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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만들어진 다식을 드어 보이고 있는 남궁영자 대표
 예쁘게 만들어진 다식을 드어 보이고 있는 남궁영자 대표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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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받아서 먹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만들었는지 모를 거야."

노랗고 검은 다양한 색감의 다식을 포장하고 있는 중년 아주머니들이 불쑥 등장한 우리 일행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혼잣말처럼 되뇌면서 분주하게 손을 놀린다. 추석을 앞두고 전통방식으로 다식을 만들어 지인들과 나눠 먹는 가정이 있다는 말을 듣고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

귀농농가로 된장과 청국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수정산 농원(충북 음성군 음성읍 평곡리)' 남궁영자 대표는 새색시들이 얼굴에 바르는 분보다 고운 송화가루에 조심스레 아카시아 꿀을 넣고 있다.

소나무 꽃인 '송화'
 소나무 꽃인 '송화'
ⓒ 음성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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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다식을 빚기 위해 반죽을 하던 남궁 대표는 "반죽해서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송화가루를 채취하는 것이 힘들다"며 "채취시기가 5월5일을 전후해 3일 정도로 매우 짧아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고 귀띔한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어 너무 일찍 갈 경우 송화가 벌어지지 않아 채취가 불가능하고 늦으면 다 날려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장소가 정해지면 몇 차례 방문해 답사를 하고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국립공원은 채취가 불가능하고 재선충 방제 로 대상 소나무가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조선소나무에서 채취한 가루가 향이 강해 이 소나무가 밀집한 곳을 택해야 하고, 나무가 키가 크면 채취가 힘들어 거칠게 자라 키가 작은 소나무가 있는 돌산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궁 대표는 이런 수고스러움 덜 요량으로 송화가루를 사려고 시장이며 백화점을 찾아 다녔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중국산을 구해 다식을 빚었는데 솔향기는 간데없고 약냄새가 그 자리를 채워 다시 조선 소나무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이런 정성으로 빚어낸 때문인지 남궁 대표가 빚은 송화다식은 한마디로 인기 '짱'이다. 결혼 한 딸 편에 보낸 송화다식을 접했던 시댁어른들은 명절을 손꼽아 기다린다. 깜빡 잊고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운해 감정을 드러낸 일이 있어 한사람이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주인을 정해 담아 놓을 정도다.

또한 먹어본 사람들은 다식을 할 때가 되면 직접 내려와 다식을 빚기도 하고 송화가루를 따는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날도 남궁 대표의 언니를 비롯해 친구 2명이 일을 돕고 있었다. 

전국 각지로 보내질 다식을 포장하고 있는 남궁영자 대표 친구들
 전국 각지로 보내질 다식을 포장하고 있는 남궁영자 대표 친구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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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다식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남궁 대표의 몸은 고되지만 '우리의 전통 음식을 맛보인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빚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 제사상에 올릴 만큼만 빚던 다식을 올해는 200가정에 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4대를 이어 사용해 문양이 희미한 다식판 대신 새것을 장만하려 했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다식을 빚어 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줄면서 다식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부러 서울의 인사동을 찾아가 다식판을 구했고 우리의 전통문양이 선명한 다식을 만들 수 있었다.

남궁 대표는 송화가루 이외에도 서리태콩가루(콩 중에 으뜸), 검은깨, 쌀 등 몸에 좋은 재료를 골라 다식을 빚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전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보낼 예정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선물이잖아요. 한 번은 변변치 않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친구에게 쑥스럽게 내밀었는데 감동을 하더라고요. 제가 보낸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 줬으면 좋겠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언니가 "재니까 이런 거 하지 우린 못해요. 힘들어서 못하고 같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해도 동생 손맛을 못 따라 간다니까요"라며 솜씨를 인정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명절 때면 빠트리지 않고 차례 상에 올라오던 우리 전통 음식이었잖아요. 그리고 한소쿠리 해놨다가 세배꾼들이 오면 담아주기도 하고…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우리며느리에게 가르쳐서 맥을 이어가게 할 생각이에요."

황금색의 고운 색감을 자랑하는 송화다식을 집어들자 은은한 솔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입안을 가득 퍼지는 자연의 맛을 깊이 음미할 새도 없이 사르르 녹아 자취를 감춰 버렸다.

송홧가루를 반죽을 하기 위해 아카시아 꿀을 넣고 있다.
 송홧가루를 반죽을 하기 위해 아카시아 꿀을 넣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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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홧가루를 다식판을 이용해 다식을 찍어내기 위해 아카시아 꿀을 넣어 반죽을 하고 있다.
 송홧가루를 다식판을 이용해 다식을 찍어내기 위해 아카시아 꿀을 넣어 반죽을 하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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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식판을 이용해 송화다식을 찍어내고 있는 남궁영자 대표
 다식판을 이용해 송화다식을 찍어내고 있는 남궁영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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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식판으로 찍어낸 송화다식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있다.
 다식판으로 찍어낸 송화다식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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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버리는 송홧가루를 이용해 만든 다식
 입안에서 스르르 녹아버리는 송홧가루를 이용해 만든 다식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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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태콩가루를 이용해 만든 다식
 서리태콩가루를 이용해 만든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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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깨를 이용해 만든 다식
 검은깨를 이용해 만든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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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가루를 이용해 만든 다식
 쌀가루를 이용해 만든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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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식이 자칫 상할까봐 조심스레 담고 있다.
 다식이 자칫 상할까봐 조심스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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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이 히미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한 다식판(앞쪽 진한갈색)과 이번에 새로 장만한 다식판
 문양이 히미해질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한 다식판(앞쪽 진한갈색)과 이번에 새로 장만한 다식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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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를 이어 오면 사용했다는 다식판을 들어 보이고 있는 남궁영자 대표의 남편 강혁희씨
 4대를 이어 오면 사용했다는 다식판을 들어 보이고 있는 남궁영자 대표의 남편 강혁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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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다식, #추석, #수정산농원, #남궁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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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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