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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23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문국현 사장이 출마했다. 이른바 범여권이 또 한바탕 출렁일 모양이다. 문 사장은 범여권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범여권 여느 후보의 출마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일반 대중이 반색하는 낌새가 느껴진다.

문국현 후보는 실로 이명박 후보와 다르다. 불도저로 나라를 파헤친 사람과 산에 나무를 심어온 사람('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생명의 숲')이 같을 수 없다. 또한 현대의 무대뽀식 경영과 유한킴벌리의 평생학습 및 윤리경영은 사뭇 다르다. "한반도 대운하를 만들어 7-4-7을 이루겠다"는 이명박의 구호에 비하면 '창조적 지식근로자의 중소기업론'이 훨씬 현실성이 있다.

이명박의 경제는 가짜고 스스로의 경제는 진짜라고 한 것도 설득력이 있다. 그는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사람입국위원회에서 자신의 '뉴패러다임 모델'을 실행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그가 자랑하는 생산성 향상의 실적은 대부분 4교대제(노동자들을 4개조로 나눠 2개조는 일하고 1개조는 쉬고, 나머지 1개조는 교육훈련을 하는 시스템)가 설비투자의 가동률을 극대화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노동시간을 줄이고 교육훈련을 늘린다는 발상도 신선하다.

이명박에 비해 문국현은 훨씬 참신하고 진지하다.

가짜경제 CEO와 진짜경제 CEO, 그리고 사람

그러나 그의 참신성은 불행하게도 여기까지다. 그는 영혼이 타락한 CEO와 비교해서 참신한 CEO이지 진정 노동자의 아픔을 아는 지도자는 아니다. 딸을 비정규직으로 취직시키고 나서야 파견근무의 문제점을 알게 됐다는 일화는 말 그대로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의 사람입국은 여전히 노동자 등 대중을 생산요소로 바라볼 뿐이다. 예컨대 그는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말하면서 러시아와 미국의 자원, 한국의 경영능력, 북한의 노동력 식으로 모든 사람을 생산요소로 바라보는 CEO의 관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그의 뉴패러다임 모델도 '기계'라는 요소의 생산성과 '노동'이라는 요소의 생산성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주된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김덕룡, 박희태 공동 선대위원장 등 참석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의 이러한 관점은 결정적으로 한미 FTA에 대한 그의 모호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그는 양극화를 걱정하면서도 한미 FTA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진행시킬 것이라는 점은 인식하지 못한다. 오로지 경쟁력의 관점에서 들여다 볼 뿐이다.

예컨대 개성공단 원산지규정에 관한 협상이 잘됐다고 평가한다든가, 교육·의료산업이 개방되지 않아서 아쉽다는 것이 그렇다.

개성공단의 경우 한-싱 FTA, 한-아세안 FTA, 한-EFTA FTA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개성공단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 한미 FTA에서는 북한 핵문제, 남북관계, 노동환경 조건 등 거의 불가능한 조건을 줄줄이 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지식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교육과 의료시장 개방을 주장하는 이유는 서비스 경쟁력의 향상에 있다. 그러나 이 두 시장의 개방은 곧 공교육, 공공의료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미 송도에 들어올 미국 병원은 건강보험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한미 FTA가 체결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빅뱅식 개방이 공공성을 훼손하리라는 자명한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그의 경제관은 노동자 등 국민을 생산요소로 취급하며 그가 강조하는 복지란 오로지 시장탈락자의 구제, 즉 잔여적 복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새마을이 밟은 풀뿌리를 틔워라

▲ 지난 6월 한미 양국의 FTA 재협상이 시작된 가운데 한미FTA 저지 범국본이 협상장인 외교통상부 앞에서 재협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심상정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도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가짜경제의 CEO건, 그보다 훨씬 나은 진짜경제의 CEO건 그들은 CEO의 관점으로 사람을, 그리고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한 생산요소가 아니다. 그들의 창조력은 CEO가 베푸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풀뿌리공동체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모름지기 정책이란 경제 및 민주주의의 주체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풀뿌리공동체의 복원, 또는 재창조를 말하고 있다. 가짜경제의 군사적 CEO였던 박정희가 새마을운동으로 말살한 풀뿌리공동체 말이다. 이 땅의 수많은 각종 협동조합·사회적 기업·비영리기구가 스스로 사회적 일자리를 창조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사회적 서비스와 필수재를 공급하는, 그런 공동체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지역의 예금이 그 지역에 다시 투자되도록 하는 지역재투자법을 발의하고 지역 금융기관을 재설립하고 마이크로크레딧을 강조하는 것도 풀뿌리 지역 공동체의 기초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지역의 사회경제(social economy) 위에 비로소 중소기업의 네트워크가 바로 설 수 있다. 단순히 기업 차원의 재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기금에 의해 지역 사회에 필요한 폭넓은 재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공동체 형성을 위한 공동체 자산형성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경제는 자본의 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금 이 나라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경제다. 가짜 CEO 후보, 진짜 CEO 후보, 일하는 서민의 후보가 지향하는 경제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세 후보가 우리 경제의 미래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국민은 진정한 우리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심상정 기자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자 대선예비후보입니다.


태그:#심상정, #민주노동당, #문국현, #이명박,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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