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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특별 하신 나의 스승님


7월 3일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는 5시 경에 1956년도에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아주셨던 양동기 선생님께서 전화를 해주셨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스승님이시다.

▲ TV 동화 행복한 세상의 한 장면 2
ⓒ 김선태-TV캡쳐화면
교직 생활을 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미쳐 주신 스승님이시기에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쓴 적이 있다.

겨울철에 차가운 밥을 먹는 우리가 안타까워서 댁에서 따뜻한 물을 끓여다 주셨던 이야기는 기사로도 나왔고,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 방영되기도 했다. 또 교육부 공모 '나의 스승님'에서 동상을 받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교장이 될 무렵에 교장으로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일러주신 이야기도 역시 기사로 나왔다.

우리 스승님은 참 특별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사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1956년 그 어려운 시기에 6학년 어린 마음에 심어주신 선생님의 가르침 중에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첫째,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치심이 50년이 지난 다음에 연속극 <불멸의 이순신>에서 다뤄지는 것을 보고 난 놀랐다. 선생님은 어린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돌아가신 것은 싸움이 격렬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돌아가시려고 하셨던 것이다. 전장에서 지휘하는 장수가 갑옷을 입지 않고 최전선에 서서 지휘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일어날 당쟁의 회오리에 휩쓸리기 싫어서 전장에서 죽음을 택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스스로 부르신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았느냐 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가 그 사람의 공을 높이고 하고 낮추기도 한단다.”

이제는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이런 해석을 그 당시 50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분이었다.

▲ 초등학교 졸업사진
ⓒ 김선태
둘째, 실용 지식으로 항아리 죽순과 네모난 대나무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대나무 죽순이 올라오고 있을 때 깨진 독그릇이나 항아리 같은 것을 죽순 위에 덮어 씌우고 돌로 눌러 놓으면 항아리 가득 죽순이 차게 된다. 항아리를 깨면 죽순 한 개가 몇 배나 많이 먹는 죽순으로 자라있을 것이다. 또 죽순이 자랄 때 네모난 쇠 파이프를 씌워놓으면 자라면서 네모난 대나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호박이나 수박도 틀을 씌워두면 네모난 수박이나 호박을 딸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어린 우리는 “에이 거짓말”하며 흘려 넘겼다. 그 시절에 다들 '참, 엉뚱하신 분이다'고 생각하게 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서 정말로 네모난 수박이 나오지 않는가?

50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요즘에 현실이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스승님은 참으로 특별하신 분이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정년퇴직을 하신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팔순의 노 스승님께서 지금도 자신의 가문의 내력을 글로 남기기 위해서 자료실을 찾고 도서실을 찾으시면서 집필을 하시고 계시다. 동네 후배들을 독려하여 허송세월을 하지 못하게 이끌어 주시기도 하신다.

아직도 옛 제자에게 “자네처럼 열심히 사는 모습이 부럽네. 우리 주변에는 퇴직을 하고 나서 놀기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많네. 나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네마는 자네처럼 하기가 쉽지 않네”하시면서 자신이 만드는 책이 언제 완성이 될지 걱정을 하시는 분이시다.

“자네 책을 받아보고 전화하네. 아직 다 읽어 보지는 않았네만 초등학교 교원이었던 자네가 쓴 책이 어디 의사라고 이만큼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싶었네. 언제 이런 것까지 연구하고 공부를 했던가?” 하시면서 건강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시고 몸소 실천해온 건강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가? 고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자네가 이렇게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남다른 노력을 하였는지는 안 봐도 훤하네. 그리고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나를 이렇게 늘 잊지 않고 챙겨주는 것을 보면 자네는 남다른 사람이라 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네. 이제는 자네의 사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네”하시는 은사님의 칭찬을 들으면서 더 이상 몸 둘 바를 몰라서 간신히 감사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나에게 특별하신 스승님은 지금도 아주 특별하게 나를 채찍질 해주시고 계신다.

감사합니다. 은사님, 존경하는 나의 스승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녹원환경뉴스,디지털특파원,개인 불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양동기 선생님,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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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아동문학회 상임고문 한글학회 정회원 노년유니온 위원장,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멘토, ***한겨레<주주통신원>,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인권지킴이,꼼꼼한 서울씨 어르신커뮤니티 초대 대표, 전자출판디지털문학 대표, 파워블로거<맨발로 뒷걸음질 쳐온 인생>,문화유산해설사, 서울시인재뱅크 등록강사등으로 활발한 사화 활동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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