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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인물 애런 베이츠
ⓒ 김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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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마이 파더>의 줄거리가 일부 노출되어 있습니다.

가족, 누구에게나 소중하지만 영화로 만들기에는 진부하다.

'가족애를 다룬 영화'라고 하면, 끊임없이 '사랑하라'고 말할 것이고, 드라마틱한 소재를 활용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하지만 가족이야, 휴대전화 1번이나 2번 정도만 꾹 누르면 회신을 하는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영화 <마이 파더>는 좀 다르다. 이 영화는 미남 영화배우 다니엘 헤니의 연기가 호평을 받으며 '다니엘 헤니의 재발견'이라고 평가받고 있지만, 영화의 실제 주인공을 만나면 이 영화의 부제는 좀 바뀐다.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가 4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린 시사회에 양부모와 나란히 앉아 영화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가 4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린 시사회에 양부모와 나란히 앉아 영화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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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찾은 한국 입양아, 어둠의 자식이라고?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애런 베이츠(34). 주인공 제임스 파커(다니엘 헤니의 극중 이름)처럼 6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고, 1996년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 미군에 입대했다. 2000년 우여곡절 끝에 친아버지를 만나지만, 그의 아버지는 사형수로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이었다.

2003년 그의 사연이 < KBS스페셜 >에 소개되면서 그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베이츠씨와 친아버지의 DNA를 검사했지만, 그의 생부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논란은 남지만, 베이츠씨는 그가 생부가 맞다고 확신하고 있다.

2007년에는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자,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영화 상영에 반대했다. 시사회가 한참이었던 지난 5일 유가족들이 영화 상영에 응해줬다.  

이같은 '우여곡절' 이력만 갖고 그가 우울한 '어둠의 자식'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 금물이다. 6일 한시간 반동안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유쾌․상쾌․통쾌' 자체였다.

천성이 긍정적인 그에게 콤플렉스를 물었더니, 벌떡 일어나 "짧은 다리"라고 말하며 웃었고, 인터뷰에 동석한 그의 친구 김소영씨가 호텔방에서 신었던 발목 양말을 신고 인터뷰에 온 것이 들키자 그는 어린 아이처럼 웃었다.

지난 4일 있었던 특별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베이츠씨와 소영씨가 끌어안고 운 이유를 묻자, "연기한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어 "(영화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소영을 껴안았다, 우리의 영화가 만들어지다니 믿기지 않았다"며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사형수 아버지이지만, 항상 나만 생각해주는 사람"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가 4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울먹이고 있다.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가 4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울먹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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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친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얼굴을 진지해졌다. 사형수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는 한 남성을 그는 '아버지'라 부르며, 되레 "천국 같다"고 말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고 직접적으로 돌봐줄 수 없다지만, 가족은 서로 사랑하는 거다. 친아버지가 감옥에 있고, 당장 사형이 집행될 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평화롭다. (주한 미군 복무가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됐을 때도 아버지는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많은 사람 중에 나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DNA 결과는 부자 관계를 뒷받침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나의 아버지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 어릴 적 사진을 갖고 있었다. 그 사진을 얻고자 했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것이다. 또한 그가 왜 내 아버지라고 밝혔겠나. 그에게 어떤 대가나 이익도 없는데.…진실을 알기란 어렵다. 하지만 사랑을 보여주는 데 DNA 테스트는 필요하지 않다. 가족간에 사랑하는 데 테스트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아마 아무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베이츠씨가 넘어야 할 또다른 산은 친아버지의 씻을 수 없는 잘못이다. 그는 "(만약 유가족들을 만난다면) 가족을 잃은 데 대해 유감을 표하고, 영화를 통해 '나도 피해자'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며 "용서하고, 용서받기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를 털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의 생부가 아니면 어떤가' 혹은 '친아버지가 사형수면 어떤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가 피부색도 다른 미국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랐듯이, 핏줄을 뛰어넘은 사랑으로 그들은 진짜 부자지간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베이츠씨는 2000년 친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떤 감동도 없었다"고 말했다. 포옹도 할 수 없을 만큼 어색한 두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친구 김소영씨가 보기에도 진짜 부자지간 같단다.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가 4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친구 김소영씨를 부둥켜안으며 울고 있다. 김소영씨는 애런 베이츠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시절 친부모 찾는 일에 발벗고 나서준 카투사 친구다.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가 4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친구 김소영씨를 부둥켜안으며 울고 있다. 김소영씨는 애런 베이츠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시절 친부모 찾는 일에 발벗고 나서준 카투사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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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였던 친아버지 면회가는 날"

하지만 혈통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같은 생각은 이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베이츠씨가 지난 3일 친아버지를 찾았을 때처럼 말이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화가 났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은 베이츠씨는 광주교도소로 아버지를 면회갔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되고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교도소측은 조심스러웠다. 교도소측은 'DNA 테스트 결과 생부가 아닌데, 왜 면회를 왔느냐', '진짜 아들이 아니면 면회가 불가능하다'는 등 트집을 잡았다.

베이츠씨는 2001년 친아버지의 호적에 올린 것을 들어 아들이 맞다고 반박했지만, 교도소측은 '베이츠씨는 미국인이고, 아버지는 한국인인데 어떻게 부자지간이냐'고 주장했다. 할 수 없이 호적 등본을 떼왔고, 면회 시간이 이미 끝났지만 겨우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단 10분. 호적을 떼고, 면회실 앞에서 실랑이를 벌인 것이 이미 몇 시간인데, 단 5분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나마 '통역하는 시간을 달라'고 요구해 두 배로 늘린 것이다. 그는 그날을 "긴 하루였다"고 표현했다.

영화 속 제임스 파커가 면회실에서 소란을 피우면서까지 친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던 장면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국내 입양이 점차 늘어나고 입양아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질 만큼 입양 문제는 공론화됐지만, 혈통을 중시하는 사고를 깨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가보다.

"한국인의 혈통주의를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입양은 가족과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기회다. 가정과 사랑이 필요한 흑인 혹은 동양 아이들이 너무 많다. 우리 부부도 지금 아이가 있지만, 아이를 또 입양하고 싶다. 아이들을 너무 좋아한다. 입양은 훨씬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베이츠씨는 영화를 통해 한국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로도 입양을 꼽았다.

"영화의 메시지는 부모들에게는 '당신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동시에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만 부인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앞에서 울 필요는 없다. 가족은 항상 함께 해야 한다. 돈과 우정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가족은 항상 당신 가까이에 있다."

교과서같은 답변이지만, 항상 변함없는 가족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옅어진 사람이라면 되새겨볼만하다.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가 4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자신의 역할을 연기한 다니엘 헤니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 '마이파더'의 실제 주인공 애런 베이츠가 4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뒤 자신의 역할을 연기한 다니엘 헤니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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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파더>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면?

그에게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마이 파더> 후속편의 내용을 상상해보라고 권했다. 순간 "정말 후속이 나오냐"고 농담을 건넨 뒤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오고,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용서를 빈 뒤 미국으로 와서 제임스 파커와 그의 미국 가족들과 다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주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친아버지는 감옥 밖에서도 그의 과거를 갖고 살아갈 사람이다, 살면서 큰 문제를 겪었지만 잘 극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후속편의 내용은 그가 꿈꾸는 그의 미래이기도 하다. 그의 꿈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태그:#마이 파더 , #애런 베이츠 , #다니엘 헤니 ,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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