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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리빙하우스
보건복지부의 '성분명 처방' 시범실시를 앞두고 의사집단이 술렁이고 있다. 삭발을 하고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파업을 벌일 태세다. 의사협회는 "정부 방침대로 9월에 시범사업이 강행된다면 집단 휴진 규모를 확대하고, 중소 병·의원뿐만 아니라 대형병원 의사들까지 참가하는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 때 전국적인 집단 파업으로 성공을 거두어 절름발이 의료보장제도를 만들었던 의사집단이 '총파업'까지 거론하며 결사항전의 깃발을 치켜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메인화면에 '국민이 실험용 쥐입니까?'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의협은 의사들이 처방하면 약사가 약효가 불확실한 저질, 저가의 약으로 대체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의사의 의약적 처방을 무시해 약물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협은 그러면서 정부의 시범사업도 건강보험 재정절감을 명분으로 추진되는 정략적 목적의 엉터리 사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의협이 쓴 '성분명 처방, 그 진실을 공개합니다'라는 글에서 썩 편하지 않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의사의 처방에는 환자에 대한 의무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상태를 다각도로 진단하고 의학적인 판단 하에 처방을 하며 그 처방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성분명 처방으로 환자에게 약화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입니까? 성분명 처방은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을 다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입니다. 환자의 선택권과 건강권은 물론 의사의 자율권과 진료권 모두를 철저히 묵살해 버리는 일입니다."

필자는 부화가 치밀었다. '성분명 처방은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을 다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다'니. 필자는 가족의 건강 문제로 종합병원, 대학병원에서부터 동네의원까지 다양한 의료과목을 진료받기 위해 보호자로 따라다녀본 경험이 많다. 평소 의사의 의료행위나 약물 부작용에 대해 관심이 큰지라, 진료 후 발병원인부터 진료결과 등에 대해 꼼꼼히 확인하려 노력한다. 특히, 의사의 처방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기를 원한다. 그러나 어떠한 의사도 자신이 처방하는 약물이 유발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약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커녕 진료결과에 대해 의료소비자인 환자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주는 병원도 거의 보지 못했다. 의료행위라는 특수 전문행위를 하는 의사집단이 의료소비자의 머리 위에 앉아 우월적 지위를 마음껏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성분명 처방 시범실시를 반대하는 의사들은 스스로 약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일까.

미국에서 30년간 가정의학과 개업의로 활동하고 있는 의학박사 레이 스트랜스는 저서 <약이 사람을 죽인다. 원제 :Death by Prescription>에서 의사들은 약의 주의사항에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약은 화학적 화합물이다. 인체에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는 말이다. … 약물에 어떠한 본질적 문제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모든 약은 태생적으로 위험하다."
"의사들은 특정한 약 때문에 점점 커지는 문제에 관해 제조회사에서 경고를 하거나 그 약이 시장에서 퇴출될 때까지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주장은 미국인 사망률에서 사실로 나타난다. 미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심장병으로 해마다 75만명이 사망한다. 2위는 암으로 연간 50만명이 사망한다. 3위는 뇌졸중으로 연간 15만명이 사망한다. 네번째 사망원인은 무엇일까? 자동차 사고? 아니다. 의학박사 레이 스트랜스는 "미국 내 네번째 사망 원인은 바로 적절하게 처방된 약으로 인한 약물 부작용"이라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해마다 10만명 이상이 사망한다. 약이 제대로 처방되지 않거나 약물 관리가 소홀하여 사망하는 8만명을 합산한다면, 약물 부작용은 미국의 세번째 주요 사망원인이 된다."

1998년, 권위있는 미국 학술지 <미국의학협회지>는 과거 30년 동안 미국병원에서 발생한 약물 부작용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면서 부작용을 확인한 39개 연구결과를 분석했다. 지극히 보수적인 방식의 분석결과, 1994년 220만명 이상이 심각한 약물부작용으로 입원했고 이들 중 10만여명은 '제대로 처방해서 투여한 약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논문 발표자들은 이런 약물부작용 사례가 과거 30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데이비드 베이츠 박사는 1995년 <미국의학협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약물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대략 연간 18만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한국인 사망률'을 검색해 보면, 의약품 부작용에 의한 사망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정부가 의약품 부작용에 따른 사망률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시골의사가 재테크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는 소식은 들어보았지만, 약물 부작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의사가 있다는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정부의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에 머리띠를 두르고 총파업을 앞세워 반대할 고민부터 하지 말고 진정 어떤 것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도움이 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의사집단은 레이 스트랜스 박사에게 했다는 말을 곱씹어 볼 일이다.

"나는 의사들이 처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것'으로 약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출판사 : 웅진 리빙하우스
출판일 : 2007. 06. 01.
가격 : 12,000

*블로그 '생명은 힘이 세다(http://blog.naver.com/storyrange)'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약이 사람을 죽인다 - 의사.약사.제약회사가 숨기는 약의 비밀

레이 스트랜드 지음, 이명신 옮김, 박태균 감수, 웅진리빙하우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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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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