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이 있는 보하이진(渤海鎭)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됩니다. 멀리서 보면 산들이 병풍처럼 연이어져 길을 막아서는 듯한데, 백두산과 이어지는 장백산맥(長白山脈) 줄기입니다.

 

이곳을 분수령으로 해서 위쪽으로 흐르는 물길은 무딴쟝(牧丹江)을 거쳐 헤이룽쟝(黑龍江)으로 흘러들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두만강과 만나 동해로 흘러들게 됩니다. 분수령은 곧 행정구역을 나누게 되니, 이곳이 헤이룽쟝성(黑龍江省)과 지린성(吉林省)의 경계입니다.

 

두만강을 사이로 북한과 마주보고 있는 이 지역은 지린성 전체를 놓고 볼 때 동남쪽 치우쳐 있는데, 현재의 행정구역 상 옌벤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로,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의 뜨거웠던 항일독립투쟁이 서린 역사의 현장입니다.

 

옌벤조선족자치주는 주도인 옌지(延吉)를 비롯해, 롱징(龍井), 투먼(圖們), 훈춘(琿春), 허롱(和龍), 돈화(敦化), 안투(安圖), 왕칭(汪淸) 등 6개 시와 2개의 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돈화시 구역을 제외하면 위로는 장백산맥이, 서로는 쑹화쟝(松花江), 남으로는 두만강, 동으로는 러시아와 맞닿은, 산과 강으로 에워싸인 섬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곳은 간도(間島)로 불려 왔습니다.

 

첩첩산중을 휘감고 도는 비좁은 아스팔트길을 통해 장백산맥이 왜 두 성(省)의 경계가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골짜기를 넘어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와 왕칭현에 닿으니 도로 주변에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무르강을 건넌 후 줄곧 보아온 한자가 뒤로 숨고, 우리글이 도로 표지판이나 가게의 간판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습니다.

 

낯선 땅이지만 곳곳에서 우리글이 눈에 띄다보니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주변의 풍광조차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이따금씩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사람들은 영락없이 우리 이웃의 모습이고, 마을 어귀마다의 아름드리나무도 우리나라 여느 시골 마을의 당산나무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직 남쪽을 향해 내려온 그 길 끝,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곳저곳에 크레인이 선 채 한창 공사 중인 신도시가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의 변경 도시인 투먼입니다.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다리 하나 사이로 함경북도 남양(南陽)시와 마주 보고 있습니다. 두만강을 중국에서는 투먼쟝(圖們江)으로 부르는데, 이 도시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쪽을 향해 흐르던 두만강은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물줄기를 틀게 되고, 이 부근을 경계로 중류와 하류로 구분됩니다. 말하자면 투먼을 지나면 강폭이 제법 넓어져 조그만 배 정도는 항행할 수 있고, 한·중·러, 삼국의 국경선으로서 의미 있는 지리적 경계선이 됩니다.

 

투먼과 마주보고 있는 남양시는 북한의 입장에서 최북단 국경 도시인 셈인데, 칠 벗겨진 낡은 콘크리트 건물과 울창한 숲은커녕 변변한 나무조차 없는 민둥산을 통해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어엿한 도시인데도 길거리에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몇몇 건물에서 피어오르는 거뭇한 연기만이 '사람 사는' 도시임을 알려줍니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 위에 섰습니다. 차량 두 대가 간신히 비껴갈 수 있을 정도의 비좁은 콘크리트 다리입니다. 중국 쪽은 공안(公安)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 데 반해 건너편 북한 쪽은 인기척조차 없습니다.

 

두만강을 따라 조성된 강변 공원에서 바라보면 다리의 측면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또렷이 구분돼 칠해져 있는데, 중국과 북한의 국경선을 다리 위에 표시해 놓은 것입니다. 다리 위에도 '변계선'이라는 글씨와 함께 굵은 선을 그어 놓아, 입구에서 다리 관람권을 끊어도 이곳까지만 발을 디뎌볼 수 있습니다.

 

강을 따라 퇴적된 땅을 이용해 사람들이 심어놓은 농작물이 발아래 잡힐 듯 보이고, 두만강 세찬 물살을 따라 뗏목을 타는 관광객들의 즐거운 표정을 통해서 이곳이 서슬푸른 국경선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없습니다. 공안의 허리춤에 찬 총과 강 너머 도톰하게 쌓은 군사용 진지만 보이지 않는다면, 외려 한가롭고 평화롭기까지 합니다.

 

듣자니까 투먼 지역에 동북아시아의 경제협력을 통한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개발 계획이 아니더라도 도시 입구에서부터 들려온 중장비의 굉음과 랜드마크마냥 세워진 타워크레인 등을 통해 이 도시의 현재와 미래를 떠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도로와 철도가 넓혀지고 고층 건물이 한 층 더 올라가며, 연구소와 공장이 한 채 더 세워지게 되면 이웃한 북한의 남양시는 더욱 더 초라하게 보일 겁니다. 두만강을 사이로 한 불과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이곳에서 중국과 북한의 현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투먼은 속초에서 배를 이용해 러시아와 국경 도시 훈춘을 거쳐 백두산을 찾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경유하는 도시로 관광지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의 발전 가능성을 부러워하기에 앞서, 백두산에 오르고자 하면 북한을 가로지르는 가까운 길을 두고 거리상 몇 갑절은 더 먼 이곳을 에둘러 가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더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남의 나라' 도시를 보면서, 두만강의 세찬 물살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낡은  다리를 통해서, 또 먼발치로 초록빛이 사라진 민둥산을 쳐다보면서 '통일'을 떠올립니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은 도덕 교과서를 통해, 또 거창한 민족주의의 이해를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여행 속에서 스치듯 느끼는 것이 더 간절할 수 있습니다.

 

투먼을 나서니 옌지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습니다.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한 옌지는 우리나라의 여느 도시 같은 느낌입니다. 중국어 한 마디 할 줄 몰라도 둘러보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고, 식당에서 파는 음식도 그다지 낯설지 않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엔 '우리식' 너털웃음이 가득합니다.

 

조선족들이 다니는 옌벤대학(延邊大學)과 이 지역 항일독립운동가들이 묻힌 혁명열사묘역을 찾아 이곳에 깊이 스며 있는 우리 선조의 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그곳에는 일제강점기 고된 역사의 땀방울이 묘비명과 유물이 되어 고스란히 남아 남북 분단의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업의 광고판 불빛이 화려하고 밤낮 사람들로 북적이는 세련된 현대 도시, 옌지는 그 어느 곳보다도 치열했던 우리 민족의 삶과 투쟁이 서려 있는 역사 도시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의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는 내일 찾아가게 될 롱징에서도 이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주변은 현재 중국 땅이지만, 주변 풍광은 물론, 문화, 지리, 역사 등 그 어느 것을 놓고 보아도 중국에 관한 것보다도 우리 민족에 관련된 얘깃거리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두만강이 지금이야 두 나라를 갈라놓는 살벌한 국경선이지만,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을 감고 흐르며 촉촉이 적셔준 젖줄이 아닐까 싶습니다. 롱징을 거쳐 북녘 땅을 바라보며 두만강을 따라갈 다음 여정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5일까지 (사)동북아평화연대에서 주관한 연해주-동북3성 답사에 참가한 후 정리한 기록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해외답사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