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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문 위의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몇 년 전, 지금은 교수가 된 한 법대생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다소 삐딱하게 '법은 무엇을 지키는가'라고 묻는 사회과학도 친구를 향해 그는 단호히 답했다.

"사회 정의다."

나는 무례하게도 코웃음을 섞어 이렇게 응수했다. "누구 편에서 본 '사회 정의'인가? 그들이 말하는 '법과 질서의 유지'란 지배질서, 즉 기득권의 재생산이 아닌가?"

이후 그 말을 꺼낸 것을 적잖이 후회했다. 아무리 친구라도 그렇지, 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에게 '기득권층의 파수꾼'이 웬 말인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친구와의 밤늦은 토론이 떠오를 때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의 법은 무엇을 지키는가

그 기억이 잊혀질 무렵, 한국에서는 세 건의 유사한 판결이 잇달았다. 이 판결들은 미성년자 성추행을 포함해 모두 성추행 사건에 관련한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여기자의 가슴을 만져 기소되었던 최연희 의원은 벌금유예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여자에게 술을 따르라는 남자상사의 강요는 '미풍양속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법원의 결정이 있었으며, 출장 경기 도중 미성년 여선수들을 강제로 추행해 구속 기소되었던 박명수 감독은 사회봉사 200시간에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이 세 가지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내게 '법은 무엇을 지키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다.

이 판결이 내게 분명히 일깨워 준 것은 '사회정의'나 '상식'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생물학적 사실, 즉 재판부들이 가해자들과 같은 '수컷'에 속한다는 사실뿐이었다.

내가 상식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각 사건의 판결 내용은 피고에게 관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구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에 대한 항소심에서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 9부 재판장 고의영 판사)는 벌금 500만원에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판결에 따르면, 피고의 성추행 혐의는 충분히 인정되나 '고도의 가해 의사'가 없었고, 신체를 손으로 움켜쥔 것으로 폭행이나 협박이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피해자가 피고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피고가 60세 이상의 고령이고 전과가 없다는 점도 감안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즉 가해자가 '고도의 가해 의사'를 가지고 범죄를 행했고 피해자와의 합의도 없고, 피고가 고령도 아닌 경우 말이다. 그러나 박명수 전감독이 미성년자 선수 두 명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성추행 한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20여 명의 동료 선수들이 '피해선수가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을 받았음에도 사건을 공론화 시킨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엄한 판결을 부탁 드린다'는 탄원서를 제출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재판부(서울지방법원 한양석 판사)는 유예판결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피고가 미성년자인 선수를 추행한 혐의는 인정되지만 "과거 국가대표 감독 등으로 농구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고가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5000만원을 공탁했으며 사건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점을 참작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우리 내부에 도사린 가해자

앞의 판결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여론은 대단히 비판적이다.

어떤 이는 '성범죄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성범죄국가로 만들었다'며 더 엄정한 법 집행을 요구했다. (실제로, 신고비율을 고려할 때 한국의 성범죄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미국의 네 배가 넘는다.) 또 어떤 이들은 '한국의 가부장적 성관념으로 말미암아 가해자가 도리어 피해자를 협박하는 기이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다. 온 사회가 이렇게 성범죄에 비판적인데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성범죄 국가가 되었을까? 어떻게 이 시간에도 성범죄자들은 별 탈 없이 사회로 돌아오며 왜 법원은 양형을 내놓으며 '사회상식을 반영한 판결이었다'고 항변하는 것일까?

여론에 따르면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오직 성범죄자와 법관들 뿐인 듯하다. 그러나 과연 문제는 오직 '그들' 만의 것일까?

최근 판결을 받은 성추행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들을 비판하는 가운데 교묘한 방식으로 그들과 연대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가장 먼저 연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정치권이었다. 같은 야당의 동료 의원들은 '친해지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고, 여당의 의원은 아예 시를 들고 나와 '봄의 유혹'과 '자연의 섭리'를 역설했다.

물론 '국민 여론'은 정치권의 얼빠진 연대에 따가운 눈빛을 보냈지만, '유권자 여론'은 좀 다르게 나타났다. 최연희 의원의 지역구인 강원도 동해와 삼척 지역에서는 '최고 의정활동 최연희 의원 동해시민이 지킨다' 등 수십여 개의 지지 현수막이 내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순간의 실수를 두고 의원직 사퇴를 압박하는 것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력히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주민들이 일부 현수막을 칼로 잘라내거나 다른 견해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우리 지역구 의원, 우리가 지킨다'는 다수의 견해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밀양의 고등학교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서초동 대법원까지

▲ <동아일보>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최연희 의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동해시 주민만 탓할 일이 아니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은 당시 특정 정당에서 잇달아 일어나던 성추행 사건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 정당에 대한 전체적 지지도는 변하지 않았다. 맹목적 지지가 연고지 내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범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연대가 발생하는 곳으로 한국의 가정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밀양에서는 남자 고등학생 41명이 여중생 한 명을 1년 넘게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가해자들은 어른들에게서 배운 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성폭행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며 범죄를 계속했다.

그러나 가해자들 가운데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껏해야 5명이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이 사건이 '충동적이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며 '피해자가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재판부 결정의 근거였다.

그러나 희생자 소녀는 '성폭행 피해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학교로부터 전학을 거부당했다. 어렵게 옮긴 학교에서조차 가해자 부모가 처벌완화 탄원서를 써달라고 교실로 찾아오는 바람에 학교를 휴학해야 했다. 피해자는 거식증과 폭식증 등의 이상증세를 보이다 가출했고, 결국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은 한국사회 전체를 경악케 한 사건이었지만, 늘 그렇듯 '지역 민심'은 다르게 나타났다. 사건 후 밀양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4%가 이 성폭행 사건의 책임이 여중생에게 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주목할 부분은 가해자들의 부모가 희생자에게 보인 태도다. 그들은 '창창한 우리 아들 장래를 망치지 말라'고 협박하며 희생자에게 합의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밀양의 부모만이 아니다. '자식사랑'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대함은 한 대선 후보의 위장전입 사건과 기업총수의 보복폭행 사건으로도 드러났다. '내 자식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동정을 넘어 부러움까지 표하는 이들은 전국 어디에나 존재했다.

먼 훗날 밀양의 부모들, 아니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아들들은 국회의원, 국가대표 스포츠 감독, 그리고 판검사로 성장할 것이다. 그토록 갈망하는 자식들의 출세가 부모의 자랑만큼이나 한국사회에도 기쁨이 될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별 일 없을 것이고 어떤 일이 생기든 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자식이나, 지역구 의원이나, 동문이거나 동향인 한 말이다.

태그:#박명수, #성범죄, #최연희,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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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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