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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신당 경선이 파행으로 가고 있다. 불법 동원선거 논란이 확대되면서 '국민이 빠진' 국민경선은 그 정당성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2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지만 글쎄, 훈풍이 돌까?
 
정체성을 대체 모르겠는 급조된 신당과 다 합쳐도 이명박의 절반도 안되는 지지도의 후보들에게 던져진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놓지 않으면 냉랭한 민심에 봄은 오지 않을 것 같다.

 

1일 서울을 떠나 전주로 내려갔다. 강금실의 '길 찾기'에 동행했다.

 

강금실.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열린우리당의 요청으로 서울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패배한 뒤 본업인 변호사로 복귀, 다시 1년 3개월만에 정치 현장으로 돌아왔다. 신당의 평당원이고 자원봉사자의 자격이다.

 

한때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었던 그다. 아무런 정치활동도 하지 않는데 꾸준히 여권의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상위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접었다. 바닥에서 출발하는 길을 선택했다. '보병'의 길이다. 자신의 미니홈피에서 "나는 보병인 게 자랑스럽다"며 다음처럼 썼다.

 

"어떤 이는 제가 왜 정치에 돌아왔느냐, 잔다르크냐, 네가 서울시장선거 때처럼 전체를 구출하는 전사로 오인하는 것이냐, 너는 이제 솔져에 불과하다는 평을 하였습니다. 네, 참 맘에 듭니다. 저는 일개 솔져인 제가 만족스럽습니다. 저는 가장 뒤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보병 중의 한사람인 제가 만족스럽습니다."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달 20일 신당 경선의 모바일 투표 자원봉사단 '엄지클럽'의 출범식에 참석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함께 '72시간 마라톤 유세' 등을 펼쳤던 김영춘, 이인영, 임종석, 오영식, 최재성, 우원식 등 젊은 의원 10여명과 함께 "진정한 정치, 소통하는 정치, 투명한 정치"에 한 목소리를 냈다.

 

[오후 1시 30분]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장... "정당성 부여할 수 있는 유일 대안"

 

이 곳에 지역구가 있는 장영달, 이광철 의원을 비롯해 시·도의회 의원들이 마중나왔다. 기자회견을 시작할 즈음, 장 의원이 "자, 이리와 서시라"며 강금실의 옆에 나란히 설 것을 종용했지만 "자원봉사이기 때문에…"라며 그 같은 도열을 정중히 사양했다. 

 

"이대로 경선이 잘못된다는 것을 바라만 보기보다 뭐라도 할 수 있다면 하자, 그런 취지로 참여했습니다."

 

모바일 투표가 죽어가는 신당의 경선에 남은 유일한 대안이라는 인식이다. 휴대전화로 지지 후보를 찍는 '모바일 투표' 신청자는 지난 30일 1차 마감 결과, 7만7000명. 신당측은 오는 10일 4차분까지 20만~30만명 가량을 기대하고 있다. 

 

직접 투표소로 가서 찍는 경선 선거인단은 대략 17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투표율을 20%로 잡는다면 30만명이 투표를 하게 된다. 이 보다 투표율이 높은 방식의 모바일은 60%로 가정한다면 12만명. 지역별 순회 경선을 제압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악순환"이다.

 

"경선 선거인단의 상황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불법 동원선거 논란에 휩싸여 있다. 모바일 모집도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악순환인데…, 지금으로선 국민경선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모바일 투표다. 그래야 후보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느 후보라도 이겨도 이긴게 아닌게 돼버린다는 위기의식이다. 동시에 당 지도부와 후보들에게도 촉구했다. "상호경쟁이 아니라 국민 앞에 나서서 국면을 타개하는 진정한 호소가 필요하다"고. "앞으로 잘해 보겠다는 세 사람의 공동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해 달라"는 요청이다. 전국을 돌며 '3보 일배'라도 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오후 2시 15분] 전주대로 향하는 차안... "나의 지론은"

 

다음 행선지는 전주대다. 경찰행정학과 학생들을 상대로 '리더십'에 관한 특강이 예정되어 있다. 이동하는 차안에 동승해 몇 가지를 물었다.

 

- 신당의 상황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보지 않나요.
"나 역시 고민의 성숙이 필요해요. 원론적인 얘기는 할 수 있지만 당내 상황을 뼈저리게 체험한 적은 없단 말이지요. 열린우리당에서 신당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부딪쳤던 현실적인 문제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요. 그걸 모르고서 열린우리당 실험 자체가 시기상조였는가, 할만 했나 판단이 잘 안되요.

 

개혁이라는 게 할 때는 옳았는데 나중에 실패할 수 있는 거거든요. 조광조의 개혁이 그랬고. 시대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실패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어렵죠. 우리당 실험이 그 시기에 옳았는가, 왜 실패했는가하는 진단이 나와야 하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겉돌고 있어요. 정확한 진맥을 위해선 내부 사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 강금실이 진단하는 민심의 현주소는 무엇인가요.
"국민들은 '신당이 뭐하는지 모르겠어' 그러거든요 우리당이 장기간 지지도가 떨어져 왔잖아요. 제가 기억하기로 서울시장 선거 마지막 날 지지도가 19%였는데, 1년 넘게 계속 떨어져왔고, 이게 회복이 안된채 다시 신당으로 넘어왔는데 그럼 새로운 게 뭐냐, 그걸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 아까 후보 3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취지로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그런 것까지 말하기는 어렵고요. 다만 국민의 관심을 끄는 것은 후보들이죠. 야권의 후보가 절반이 넘는 지지도를 보이고 이쪽은 5%만 넘겨도 잘했다는 상황인데 후보들이 상호 경쟁에 앞서 여권의 후보로서 어떤 각오와 비전을 준비하고 있는지 세 분이 모여 동맹관계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큰 방향은 같잖아요. 그게 없이 가니까 안타깝죠."

 

- 이대로 가다가는 후보가 뽑히더라도 정당성 문제가 생기겠는데요.
"강력하게 말하고 싶어요. 후보자나 캠프에 있는 분들이 국민 전체가 너희들만의 경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해요. 우리끼리 싸워봤자 우리끼리 점점 수렁에 빠지는 되는 거죠. 모든 메시지와 발언을 국민 전체를 의식하고 국민을 향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해요."

 

- 여권의 상황이 거의 구제불능의 상황인데도 나선 이유는.
"저는 범여권의 승리를 원해요. 중립지대, 젊은 의원들이 모바일의 의미를 살리자고 자발적으로 비용도 갹출해서 합류를 요청했을 때 거절할만한 이유가 없었어요."

 

- 서울시장 선거 때도 그렇고 매번 어려운 국면에 호출을 받고….
"어쩔 수 없죠. 개인의 유불리에 매여 있기보다 대의가 옳다면 헌신이 필요한 때라고 보는 것이지요. 개인의 것을 생각했다면 선뜻 합류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잘했다고 생각해요. '뭐든지 안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안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 열린우리당에서 신당의 당원으로 자동 승계되셨는데, 혹시 탈당할 생각은 안하셨는지요.
"생각을 했었어요. 대통합신당에 동의했고 촉구하는 의미에서 탈당을 생각했는데 김근태 전 의장이 나서서 대선주자 연석회의를 통해 대통합 합의를 이끌어내셔서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 '제3지대'에 남을 생각은 없었나요.
"일단 저는, 이번 대선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평범한 당원의 한 사람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고 그 이상 대선에 뛰어들 의사를 없기 때문에…."

 

-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시죠.
"해야 하죠. (문 후보가)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것은 두고 봐야겠지만. 양대 정당제가 정착되어온 한국사회에선 통합과 단일화가 대원칙이라고 봅니다."

 

- 문 후보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십니까.
"제가 후보 평가는 자제하고 있어요."

 

 

[오후 2시 40분] 경찰행정학과 특강... "권력 아닌 권한"

 

앞으로 공권력의 일부를 담당할 예비경찰들을 상대로 강금실은 "권력은 힘이 아니라 권한과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또 권력의 '비어있음'을 들어 "권력을 사유화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에겐 무거운 화두일 수도 있겠다. 재미난 질문들이 나왔다.

 

"김승연 회장 풀려났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 살던 분들이 꼭 (감옥에) 들어가면 아프더라구요(웃음). 왜 그리 병이 많이 걸리는지… . 평소에 고생을 너무 안해봐서 거기에 들어가면 스트레스가 더 심한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공직자의 언행'에 관한 지적도 나왔다. 최근 신정아, 정윤재 사건과 관련 검찰과 법원이 구속영장 청구-기각을 둘러싸고 벌이는 신경전을 겨냥한 듯하다.

 

"수사기관은 사실 발언할 일이 없어요. 뒤에서 안 보이는 게 맞아요. 그런데 최근 들어 수사기관이 너무 정면에 노출되고 있어요. 할 말이 있다하더라도 공직자의 언행은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해요. 그런데 당장 누가 옳다 그르다 생각 안해요. 같은 데서 집안싸움 한다고 보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겁니다."

 

[오후 4시 50분] 당원간담회... "내면의 열정 잊지 말길"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문화체험관. 한옥 마룻바닥에 널찍이 둘러앉은 여성 당원들을 상대로 모바일 투표의 취지를 설명한 뒤엔 얘기가 '선문답'처럼 이어졌다. 경허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최인호의 장편 <길 없는 길>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절벽 앞에서 길이 없을 때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요? 바닥에 납작 엎드려보면 동물의 길이 사람의 길이 된다는 것이죠. 너무 힘 빠져 하지 마세요. 어려울 때 일수록 내면의 열정을 잊지 말고 서로 소통해야 합니다."

 

이후 사회자가 모바일 투표를 설명하던 중 "모집"이라는 표현을 쓰자, 강금실은 "제가 설명할게요" 그러더니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인위적으로 모아달라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오후 5시 30분] 문지방에 걸터 앉다... "내가 무엇이 되기보다"

 

전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KTX를 타기 위해 익산으로 향하기 전. 한옥 문지방에 걸터 앉아 잠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 '바닥에서 출발한다'는 말은 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제가 (서울시장) 선거를 겪어본 바로는 우리가 머리로 정치를 하는 것과 실제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것 사이에는 격차가 있다는 것이죠. 굉장히 정치가 소중하다, 지금의 정치가 국민의 생활도 돌아와야 한다, 너무 많이 국민과 동떨어진 매스컴 정치, 여의도 정치로 되는 것이 큰 문제다는 것들을 깨달았어요.

 

반면 실제 정치인으로서 정치 현실에서 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에 저 고민은 굉장히 정치가 매우 어렵다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는 내가 무엇이 되는 정치라기보다 얼마나 우리 정당 정치가 더 나아질 것인가에 고민이 있어서 처음 시작한 사람이나 다름이 없지요. 가장 정치의 초보단계에서 차근차근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정치는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안하고 해서 또 안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요. 많은 여건과 상황, 한 사람의 이해관계와 많은 사람의 염원이 합쳐져서 움직이고 조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제가 정치에 대한 고민은 있지만 제가 뭘 하겠다는 것이냐는 얘기를 하기가 어렵고 지금 단계에서 자원봉사, 아 이거는 할 수 있겠다 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정치활동이잖아요."

 

- 현장 정치에서 시작하시겠다는 건가요.
"정치를 정말로 밑바닥 당원 생활부터 하는 각오로 본인 자신이 정치적 훈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 지지자들은 강금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를 할지 궁금해 해요. 왜 대선 후보로 나설 생각은 접었는지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비로소 정치체험을 한 것이죠. 거기에서 느낀 정치 현장의 문제, 정치의 회복, 정치인다운 자세에 비춰보면 올해 대선 출마가 옳은 것이냐, 저는 아니라고 봤어요. 본인이 최대치의 역량을 발휘할 정도에 가 있을 때 대선 출마를 해야 하는데 저는 이제 겨우 인식하고 느끼고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정치인으로 최대치냐,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솔직하고 싶었습니다."

 

- 왜 멀쩡한 사람도 정치판에 들어가면 욕을 먹고 이상해질까요.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 출발점은 무엇이냐,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제가 진정성, 시민주체성, 포용성을 얘기했지요. 지금도 일관되게 고민하는 지점이에요. 나를 지켜내야 한다. 국민이 중심이 되는 미래의 민주국가 건설을 위해 내가 최대치의 역량인가 봤을 때 진정성의 문제는 없는가? 아직은 아닌 것이죠.

 

사람들에게 정치판이 진흙탕 그래요. 정치판 가면 다 이상해진다고 그러는데 나는 반대로 봐요. 정치가 매우 어려운 곳입니다. 역사와 민족을 위한 가장 지고지순의 소명과 가치가 가장 밑바닥의 욕망, 권력욕과 엉켜서 조직을 움직이게 하는 어려운 영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서 잘 하던 사람들도 정치로 오면 사회적 페르소나(가면)를 다 벗게 되는 것이죠. 자신의 본질이 다 드러나는 것이지 망가지는 게 아닙니다. 여기에서 인격을 지켜내고 일관성을 지켜내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지요."

 

차 시간이 다 돼, 이동해야 하는 그를 쫓아가 한 가지 더 물었다.

 

- 후보 단일화 이후 좀더 적극적인 역할 주어지면 하시겠습니까. 선대위원장이랄지.
"장담 못하겠어요."

 

- 그럼 모바일 투표 자원봉사가 끝인가요.
"그 때 가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날 자정께, 서울서 손학규-이해찬 후보는 경선 중단을 요구하는 심야회동을 가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튿날 당 지도부는 2일과 3일의 합동연설회를 취소했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모든 문제를 봉합해 버린 '대통합'의 현주소.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태그:#강금실, #모바일투표, #신당경선,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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