 후보를 다 합쳐도 그 비율에 크게 못 미치는 모습은 비교정치적으로 볼 때도 매우 드문 현상이다. 더욱이 불과 3년 전 총선에서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했던 정당이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락해 버린 일도 드문 현상이다."

 

강원택 교수(숭실대)의 말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신당의 경선에 대해 "사실상 끝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해구 교수(성공회대)는 최근 벌어진 신당의 불법선거 공방에 대해 "자해수준"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정당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민주개혁 진영에 대해 '괴멸' '몰락' 등 최악의 진단도 나왔다. 민주주의 위기론도 제기됐다. 강원택 교수는 "정치적 경쟁의 긴장감이 사라지면 권력은 전제나 오만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명림 교수(연세대)는 "근대 민주주의 생명선으로 불린 정당의 도괴, 정당정치의 붕괴"라며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서 정치와 정당의 역할에 대해 지금처럼 많은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주의에 대한 반동이 이명박 신드롬 낳아

 

왜 이 지경이 되었나.
         
우선 '진영(혹은 정당)'의 측면에서 보자. 정상호 교수(한양대)는 "보수 정당은 두 번의 대선을 졌지만 버티고 재정비해왔지만 개혁진영은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통령과 1당의 자리를 내줬지만 지방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호남의 진보적 지역주의마저 분당이나 대연정 제안을 통해 해체시키면서도 새로운 지지층을 충원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지적이다. 보수의 '재구축'과 진보의 '해체' 효과가 극명하게 드러난 결과라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의 출발은 화려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의회권력을 바꿨다! 더욱이 수도권(44.3%) 충청(44.5%) 호남(55%) 영남(32%) 강원제주(41.6%) 등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으면서 국민 통합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대선을 앞두고 벌인 대분열과 대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지역주의 극복, 깨끗한 정치라는 핵심적인 개혁의 성과마저 스스로 부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당정 분리는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한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자중지란과 내부 권력투쟁의 격화를 초래했다"(박명림). 

 

한때 과반을 차지했고, 지금도 이래저래 제1당의 위치에 있지만 열린우리당 초기 열정이 '과소비'된 의원들은 지금 지쳐있다. 신당의 속살을 들여다본 정대화 교수는 "개혁의 기풍을 사라지고 무기력과 피로감에 절어 있었다"고 말한다. "운동의 열정을 정치의 열정으로 전환시키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운동에서 정치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는 남았지만 '정체성'은 없었다. 과연 이들에게 정책의 방향이나 기조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단적으로 한미FTA만 하더라도 찬성이든 반대든 입장이 있어야 하는데 기권과 무응답이 다수다. 찬성 입장인 한나라당의 전략적 침묵에 편승하는 꼴 아닌가. 찬성하자니 국민이 무섭고, 반대하자니 미국이 무서운 것 아닌가. 기회주의적이다. 민주화 시절, 반대를 외치는 것은 산수 문제를 푸는 것이었지만 민주화 이후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건 고등수학인데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는 과도한 '정치주의'를 지적했다. "여권이 사상적으로나 정치스타일이 여의도 정치주의에 갇혀서 시민들이 가진 삶에 대해 감수성이 전혀 없다"고 통박했다. 그 결과 경제주의로 상징되는 '이명박 신드롬'을 낳았다는 것. 이명박을 떠받치는 수도권, 화이트칼라, 40대로 표상되는 '중도세력'에 대해 안 교수는 "정책이 아니라 참여정부와 여권에 대한 무조건적 반동"이라며 '중도극단주의'라 명명했다. 따라서 그들의 지지에는 일정한 '공허함'도 배어 있다. 

 

보수세력과의 담론경쟁에서 패배

 

헌법 위에 '정서법'이 있다고 했던가. 그 정서는 두 개의 대상을 향해 있다. '진보세력'과 '노무현'이다. 10인의 교수들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담론에 정치가 포위되었다는 데 입을 모았다. 대표적인 프레임이 '진보세력 무능론'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능력이 진보, 보수의 평가 기준이 된 적이 없다지만, 설사 진보세력 무능론의 사실이 아니라 해도 결과는 보수세력의 담론경쟁에서 진보가 패배했다는 것이다.

 

내부 분열도 편승했다. 진보진영은 노무현 정부의 무능을 주장했다. 박명림 교수는 "노무현에 대한 증오가 너무 크다"며 "노무현 정부의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 실패가 진보진영 전체의 무능론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지표상에 드러나는 노무현 정부는 무능하지 않다. OECD 회원국 중에 한국처럼 연 4% 이상의 경제성장율을 보이는 나라는 드물다. 또 보수세력이 쌍수들고 환영하는 나라별 FTA도 착착 진행되고 있지 않나.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로 인해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이명박에 비견할만하다.

 

조성대 교수(한신대)는 "유권자들이 신화(헛것)에 매몰되어 있다"며 "양극화가 성장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이명박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말한다. 잠시 균형인사비서관으로 청와대 생활을 했던 조현옥 박사(전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안에서 직접 느껴보니 참여정부에 대한 조중동의 제목 뽑기는 거의 테러 지경"이라며, 반면 이명박에 대해선 "지도자의 전제 조건인 도덕성과 정책이 마치 달성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2대8의 사회. 경제성장율 만큼이나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는 양극화 지수.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참여정부가 불만이다. "이 상반된 불만이 하나의 불만으로 진보진영을 강타"했다(정대화). 상층의 불만을 하층이 받는 일종의 '국민 배반'이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 이번엔 '바꿔 열풍'의 주도권을 보수가 쥐었다. 영화 <친구>식으로 표현하면, 민주정부 10년에 대해 "됐다. 고마해라. 많이 묵읏다 아이가"라고 말하고 있다. 
 
구도의 실종, 검증의 실종

 

앞으로 이명박에 대한 '묻지마 지지'는 계속될까.

 

이명박의 지지도를 55%로 놓고 보자면(무응답 제외), 2/3가 이명박 지지, 1/3은 비이명박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지지층은 다시 절반의 적극 지지층과 나머지 절반의 소극 지지층("대안이 없기 때문")으로 나뉜다. 이에 대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한귀영 연구실장은 "굉장히 큰 덩치의 지지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유지할 동력이 구성되어 있지 않다"며 '취약성'을 지적했다. 더욱이 이래저래 악재들이 터지면서 '잽'을 맞아왔다. 출혈은 없어도 내상, 즉 멍은 들었다는 얘기다.

 

이명박의 취약성은 본질적으로 '진짜 보수'의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안병진 교수는 "천민자본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보수의 이념을 제시했다거나, 홍준표식의 서민을 대변하는 보수포퓰리즘이라도 실천했다면 이명박 지지벽은 굉장히 견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원 박사는 이명박에 대한 몇몇 여론조사에서 50%대가 근소하게 깨진 수치를 거론하며 "40%대 내려가는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요인으로 한나라당 지지층을 제대로 통합하지 못했다는 점. 다시말해 박근혜를 제대로 끌어안지 못했다는 얘기다. 또한 경선이 끝난 이후 두 달 동안 어떤 이슈도 주도하지 못했다는 것과 부시 면담 무산 등 외교적 실책, 말실수 등이 겹친 결과 불안정한 5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경쟁의 균형은 회복될까? 학자들의 견해는 갈렸다. 비관론의 핵심은 '이명박 검증'의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선거는 인물 보다 '구도'의 대결이다. 노선과 정책, 이념, 정서가 응축된 진영 대 진영의 대결. 그런데 완강한 한축에 비해 다른 한축은 '내부 정렬'도 하지 못한 상태다. 이른바 범여권 얘기다. 박명림 교수는 "정치적 정렬이 이뤄지면 정당 간 대결이 되면서 좀더 나은 쪽에 대한 상대적 지지로 유권자가 편성되는데 구도가 형성되지 않는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검증'은 실종돼 버렸다. 정해구 교수(성공회대)는 "검증은 박근혜가 조금 하다만 것에 그쳤다"며 "검증은 언론이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 정당과 후보가 있어야 정치적 힘으로 전환되고 지지도가 빠지기도 하는 것인데, 신당이 죽을 쑤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양자 대결 구도 하에서 유권자들은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해 왔다. 그 같은 차선 혹은 차악의 논리가 부메랑이 되었다. "신당의 처지가 이명박을 상대적으로 덜 나빠 보이게 하는 효과"(정해구)로 이어졌다.

 

다수의 학자들은 범여권이 후보단일화 단계까지 간다 하더라도 49:51의 균형은 회복되기 힘들다고 예측했다. 기껏해야 3대7 수준?

 

반면, 임혁백 교수(고려대)는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고 낙관론을 폈다. 

 

"대선은 일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하물며 총선도 그렇지 않다. 지난 탄핵 때 한나라당이 망할 것 같았지만 개헌 저지선을 지켜달라고 읍소해 선방하지 않았나. DJ 때도 1차 정상회담 직후 총선에서 예상을 뒤집고 한나라당이 이겼다. 그동안 이명박도 불리했다. 신정아 사건, 정상회담 이슈에 밀려 뉴스의 주변부에 있었다. 남의 마당이나 쓸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신당은 2차 통합의 단계가 남았다. 다른 의외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정치는 '바람'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하긴 그렇다. 92년 대선에서 막판에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지만 이는 되려 영남 결집을 유도해 김영삼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87년 대선도 다 이긴 판이었지만 '손님 실수'(양김 분열)로 정권 교체에 실패했다. 선거는 구도와 행위의 변증법이라 했나. 정대화 교수는 "구도만 보면 지는 싸움이지만 행위자들에 의한 정치적 역동성이 늘 한국정치를 예측불가능하게 해왔다"며 가능성을 접지 않았다.

 

민주주의 위기로 이어지나

 

문제는 대선 승패를 벗어나 있었다. 학자들은 진보와 보수의 경쟁 구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컸다. 신당 경선의 불법성 논란, 변양균, 정윤재 의혹 사건 등으로 인해 진보의 '도덕적 헤게모니'마저 치명상을 입었다. 물론 과거 정권에 비해 사건의 크기는 작지만 참여정부의 지나친 도덕성의 강조가 양날의 칼로 작용했다. 박명림 교수의 말이 뼈아프다.

 

"장기간 한국사회가 보수 우위에 진보가 도전하는 균형 관계였다면, 김대중 정부 이후에는 진보세력 우위에 보수가 도전하는 균형관계였다. 근데 이번에는 보수가 진보세력 무능론을 확산시키는데 성공한데다, 진보는 도덕적 헤게모니마저 급격히 상실했다. 집권 못하는 것보다 긴 보수화의 국면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덧붙이는 글 | 당분간 <대선진맥>의 '박대박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의견 기다립니다.


태그:#이명박, #대선, #무능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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