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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산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훈련병들이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조용학
군 입영영장을 받아 쥔 그해 6월은 유난히 더웠다. 92년 6월 2일자로 나를 포함한 1500여명의 남자들은 의정부소재 306 보충대 정문을 통과했다. 으레 그렇듯 기선제압용 엄포가 날아왔고, 이어질 군 생활에 대한 불안은 모두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곳에서 각자의 훈련소로 나누어지기까지 대기기간은 3박 4일. 허풍 섞인 욕설만 빼면 특별할 것 없던 기억들. 어쩌면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힐 수도 있던 날들. 하지만 그곳의 기억을 특별하게 만들어버린 일은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 쓴웃음을 선사한다.

"편히 앉아. 담배 일발 장전, 발사!"

입소 사흘째 정도였다. 이런저런 정신교육의 끝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두 갈증이 심했지만 허락된 건 담배 한 모금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천여개비가 넘는 담배연기가 말려 올라가는 모습은 기형적 장관이었다.

지열과 직사광선에 시달리던 휴식시간. 그때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간부가 누군가를 소개했다. 수방사(수도방위사령부)에서 왔다고 했다. 병사들 사이에 일순간 수군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인사를 마친 장교(계급은 기억나지 않는다)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수방사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일단 신막사에 개인집기도 모두 A급이고 복무환경이 좋다. 외박도 자주 있고 수도권이라 집에도 다녀올 수 있다. 군기가 강하지만 다른 모든 조건이 월등하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곳이다. 오늘 몇몇 추가로 필요한 인원을 모집하러 왔다."

이곳저곳이 술렁였다. "수방사 좋은 데지", "거기 '빽'이 있어야 되는데…" 모두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장교는 준비한 종이를 펴고 호명하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여유 있게 일어나 답하는 이들. "거봐, 미리 다 빼놓는 거야" 이어지는 체념의 목소리.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장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 인원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다시 이어지는 희망의 눈길들. 모두 장교의 입을 주시했다.

연병장에 울려 퍼진 귀를 의심케 하던 한마디

"다니던 학교가 서울, 연ㆍ고대 이상만 일어나봐! 괜히 이상한 대학 다니는 놈들은 안 돼."

잠시 멍했지만 현실은 냉엄했다. 이곳저곳에서 즉각 반응들이 쏟아졌다. "외국대학은 안 됩니까?", "포항공대나 카이스트는요?" 다시 돌아오는 대답들. "괜찮은 대학이면 서고 아니면 앉아", "당연히 되지. 인마, 내가 연ㆍ고대 이상이라고 했잖아!"

잠시 후 연병장 곳곳에 삐죽이 생겨난 그림자들. 장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목해가며 전공학과를 물어봤다. 한편의 희극이었다. 흡사 공개된 장소에서의 자아비판 같았다. 그리고 내 곁에서 몇 발 떨어진 자리에 잊을 수 없는 바로 그가 있었다.

"너는?"
"예! ○○대 철학과입니다."

멀리서 봐도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을 쓴 그. 훌쩍 큰 키에 깡마른 몸매는 왠지 구부러져 보였다. 그런 그가 철학과라고 답하자 장교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철학과? 거기 뭐하는 덴데?" 대답 없이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앉아, 새끼야. 데려다 쓸데도 없는 과를 가지고!"

와아~하고 웃음이 일었다. 주춤거리며 고개를 숙이는 그. 붉어진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잠시 후 모든 질문이 끝났다. 귀에 익지 않은 외국대학을 다니던 몇몇이 추가로 면박을 당했고 나머지는 무난히 선택을 받았다. 이곳저곳에서 나지막이 들리는 불만의 목소리들.

"××, 군대서는 다 같이 평등하다더니, 이건 뭐 못 배운 놈은 죽으란 소리구만."
"그래도 사회보다는 덜할 줄 알았는데, 아주 대놓고 차별하네. 뭐 같다, 뭐 같아."

하지만 다시 이어진 장교의 말에 그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이번엔 자기가 키 크고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놈들 일어나봐. 분명히 말하는데 객관적으로 키도 크고 잘 생겨야 돼. 둘 중 하나가 빠지면 괜찮은 대학을 다니든지."

이번엔 좀 더 많은 이들이 일어섰다. 그런데 그가 다시 부스스 일어서고 있었다. 잠시 후 다시 그에게로 향한 장교의 눈길. "넌 또 왜 일어나?", "키가… 크지 않습니까? ○○대학도 다니고" 피식하는 웃음, "니네 집엔 거울도 없냐? 그리고 넌 학교가 좋아도 과가 후져서 안돼요. 앉아 인마!"

이번엔 아까보다 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분해하는 그의 표정. 창피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 여기저기서 "끌끌"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입을 여는 장교. "이번엔 기술 있는 놈들 일어나 봐."

미용기술을 가진 이, 호텔식당에서 일했던 이가 뽑혀 나갔고 와중에 누군가는 고급 룸살롱에서 안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일어섰다. 이번엔 완연히 짜증이 난 표정의 장교. 하지만 목이 메는 그의 절규가 한발 빨랐다.

"저는! 저는 바둑이 아마 5단입니다!"

멈칫하더니 씨익 웃는 장교. 자신은 1급이라며 거짓이면 각오해야 할 것이라 다짐했다. 자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 마침내 졌다는 듯 한쪽으로 열외를 지시하는 장교.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는 '의지의 한국인'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허탈했다. 학벌의 벽을 이겨낸 이라 축하해 줘야 할지, 솔직히 20대 초반의 나이로는 가늠이 가지 않았다. '세상이 결국 이런 것이었나…' 혀끝에 돋은 바늘을 이 사이에 밀어 넣고 있을 때였다.

▲ 최전방 군부대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에서 복무중인 육군 현역장병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는 모습(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내게도 찾아왔던 기회, 하지만...

"아참참, 내가 깜박했다. 혹시 이중에 영사기 돌릴 줄 아는 사람 있나?"

발길을 돌린 장교의 목소리가 쾅하고 귓가를 때렸다. 입대하기 두어 달 전부터 친구가 영사기사로 있는 동네극장은 나의 아지트였다. '시네마천국'의 토토를 꿈꾸었지만 실은 지루하기 짝이 없던 그곳. 물론 영사기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재차 인심을 쓰는 듯한 울림.

"잘은 못해도 돼. 지금 한 명 있으니까 부사수로 배우면 된다. 영화관에서 어깨 너머로 본 사람이라도 없나? 아아, 이건 대학 안 다녀도 된다. 정말 없어? 아이 자식들…."

무엇을 망설였을까. 왜 그랬을까. 혹은 어떤 오기였을까. 결국, 끝까지 손을 들지 않았다. 혹 후회는 하지 않았을까. 2년 뒤, 더플백을 메고 집으로 향하던 순간까지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을까? 물론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간다는 군대, 국민의 의무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그곳에서의 첫인상은 그랬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런 식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 모인 곳이라면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군대는 왜 그랬을까? 군대도 사회의 연장선상이라 그랬을까. 그런 방식으로 냉철한 세상살이를 알려주기 위해서였을까. 물론 한 단면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군 생활, 이후 지켜보기에도 군대 내의 학력차별은 사회의 그것에 못지않았고 때로는 보다 직접적이었다.

사람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배움과 할 수 있는 일의 차이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 개개인의 능력을 결정짓는 방식과 형태는 절차적으로 공정하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젊음을 '차압 당한 채 끌려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들에게 국가가 취해주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저 지금은 '감히' 일어날 수 없는 옛일이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내가 겪은 학력 콤플렉스> 응모글


태그:#학력, #군대, #수방사, #연고대,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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