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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에 의해 쓰이는 평화라는 단어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유엔은 '평화유지작전'(Peacekeeping Operations)을 통해 타국의 내정에 군사적으로 간섭할 권리를 지닌다.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은 민주주의 도입과 함께 미국의 평화를 위한다는 이유로 유엔의 허가도 얻지 않고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로마에 의한, 로마를 위한 평화. 이 말만큼 로마의 절대적 위치와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말이 있을까.

미국의 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어떤 문제들은 내용은 달라져도 그 패턴이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2000년을 사이에 두고, 로마 제국과 지금의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그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평화를, 국제질서를 형성해 나갔다. 천년이 지속된 팍스 로마나와 국제적으로 엄청난 비판에 직면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비교는 내용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미국의 평화의 행방, 나아가 세계의 행방을 아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팍스 로마나-로마 제국의 목적이자 수단

나는 <로마인 이야기>의 키워드는 '평화'라고 생각한다. 이 평화는 대외적인 안전 보장의 의미만이 아니라, 사전적인 의미, 즉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말한다. 작가는 1권부터 일관되게 '어떻게 로마가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군림하며 유지할 수 있었느냐'고 물으며,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인을 통한 이 질문에 대한 긴 답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의 지속성이야말로 로마를 다른 제국들과 차별화시키는 요인이며, 이는 로마의 '이해'에 바탕을 둔 탁월한 평화유지능력 때문에 가능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로마인은 현실적인 인간의 속성에 충실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인 만큼, 작가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정책의 대상자들에게 그 정책으로 인해 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납득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가장 쉽게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은 피지배자들에게 로마의 통치가 그들에게 더 이익이라는 것을 납득시키는 데에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여러 부족으로 갈가리 찢겨 있는 갈리아가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결국 더 야만적인 게르만족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여러 부족을 로마의 지배하로 들어오도록 회유할 수 있었다.

둘째로, 로마인들은 개방과 적극적인 동화를 통해 피지배인들이 팍스 로마나의 적극적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영웅전>의 저자인 플루타르코스가 말했듯, 로마를 강대하게 한 요인은 패자조차 자기들과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생활방식에 있었다. 평화의 계속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단순히 로마 지배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피지배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동성을 갖추어 둔 것이다.

로마 시민권은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고 병역 등으로 로마 제국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으로써 이용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북이탈리아 속주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고, 시칠리아와 남프랑스 속주에는 라틴 시민권을 부여했다. 또한 300명 늘린 원로원 의석을 패배자인 갈리아 부족장, 속주에 사는 로마 시민이나 백인대장에게 부여했다. 또한 그는 해방노예들을 행정직에 대거 등용하였으며, 전문직인 의사나 교사의 경우 인종, 민족, 종교에 관계없이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의 개혁이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유예되기도 했지만 결국 클라우디우스 황제대에 가서 거의 실현되었다.

로마 시민권은 카라칼라 황제의 안토니우스 칙령으로 전 속주민에게 확대되었다. 작가는 이를 취득권을 기득권으로 바꾸어버려 로마 시민권의 인센티브적 의미와 로마를 떠받들어온 로마인의 자긍심를 제거해 버렸다고 비난한다. 나는 그런 부정적인 결과나 황제가 칙령을 내리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일단 황제의 칙령이긴 했지만, 그 칙령이 받아들여졌고 황제가 전 속주민에 대한 로마 시민권 확대라는 정책을 애초에 실행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환경에 더 주목하고 싶다. 아테네나 스파르타가 아니더라도, 피지배자들을 한번에 지배자와 같은 법적 위치로 격상시키는 것은 로마가 아니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발상이다.

셋째로는 로마인들의 관용의 정신을 들 수 있다. 카이사르가 내전 이후 자신의 모토로 동전에 새기기도 한 관용(clementia)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즉, 카이사르의 경우처럼 자신의 정적을 모두 용서하는 대내적인 관용이다. 카이사르는 키케로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밝힌다.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칼을 들이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는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거요.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

카이사르는 절대권력자가 된 후에도 키케로가 자신의 정적에 대해 찬양조로 쓴 <카토>를 금서로 지정하거나 키케로를 처벌하지 않았다. 그는 <반(反) 카토>라는 반박글을 펴내는 것으로 응수했다.

또 하나는 다른 문화권에 대한 관용이다. 물론 제정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갈등이 커지기는 하나, 로마는 자신의 신들을 믿지 않는 유대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다. 즉, 동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적극적으로 기회를 열어 주었으나, 이와 동시에 그렇게 하지 않을 자유도 인정한 것이다.

팍스 로마나는 작가가 말했듯 '군사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는 사회 형성'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이다. '평화 보장'은 속주보다 우월한 로마의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소였으며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는 제국의 목적이자 수단이었다.

팍스 아메리카나-이익의 수단으로서의 평화, 평화의 수단으로서의 폭력

로마를 칭송하는 의미가 된 팍스 로마나와는 달리, 팍스 아메리카나는 미국의 일방적 외교정책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진보 진영에서 붙인 이름이다. 9.11이후 더욱 더 노골화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보 역시 '평화'를 그 핑계로 삼는다.

노암 촘스키에 따르면, 미국의 적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급진적 민족주의'이며 이를 뿌리뽑기 위해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쿠바, 이라크 타 국가의 내정에 군사적, 비군사적으로 개입한다. 팍스 아메리카나, 즉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평화는 평화라는 추상적인 목표 뒤에 가려진 자본의 이익을 이루기 위한 대규모의 폭력과 억압을 상징한다.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 로마나의 결정적인 차이는 납득의 불필요성이다. 미국 정부는 피지배자, 즉 피해 국민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팍스 아메리카나의 필요성을 납득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평화는 공허하거나 폭력을 동반하는 모순적인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미치광이 이론(mad man theory)은 "국제법이라든가 조약상의 의무와 같은 어리석음을 고집하는 것은 차치하고, 우리 자신을 너무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를 가진 나라로 묘사하는 것은 자해 행위"라는 생각을 기초로 하며, 오히려 이성적 대응을 거부함으로싸 평화를 구축하려는, 피해국과는 최소한의 동의도 없는 지배, 침해 방식을 택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그리고 특히 유엔의 허락도 받지 않은 현재의 이라크 전쟁은 명백한 침략 행위로 국제법에 위반된다.

미국은 직접적인 침해뿐만이 아니라 간접적으로도 타 국가에 군사적, 경제적으로 개입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인도네시아를 들 수 있다. 1965년, 수하르토 장군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적국에서 우호국으로 바뀌었다. 집권 후 그는 르완다식의 학살을 자행했는데, 그 후 수하르토는 미국의 '우리 사람'이 되었다.

수하르토는 자신이 직접 1980년도에만 1만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인을 학살했다고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위원회는 1975년 12월, 만장일치로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로부터 군대를 '지체 없이' 철수시킬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미국은 비밀리에 수하르토에게 무기 공수를 증대시켰다. 수하르토의 학살은 미국이 적으로 지명한 사담 후세인의 범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학살 규모가 크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공허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도 않은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가 시정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를 미국의 정치학자인 하워드 진은 자본에 의해 독점된 정치체제와 언론과 같은 대내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미국 국민에게는 민주당과 공화당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양당체제를 고수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민주당과 공화당만이 존재한다. 이 거대 양당은 자본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이익에 충실하다. 민주당 출신인 카터 대통령도, 클린턴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동티모르 학살을 지원했다. 이렇듯 자본, 정치의 독과점으로 제한된 선택권이 이미 미국인들의 생각의 지배적인 양식으로 굳어져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이루게 된다.

제국의 평화-본질적 모순

피지배자에 대한 배려의 유무를 떠나, 평화가 누군가의, 누군가에 의한, 누군가를 위한 평화가 되는 순간 평화는 패자의 승낙, 항복, 불평등한 관계의 용인에 불과하다. 로마 제국이 천 년 가까이 지속했다지만, 급속하게 몰락하게 된 계기는 팍스 로마나의 평화는 어디까지나 불평등한 관계에 기초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평등함을 전제로 맺은 평화 보장을 토대로 로마는 평화를 쌓았다. 힘의 역학관계가 흔들리는 순간, 평화가 흔들리고 그 평화를 전제로 평화를 받아들인 피지배자들은 그 순간 팍스 로마나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폭력에 기초한 평화는 안정성뿐만 아니라 정당성에서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호노리우스 황제하의 총사령관인 스틸리코는 야만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겪고, 결국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동화나 관용을 아무리 강조해도 폭력에 기초한 평화는 그 한계가 뚜렷하다.

이는 팍스 아메리카나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미국의 경우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인 만큼 이민자들에게는 비교적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며 관용의 정신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이 폭력으로 지배한 사회에는 배려의 필요성도 최소한의 규칙 준수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팍스 로마나의 성공요인을 전혀 답습하지 않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아빠 서재의 책꽂이를 기웃거리다가 표지가 예쁜 세 권의 책이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나마 부제목이 조금 만만해 보이는 2권 <한니발 전쟁>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그것이 <로마인 이야기>와 나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 후 10년간, 시오노 나나미씨가 약속대로 1년에 한 번씩 책을 내는 것처럼, 나도 약속을 지키듯이 신간이 나오면 곧바로 용돈을 털어 책을 사서 읽었다. 이제는 내 방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로마인 이야기>는 내 인생의 절반을 공유하고 가까이에서 성장한 동지이자, 나를 성장시킨 선생님이자, 내가 이제는 넘어서야 할 무엇이기도 하다.

팍스 로마나는 그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것이고,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가 본받아야 할 점이 많다. 그러나 그 역시 제국의 평화라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와 모순이 있다. 평화(平和)의 평(平)자는 평평할 평자, 평등과 같은 의미를 가진 글자이다. 평화는 단순한 화목, 단순한 분쟁의 부재가 아니다. 평등은 평화의 전제조건이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은 제국의 평화는 피지배자의 굴종과 억압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일 뿐이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태그:#로마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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