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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가 일본 사회에 유행처럼 다가왔다면 한류의 열기가 수그러들고 인기가 떨어지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한류가 문화현상에서 일상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았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상의 풍경 속에 한류로 먹고 사는 생활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한류로 인해 수많은 일자리가 생겼으며, 그 한류로 생활을 꾸리는 이도 등장했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일본 내 한류의 실상을 엿보기로 하자.

  일본 내 수많은 한류잡지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한류전문 월간지를 표방하며, 지난 2004년 1월 'KEJ(KOREA ENTERTAINMENT JOURNAL)' 창간호를 선보인 장동엽 편집장을 21일 만났다.

  사무실을 찾은 시간은 점심 때가 훨씬 지난 시간이었지만, 추석 전에 다음호를 마치기 위해 끼니를 잊은 채 직원들과 마감을 서두르고 있었다. 유명한 한류스타들의 친필 사인이 들어있는 기념품 내지 선물들이 가지런하게 줄을 맞춰 필자를 반겨줬다. 이윽고 원고 더미에 묻혀 있던 장 대표는 대충 책상을 치우고 인터부에 응해줬다.

  - 한류전문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전문가에 묻기가 그렇지만, 대체 한류란 무엇인가?
   "연예 비즈니스다. 하지만, 여기 일본에서 한류라고 하면 괜찮지만, 한국 국내에서도 한류스타라는 이름을 앞에 거는 건 좀 이해하기 힘들다. 거부감이 있다. 국내 드라마에 출연하고, 국내에서 음반을 선보이고, 비행기만 타면 한류스타인지, 그런 획일화보다는 최소한 국내에서는 액션스타, 눈물스타 등 좀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류란 흐름이지 않은가 싶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돈이 있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는가. 굳이 에베레스트산에 갈 필요는 없다. 즉, 상업적으로 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물이 흘러가서 현지에서 뿌리를 내린 콘텐츠로서의 한류는 인정할 수 있겠지만, 출발부터 한류라는 상품을 내거는 자체가 모순이 많다고 생각한다."

  - 현재 일본 내의 한류 분위기는 어떤가. 한류의 침체라고 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좋은 것은 세계 어디에 가도 좋게 느껴진다. 마음이 통하는 것은 오지에 가도 마음이 통하는 법인데, 국내에서 인정받으면 된다. 특히, 트랜드 드라마와 같은 현대물은 언어만 다를 뿐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똑같다.

  한류 붐 때는 이에 편승해 영화, 드라마가 무조건 받아들여져 방대하게 커진 것이 사실이다. 붐이 빠진 지금 한류정체, 침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현장을 줄곧 지켜본 사람의 견해로서 말하자면 일본내에서는 하나의 장르로 정착됐다고 본다.

  한류 콘텐츠의 질과 내용이 발전해야 하는데, 붐 이후 만들어진 수 많은 드라마가 한류드라마를 표방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본 수출용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모두 실패했다."

   - 일본의 주요 스포츠신문들이 한류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게 되었고, 한류 전문지 역시 속속 폐간하는 등 부침이 심한데, 그 이유는?
  "연예인이 주목받고, 스타가 인기를 끈다고 해서 취재 기자가 떼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한류잡지는 대부분 대형 출판사나 신문사의 하청을 받아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KEJ는 순수하게 한국인의 손으로 만드는 잡지라는 긍지로 적자를 각오하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다들 오래 가겠느냐는 식으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취재 현장에 가면 최고참이고, 모두한테 인정받게 됐다.

  'K-PopSTAR'이 월간으로 시작해 격월간으로 간행되더니 결국 폐간되었고, 'It's KOREA'도 월간으로 창간해 지금은 격월간으로 나오고 있다. 2년전에 간행한 'K붐'이 'KEJ'와 함께 한류전문 월간지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주간여성' '여성세븐' 등 주간지도 있지만, 한류 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가십거리나 흥미성 보도에 그치고 있다. 스포츠신문들의 기자들을 만나면, 이전처럼 취재가 용이하지 않고 정보도 적다는 불평을 한다. 일본에 방송된 드라마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한류스타라고 일본에 오지만, 사실 홍보 부족으로 매스컴의 노출이 적은 것도 문제다. 또한, 매스컴을 대하는 태도도 스타 이전에 일본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왔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 한국과 일본을 오고 가면 양국에서 현장 취재하는데, 먼저 일본 내 취재 환경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한국은 취재가 쉽지만, 일본은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일본의 경우는 매체를 선정한다. 자기 입맛에 맞는 매체를 선정하는데, 대답하기 곤란한 경우는 대개 한국 소속사의 요청이라는 식으로 변명을 둘러댈 때도 많다.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 일본의 경우는 인터넷 매체가 제한되어 있지만, 한국은 인터넷 매체가 주류로 속도 경쟁이 과열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인터넷 매체를 통한 노출 빈도가 적다.

  또한, 한류 팬이 주부층을 중심으로 연령이 높은데, 최근에는 한류스타의 취재를 'anan' 'JJ' 등 젊은 취향의 패션잡지 등에만 허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직 문자세대라고 할 수 있는 한류팬의 한류전문 잡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배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무가지 프리매거진, 스트리트페이퍼는 인지도를 넓히겠다는 측면에서 괜찮지만, 전문성과 정확한 내용을 보도한다는 측면에서 한류잡지를 배제한 한류 비지니스는 좀 어불성설이다."

   - 취재도 그렇지만, 보도 내용도 이젠 국경을 뛰어넘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엄청난 속도로 파급된다. 한국측 연예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달에 몇번이고 한국으로 날아가 취재를 하며, 가지 못할 경우 현지 취재원을 보내 가급적 현장 분위기와 사실들을 보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보도제한 내지 취재를 통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좀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 제공을 하는 데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심지어 한국 현지에서 취재할 때도 S소속사의 경우 현지화를 내걸고 취재 제한을 하는데 실제 한류팬들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예가 아닐까 싶다.  말이 현지화지만, 대부분이 한류팬들이며 이들은 인터넷 매체가 없는 일본 대신, 또 한국 내의 소식이 일본에 보도되는 것이 제한되자 번역프로그램을 이용해 한국 뉴스를 기계번역해 정보를 입수한다.

  좋은 현상이지만, 이런 식으로 소속사가 보도에 관여하고, 알 권리를 제한하면 결국 정치 경제 사회를 빼고 연예 분야에서는 특종 개념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아니, 실시간 보도 등 엄청난 속도 경쟁을 벌이면서도 결국 특종 하나 건지지 못한다는 것은 매니지먼트의 힘이 세졌다는 것을 뜻한다. 좋은 것만을 미리 걸러내 화려하게 포장한 보도자료만이 넘치는 현상을 볼 때 매니지먼트 회사가 너무 비대해졌다. 

  여기에 일본에서는 참가 인원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데, 한국 보도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매체가 공항이나 행사장에 몇명이 모였다는 식으로 획일적으로 보도한다. 실제로 현장을 찾아 확인하지 않고서 소속사의 보도자료만을 참고로, 그대로 옮겨놓는 복제기사가 문제이다. 그러니, 내용도 천편일률적이고 결국 누가 먼저 올리냐, 누가 먼저 사진을 게재하느냐에 승부가 갈리는 것 같다. 속보성 뉴스는 어쩔 수 없겠지만, 가십거리 정도의 내용도 치열하게 속도 경쟁을 벌이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런 한일 간 보도 관행이 다른 점을 이용해 여기서 발표하기 곤란한 내용이나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일부러 한국측을 이용해 먼저 보도를 해 이를 인용하는 식의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반대로 한국에서 곤란한 보도를 일본 매스컴에 흘려 나중에 일본발 뉴스로 이용하는 예도 있다.

  일본 내 행사에 한국 매스컴들을 동행해 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국측 팬들이나 독자들도 알고 싶고, 알 권리가 있다. 하지만, 해외 이벤트, 즉 현지에 가서 행사를 할 때 먼저 현지 매스컴에 노출시키는 게 우선임에도 불구한데, 한국 매스컴들에게 항공권과 숙박료, 그리고 취재에서도 대기실과 별도의 간담회 등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같은 현장을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했음에도 나중에 보도를 보면 획일적인 내용에다가 소속사가 제공한 정보가 확인 사실도 없이 고스란히 기사로 둔갑해 다음날 장식한다. 

또 관객 동원도 몇 배로 뻥튀기한다. 즉, 일본에서는 썰렁한 반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성공이라는 식의 찬양 일변도의 보도는 문제다. 이것이 한류의 거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소속사의 능숙한 언론 플레이에 매스컴이 놀아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 한류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꼬집어 주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배우는 영화로, 탤런트는 드라마로, 가수는 음악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답게 작품으로 승부했으면 좋겠다. 영화 프로모션, 드라마 프로모션을 하더니 그 뒤에 사진집을 발간했다. 그리고 DVD를 선보이더니, 팬미팅에 이어 팬클럽을 만들기 시작했다.  연회비로 수익을 올린 뒤 팬클럽 회원 한정으로 이벤트를 실시하거나 시사회 초대 등 혜택을 주는데, 과연 그 다음에는 어떤 수익모델을 만들지 기대가 된다. 최근 몇년간 수많은 팬미팅이 있었지만 내용은 바뀐 게 없다. 똑같고 천편일률적이다.

배우 자체도 영화와 드라마에 자연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는데 작품이 제대로 만들어질 리 없다. 팬미팅이나 팬클럽 회원 한정 이벤트로 얼마든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황금알을 낳은 거울처럼 비칠지 모르겠지만, 공식 팬클럽과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가 여러 문제로 폐쇄한 스타들과 예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사진집도 포화상태라 팔리지 않자 만들기를 주저하고 실제로 나오는 예가 드물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스타도 떠오르지 않아 집중력, 관심도, 화제성이 크게 약해졌다고 하겠다."

  - 그런 현실을 줄곧 지켜봤고 느낀 바도 많아 비판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원론적이더라도 어떤 구체적인 대안이 있었으면 하는데.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각본을 쓰는 사람은 한류라는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상력을 충분히 활용해 써야 한다. 어떤 배우에 한정해 쓰다가는 결과가 뻔하다. 일단 국내에서 평가받고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었으면 한다.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스타가 없어서 해외 프로모션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대형을 고집할 게 아니라 작은 밥상으로 출발해야 한다. 설령 한국에서 유명하더라도 일본 시장은 해외시장이기에 많은 위험 부담이 있는데도, 덮어놓고 최고의 흥행성적을 처음부터 챙기겠다는 건 말도 안된다.

스타가 있고 소속사가 있는 것인데, 소속사가 있고 스타가 있는 식으로 변해 스타가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는 수단이 된 점도 안타깝다. 일본 시장이 너무 크다 보니, 놓치기 싫은 것도 이해되지만 좀더 길게 보고 움직였으면 좋겠다. 밖에서 새지 않는 바가지를 만드는 게 급선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국 연예 매니지멘트사가 일본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시장논리 때문인가? 
"당초 나는 한국과 일본의 시장을 하나로 생각했다. 일본에서 한국을 봤을 때 음반의 경우 일본은 100만 장, 한국은 30만 장으로 추정하고 한일 양국의 음악시장을 130만 장이라는 거대 마케팅으로 여긴 것이다. 실제로 1998년도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시작할 무렵, 일본의 관계자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일본색을 갖고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힘들었으며, 당시 한국 역시 일본 시장을 정면에서 뚫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따라서, 중국 등 동남아시아를 돌다가 최종적으로 일본 시장에 상륙했다.

이에 엔터테인먼트로 보자면 하나의 시장인 한일 양국의 연예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잡지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이에 튜브의 카운터 다운 라이브를 실으며  KEJ가 시작됐다. KEJ의 J는 저널이면서 재팬이다. 드라마, 영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한일 양국을 잇는 가교가 되고 싶은 게 꿈이다."

   - 앞으로의 각오 혹은 새로운 다짐이라면?
  "좋은 건 좋다고, 나쁜 건 나쁘다고 언론의 마지막 양심을 지켜가며 일본 내 한류팬들에게 진실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최측이나 소속사 입장에서 볼 때 별로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닐지 모르겠다. 또 이 때문에 취재에 제한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일본 내에서 발전하기 위한 비판, 자기 목소리를 내는 한류잡지가 있어도 되지 않을까. 그 필요성이 오늘도 큰 힘이 된다."


태그:#한류, #일본 , #잡지, #취재, #연예 소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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