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자저하의 만수무강을 비는 전폐(18세기). ‘세자저하수천수’라고 쓰여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양녕대군은 현재 만수무강은커녕 지위가 위태롭다
▲ 전폐. 세자저하의 만수무강을 비는 전폐(18세기). ‘세자저하수천수’라고 쓰여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양녕대군은 현재 만수무강은커녕 지위가 위태롭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남편의 바람기에 쫓겨 가는 세자빈

뜨거운 숨을 토해낸 태종의 두 눈은 분노에 이글거렸다. 마치 활화산 같았다. 노기충천한 태종은 내관(內官) 정징과 사알(司謁) 차윤부를 급히 들라 일렀다.

“부인은 지아비의 부모를 중하게 여겨야 한다. 숙빈(淑嬪)은 비록 지아비의 뜻을 따랐으나 나의 뜻을 어찌 알지 못하였는가? 어리를 몰래 들인 것을 내가 심히 미워한다. 한경(漢京)에 가서 숙빈을 아비 집으로 내보내라.”

숙빈은 세자빈이며 김한로의 딸이다. 친정으로 내쫓으라는 얘기다. 임금의 내침을 받고 세자전을 떠나는 숙빈에게 태종은 내관 정징을 통하여 전교했다.

“부인은 지아비의 집을 내조하는데 네가 지난해의 사건 때에도 나에게 고(告)하지 아니하였다. 내가 책망하니 ‘분명히 죄가 있습니다. 뒤에는 마땅히 고쳐 행동하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제 너는 이 사건에서도 또 나에게 고하지 않았으니 이미 나를 속이고 또 너의 지아비의 부덕한 것을 드러낸 까닭으로 너를 내보낸다.”

숙빈을 사가로 내친 태종은 한경(漢京)에 있는 김한로를 개성으로 소환하라 명했다. 소환 령을 받은 김한로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올 것이 왔다’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세자의 청에 못 이겨 어리를 세자전에 들인 것 자체가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주홍 두꺼비다.”

김한로가 한경에서 출발했다는 보고를 받은 태종은 ‘왜 이리 늦냐?’고 성화를 냈다. 의금부 관원을 벽제에 내보내어 빨리 잡아오라고 명했다. 중로에서 붙잡혀 온 김한로가 개성에 당도했다.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와 사위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장인

“세자가 어리를 또 들이어서 아이를 가진 사실을 경(卿)은 알았는가?”

“신은 실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어리를 쫓아낼 때, 세자가 괴로워하며 침식을 편히 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그녀의 인생이 가엾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세자의 정을 가련하게 여겨 그녀로 하여금 연지동 집에 와서 1개월가량 살게 했습니다. 그녀가 집을 마련하여 나가서 거처하게 되자 신이 식량을 주었습니다. 그녀가 전내에 다시 들어간 것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경이 알지 못한다고 하면 국론이나 내가 경이 실로 알지 못하였다고 믿겠는가?”

“사세(事勢)로 본다면 주상의 마음이나 국론에서는 반드시 신이 알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내가 세자에게 마치 새끼를 키우는 호랑이와 같이 엄하게 하고자 하였다. 경은 사위(壻)를 사랑하여 그녀와 살도록 허락하고 양식을 주었으니 경은 과연 덕이 있다."

김한로를 향하여 싸늘한 조소를 날리던 태종이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 경에게 명하여 숙빈에게 세자의 잘못을 고(告)하지 않은 허물을 가르치게 하니 대답하기를 ‘과연 잘못이 있습니다.’ 하고서 이제 다시 전과 같이 나의 명(命)을 따르지 않은 것이 시아비(夫父)를 중하게 여기는 짓이냐? 숙빈은 이미 사람을 보내어 경의 집으로 내쫓았다.

내가 용렬한 자질로서 나라의 임금이 되어 외척에게 변고가 있었고 골육을 상하게 하여 부왕에게 죄를 지은 것을 나는 심히 부끄러워한다. 이제 또 아들의 처가 식구들에게 감히 불선한 일을 행하고자 하겠는가?

나와 경은 어릴 때부터 교제가 두터웠고 또 한 집안을 이루었다. 경의 나이가 61세이니 나와 경이 사생(死生)의 선후(先後)를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데 세자로 하여금 어질도록 만들어야 경이 그 부귀를 평안히 누릴 것이다.

이제 경은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세자로 하여금 불의한 짓을 하게 하였으니 종묘사직은 어찌 되겠느냐? 경의 한 일을 만약 바른대로 진술하면 죄의 경중을 내가 마땅히 처리할 것이며 어찌 반드시 유사(有司)에 내려서 이를 묻겠는가?”

논리 정연한 질책에 초라해지는 김한로

준엄한 논고와도 같은 태종의 일갈이다. 모든 것을 사실대로 토설하고 반성하면 용서해 줄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엄중 문책하겠다는 뜻이다. 태종과 김한로는 막역한 사이다. 공적으로는 임금과 신하이고 사적으로는 동방이자 사돈관계다. 하지만 현재는 추궁하는 자와 추궁당하는 관계다. 

임금의 질책에 김한로는 변명으로 일관했다. 불의를 방조한 행동에 반성 없이 횡설수설하는 김한로에게 더 이상 묻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라 명했다. 김한로가 물러가자 이명덕이 머리를 조아렸다.

“신 등이 김한로의 말을 들으며 안색을 보니 거짓이 드러났습니다. 청컨대 의금부에 내려 그 정상을 국문(鞫問)하소서.”

“어찌 세자의 장인을 유사(攸司)에 내리겠는가? 너희 4대언(代言)은 이미 같이 묻고 들었고 나도 또한 그 곡직(曲直)을 아니 다시 청하지 말라.”

한경으로 돌아간 김한로를 다시 불렀다. 김한로가 타고 다니는 말 말굽에 불이 붙을 지경이다. 병판이지만 국사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으니 국사는 뒷전이다. 지체 없이 개성에 도착했다.

사위에게 여자를 붙여주는 것이 사위 사랑이냐?

“어리가 세자전에 들어간 사실을 진정 몰랐단 말인가?”

“집에 돌아가서 불비(佛婢)라는 계집종(婢)에게 물으니 ‘지난해 세자의 생일에 택주(宅主)가 전(殿)에 들어갔다가 도로 나올 때 한 시녀가 택주(宅主)의 일행에 감싸여 나왔습니다.’고 하였으므로 그때서야 그 여자가 세자 전에 들어갔다가 도로 나온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리가 아이를 낳은 것은 어찌된 일이냐?”

“지난해 세자의 생일 뒤에도 시녀 한 사람이 모친을 감싸고 나왔다고 들었으므로 불비(佛婢)에게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이었는지를 물으니 불비가 말하기를 ‘그 여자가 어리인지를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고 하였습니다.”

“계집종 핑계하지 말라. 너의 말은 전후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 사실도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옛날 초궁장(楚宮粧)이 쫓겨날 때도 경은 머물러 두기를 청하였으니 경이 세자를 위하여 악을 꺼리는 마음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경이 바른 대로 말하면 경의 죄는 내가 바로 상량(商量)하여 처리하겠다.”

“발명(發明)할 바가 없습니다. 마땅히 정상을 알았던 것으로써 죄를 받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노역에 끌려나온 장정들에겐 ‘집으로’ 라는 말이 죽었던 아버지가 살아온 것만큼이나 반가운 말이지만 관리들에게 ‘집으로’는 반가운 말이 아니다. 김한로는 현직 병조판서다. 죄를 대기하라는 뜻이다. 한양으로 돌아가는 김한로의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이무렵 개성과 한양 길은 임금의 명을 전하는 전령의 말발굽 소리와 흙먼지가 끊이지 않았다.


태그:#태종, #양녕대군, #김한로, #숙빈, #이방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