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두바이 앞바다에 야자수 모양을 본따 건설중인 '팜 아일랜드'(위)와 세계지도 모양의 '월드'. 기발하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두바이. 최근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 TV 특집, 신문 특집, 책, 블로그에 뜨고 기업인들은 물론 지자체 장, 정치인들이 칭송 일색이다. '두바이 모델'이라는 말도 자주 쓰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두바이에 다녀왔다. 대통령, 총리, 장관들이 방문했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물론이고 오세훈 현 시장,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도 다녀왔고 이건희 삼성회장을 비롯해 수많은 대기업 총수들이 다녀왔다.(고백하자면, 나도 찾아봤다.) '상상력의 귀재'라는 칭송이 쏟아지는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가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에는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려는 정치권의 신경전도 펼쳐졌다. 이명박 전 시장은 셰이크 모하메드를 '닮고 싶은 지도자'로 꼽는다고 한다(중앙, 2007. 8. 6).

두바이는 가히 센세이셔널하다. 150층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정확한 층수를 베일에 감춰둔 두바이식 마케팅) '버즈 두바이'는 우리의 삼성건설이 시공을 맡아 더 유명해졌다. 바다 속에서 퍼 올린 모래로 조성한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아일랜드'와 세계지도 모양의 '더 월드'는 우주에서도 보인다고 화제만발이다.

기기묘묘한 형태의 개발 프로젝트들은 유혹적이다. 진주조개를 닮은 바다 속 호텔, 어떻게 지어질까 싶게 몸체가 뒤틀린 '춤추는 건물', 흔들리는 불꽃모양의 '불꽃 건물' 등 눈요깃감 투성이다. 이 세상의 모든 형태, 이 세상에 아직 지어지지 않은 모든 형태를 두바이에 짓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상하이를 보고 '상전벽해'라 했다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두바이를 보면 뭐라 할까. 경천동지, 천지개벽? 적정한 말을 찾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두바이가 우리 사회에서 뜬 것은 최근 몇 년 간이다. '외자 투자가 폭발적이다. 온 세상의 돈이 다 모인다. 최고, 최대, 최초의 개발 프로젝트는 다 모았다. 뭐든 살 수 있다. 두바이(Dubai)는 두바이(Do Buy, 꼭 사라)란다. 연평균 GDP 성장이 15%다. 연간 1천만 명이 드나든다. 앞으로 연간 1억 명이 드나들 것이다' 등등, 작은 진주조개잡이 어촌에서 '사막의 뉴욕'으로 변신한 두바이는 기상천외한 기록을 세우고 있다.

▲ '흔들리는 불꽃' 모양. 과연 저런 희한한 건물이 지어질 수 있을까 싶다.
ⓒ 김진애
두바이 모델, 우리나라에서 가능한가

의문은 하나다. 과연 두바이 모델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한가? 기적 같은 두바이 신화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 건설업체가 세계 최고 높은 건물을 시공하니 자랑스럽고, 성원건설, 반도건설 등 우리 기업들이 진취적으로 직접 개발에 참여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니 70년대 중동건설 붐 때처럼 기대 가득하다. 하지만 두바이 모델이 과연 우리나라에서 가능한가 하는 의문은 별개다.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왜 우리는 못하나?' 우리 정부는 뭐하나? 우리는 두바이 같은 상상력이 없나? 우리는 셰이크 모하메드 같은 창조적 리더십이 없나?' 라는 식의 단순논조들, 과연 그럴까? 혹시 번드르르한 겉포장에 속는 것은 아닌지 한번 따져볼 만하다. 벤치마킹을 하려면 대상의 실체를 명확히 알아야 하고 특히 우리의 맥락과 냉철하게 비교해 봐야 한다.

현재 스코어 상, 두바이는 왜 승승장구 성공가도에 있는가? 10가지 '본질적 조건'을 들 수 있다.

1. 왕권ㆍ오너 리더십이 가능한 나라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 연합 7개 토후국 중 하나다. 각 토후국은 독립 운영한다. 셰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ed)는 연방국의 부통령이자 총리, 그리고 두바이 통치자다(공식 직함은 'UAE Vice President, Prime Minister, & the Ruler of Dubai'). 의회도 없고 투표도 없다. 세습군주인 7개 통치자들이 모인 '최고군주회의'가 있을 뿐이다. 통치자가 결정하면 바로 시행되며 통치자가 곧 오너다. 실제 셰이크 모하메드는 개발회사 '나킬'의 소유자다.

2. 오일달러 종자돈이 풍부하다. 두바이는 뒤늦게 산유국이 되고 석유중계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마치 거액의 상속인처럼 안정적인 투자 종자돈이 풍부하다.

3. 인구가 120만-150만밖에 안 된다. 무척 중요한 변수다. 많지 않은 국민에 대한 온갖 교육복지 서비스는 물론 생활비 지원까지 완벽하니, 갈등 변수가 적다.

4. 지정학적으로 동서남북 교통요지에 있다. 역사상 중동은 항상 교통 요충지였지만 주로 지중해 권에 쏠렸었는데 세계 항공, 해상물류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허브가 가능해졌다. 미주ㆍ유럽ㆍ아시아의 한 가운데다.

5. 특히 유럽과 가깝다. 우울한 유럽의 겨울 대신, 이미 포화 상태이자 그 프리미엄이 떨어진 지중해 대신, 대안적 관광휴양허브가 가능하다. 상류층 유럽인, 특히 '은퇴한 독일인'이 집중 마케팅 대상이란다.

6. 타이밍이 절묘하다. 마침 9ㆍ11테러 이후 분쟁과 전쟁 와중에 레바논의 베이루트가 지고, 바레인이 허둥거리는 사이에 두바이가 떠오를 수 있었다.

▲ 두바이 지도자들의 회의. 박정희 개발 독재 시대를 연상시킨다. 두바이의 통치자인 셰이크 모하메드는 '나킬'이라는 개발회사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 김진애
7. 세계자본 거품잔치가 벌어진 시기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세계 곳곳의 부동산 거품, 증시 부상, 또 러시아의 민영화를 통한 초호화 고객의 등장 등 세계자본주의가 가속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투자자들에게 어필했다.

8. 영어에 능숙하다. 두바이는 영국 보호국 전력이 있고 해외유학이 대세인지라 영어권 문화에 익숙하고 영어 소통에 능숙하다. 홍콩, 싱가포르, 콸라룸푸르, 인디아와 같이 좋은 조건이다.

9. 세금이 없다. 경제자유구역 내에는 4무(無)정책을 쓴다. 소득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같은 세금도 없고, 외환규제도 없고, 자국인 고용의무도 없고, 노동쟁의도 없다.

10. 나라 크기가 작다. 두바이의 크기(약 3900㎢)는 제주도(1847㎢)의 2배 정도다. 홍콩(1100㎢)의 3배 수준, 싱가포르(630㎢)나 서울(605㎢)의 6배 정도다. 그 땅의 90%가 사막이다. 개발을 한다면 집중 개발 외의 다른 옵션이 별로 없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다. 경제계에서 성공 요인으로 꼽는 '규제 완화, 엘리트 관료, 원스톱 행정 시스템, 막강한 인프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위의 10가지 본질적 조건에 비하면 '수단적인 요인'에 불과하다. 수단적 요인만으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두바이의 성공가도를 만든 조건들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떻게 될까?

1번: 셰이크 모하메드를 닮고 싶은 이명박 전 시장 같으면 왕권적, 오너적, 독단적 리더십을 마음껏 휘두르고 싶겠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럴 수 있나? 대통령이 직접 개발회사의 오너가 될 수 있을 건가? 국회 동의 과정을 생략할 수 있을까?

2번: 세계 10-12위를 넘나드는 경제대국이고 3000억 달러 외환 비축국가이지만 과연 우리가 오일달러처럼 가만히 있어도 쏟아지고 또 무작정 개발에 쏟아 부을 돈이 있나? 더구나 통치자 맘대로 쓸 수 있나?

3번: 우리나라 4800만 국민들의 합의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2만 달러 국민소득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양극화 현상과 사회 서비스 차별이 엄연한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이해의 갈등 조정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4번과 5번: 우리나라 역시 만만찮은 동북아 교통요충지이지만, 중국-일본-미주를 잇는 외에 이른바 세계 트렌드 중심지인 유럽과는 너무도 멀다. 부상하는 중국 경제가 가까워 천행이지만 유럽인, 미주인을 유치하는 당근을 만들기 쉽지 않다.

6번과 7번: 한반도가 평화체제로 이행되는 과정에 있어 더할 수 없이 좋은 조건이지만, 세계자본 유치를 위해 거품 경제를 방치하거나 부추기기 어렵다. 우리 경제규모는 두바이와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부동산 거품, 증시 거품은 우리 사회에서 워낙 휘발성이 높은 사안이다.

8번: 영어 소통은 골머리 아픈 문제다. 인천국제공항 내라면 불편이 거의 없지만, 우리나라의 영어 사용 진입은 쉽지 않다. 아마 특정 구역(예컨대, 제주도나 경제특구)에 한정하여 영어 병용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상당 시간이 소요된다. 언어 소통은 그만큼 어려운 문제다. 영어권 식민 역사를 겪은 나라들이 세계경제화와 더불어 뜨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9번: 기업인들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이 이 규제 철폐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자유구역특별법'이나 '기업도시 특별법' 입법에서 겪었듯이, '세금 프리, 외환 프리, 국내인 고용율 프리, 노동쟁의 프리'를 100% 보장하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10번: 우리나라는 두바이보다 훨씬 더 크다. 산업기반도 다양하고 경제인구도 다양할 뿐 더러 경제규모도 엄청 크다. 한반도 전체를 생각하면 미래 영역은 훨씬 더 넓어진다. 우리의 경제 발전 옵션은 두바이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두바이 모델 하나에 목숨 걸 이유는 없는 것이다.

▲ 두바이의 초고층 타워 행진. 마치 '카지노 칩' 같이 쌓아올린다.
ⓒ 김진애
두바이 왕과 대한민국 대통령

두바이와 대한민국은 이러토록 본질적 조건이 다르다. 그러니, 두바이에 대한 막연한 모방 부추기기는 금물이다. 그런데도 우리 언론, 기업계, 정치인들은 두바이의 광채에 혹해서 너무 쉽게 칭송한다.

이것을 지적한 정치인도 있기는 있다. 유시민 의원은 '우리가 어떻게 두바이 같은 독재적 리더십이 가능한가?'라고 의문했다. "대한민국은 셰이크 모하메드와 같은 리더십을 만들 수도, 행사할 수도 없는 나라다."(경향, 2007. 07 .12) 핵심을 짚은 지적이다.

좀 더 침착하게 두바이 모델을 거론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2006년 12월 부산의 북항 개발 현장에 들려서 노무현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돈과 사람, 정보가 모이는 두바이 모델로 갈 것인지, 레저 공간을 제공하는 시드니 모델로 갈 것인지'(YTN, 2006. 12. 27) 부산 사람이 심사숙고해서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부산은 두바이처럼 국제금융허브와 팜 아일랜드 같은 해양개발을 제안했었는데, 이른바 두바이 모델의 유혹으로부터 차분해지자는 지적이다.

그렇다. 두바이 모델의 겉모습에 쉽게 넘어가서는 곤란하다. 어디에서나 어떻게든 세계 금융물류관광레저 허브를 만들 수 있다는 제안은 위험한 거품환상이다

두바이는 두바이 식으로, 우리는 우리식으로

나는 두바이 입장에서 두바이의 성공을 바란다. 적어도 두바이는 여타 중동 나라들처럼 오일달러를 흥청망청 소비에 쓰는 짓은 안했고, 산유국의 혜택을 받는 동안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경쟁력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해왔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다.

두바이는 철저하게 자신의 기회와 한계를 알고, '적절한 타이밍에, 막강한 투자능력을 동원하여, 가능한 개발방식을 동원'함으로써 성장전략을 짜고 실천했다. '두바이 유'라는 말에서 나타나듯 두바이는 석유중계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최근 아프간 사태 동안 잘 드러났듯 어느새 세계 언론의 중동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두바이는 말뜻 그대로 사상누각이 될 위험도 안고 있다. 아직은 성공가도에 있을 뿐인 두바이가 드디어 성공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이른바 금융 허브, 물류 허브 기능이 튼튼해져서 드디어 뉴욕, 암스테르담, 싱가포르처럼 명실 공히 세계 허브로 자리 잡고 배후 산업기지들이 계속 가동되고, 이에 힘입어 한 때의 홍콩처럼 세계쇼핑 천국으로 자리 잡고, 지중해나 호주 이상의 휴양지 천국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맞물려야 두바이는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두바이의 미래는 항상 위태위태하다. 다른 세계 허브들보다 배후 인구, 배후 산업, 배후 경제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오일달러가 받쳐주고 '신기한 투자 천국' 마케팅이 받쳐주고 있지만 과연 그 미래는 어떨까?

'또 다른 두바이'를 꿈꾸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아랍 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가 강력한 위협 도시로 떠오를 수도 있다. 지금은 부동산 기대심리 때문에 카지노 칩처럼 분양이 잘 되지만, 그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면? 지금은 온갖 인프라에 돈을 쏟아 붓고, 하물며 야자수 한 그루, 잔디 한 뼘에도 땅 밑에 거미줄 같은 파이프를 깔아놓고, '비싼 물'인 담수화 공장에서 생산된 물을 원 없이 쓰고, 45도를 넘나드는 열사 속에서도 에어컨과 스키장과 얼음 궁전을 돌려대지만, 그 유지관리비를 계속 국가에서 감당할 수 없을 때에는 어떻게 될까? 석유자원이 고갈되는 그 때가 되어 투자자는 다른 데로 빠져나가고, 혹시 두바이가 불 꺼진 도시가 된다면?

두바이는 철저하게 에너지로 유지되는 도시다. 생태지수에서 세계 도시 중 가장 나쁜 점수를 받은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와 같은 유지관리를 더 할 수 없을 때, 그야말로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상상하면 끔찍하기조차 하다.

▲ 두바이에 돈벌러 온 건설노동자들. 100% 외국인. 파키스탄 사람이 가장 많다.
ⓒ 김진애
두바이 왕의 고민, 대한민국 대통령의 고민

그런데, 두바이는 현재의 두바이 모델 외에 다른 성장방식이 없었을까? 자국 인구래야 50여만 안짝(두바이는 공식 고용 외국인을 자국인으로 관리한다)이고 아랍에미리트 전체로 봐도 300만 정도인데, 자신의 영토 안에 세계허브도시를 만드는 외의 다른 옵션은 없었을까? 꼭 자기 영토에 무언가 만들어야 국민 번영, 국가 번영이 아니라는 것이 이 세계화시대의 본질 아닌가? 인구가 적고 투자 여윳돈이 많다면 사람에게 훨씬 더 본격 투자하고 세계의 미래성장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옵션도 생각할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하기는 그것이 영토에 묶인 왕의 고민이자 한계일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차분하게 두바이 모델을 고민해보자. 두바이 모델 자체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은 분명하더라도 우리는 동북아 금융물류, 동북아 관광휴양 허브를 고민해야 하니까 말이다(최근 막연하게 두바이모델 적용을 외치는 몇 개 사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구체적으로 거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나라는 두바이처럼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아니니, 두바이 모델이 아니라 우리의 코리아 모델을 고민하자. 대한민국 대통령은 확실히 어려운 자리다.

태그:#공간정치, #두바이, #두바이 모델, #셰이크 모하메드, #이명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