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로마인과 로마제국에 대한 경배는 시대가 갈수록 더 크게 메아리치는 듯하다. 2천년이 지난 후에도 현대인은 로마제국을 잊기보다 오히려 디지털 기술로 제국의 빛바랜 유적을 복원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사실 로마인들도 상대적으로 아주 현명했다거나 진지한 민족은 아니었다. 티베리우스가 오락 경기를 제공하지 않아 인기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가 한번이라도 식량부족이나 재해사건을 흐지부지 처리한 적은 없었다. 서기 17년 재해보고를 받자마자 대책위원회를 발족, 원조와 재건 비용으로 로마제국 전체 용병의 1년치 봉급의 절반인 1억 세스테르티우스를 지출한 예를 보면 세간이 평한대로 째째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락에는 아꼈던 돈을 시민에게 충분한 보상금으로 돌려 주었다. 그가 한사코 거절한 칭호이긴 하지만, 국가의 아버지로서 제국을 다스리려면 특히 제국의 중심에 사는 로마인들이 제국의 시민에 걸맞은 태도를 갖길 바랬을 것이다. 여기에는 절제 같은 미덕도 포함된다. 오락 같은 것은 좀 안 해도 어떤가, 건전한 마음가짐이 더 좋지 않을까 하며 매를 든 아버지의 심정이 떠오른다. 아우구스투스시대에 디오니소스를 숭상하며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종교가 일소된 것도 제국에 위협은 용납되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불건전함도 종래에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흐트려 놓는 정신적 위기를 초래한다. 티베리우스의 사망 후, 유해를 테베레 강에 던져버리라 외쳤던 로마인들이 제 손으로 반긴 칼리굴라의 실정 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젊고 새로운 것에 환호하고, '조삼모사'보다는 '조사모삼'이 더 좋은 로마인의 모습은 특별나 보이지 않다. 황제 승위가 원로원과 시민의 뜻에 맡겨진다지만, 시민에게 중대한 임무가 맡겨진 것은 시민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주는 능력을 믿었던게 아니라 피지배자가 지배자를 뽑는다는 명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시민은 자신의 손에 무언가가 쥐어지면 좋아한다. 대중이 이성적이길 바라는 것은 지극히 이상적임을 우리는 이미 배웠다. 환호에 따라 가부가 결정된다는 것도 이성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 명분이 황제를 세우고 시민도 세워준다.

로마제국의 황제 아래 로마 시민은 쉽게 선동되는 평범한 시민과 다름없었지만, 로마천년사의 실주역인 로마인이 그저 허울만 있는 이름은 아닌 점도 분명하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명문있는 클라우디우스 씨족의 직계로 태어나, 귀족에 걸맞은 태도와 고귀한 사상을 익히며 자라났다. 자부심 있는 귀족이라면 어디까지가 용납될 행동인지 알고 그에 걸맞게 행동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계제국의 시민이라면, 시민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암묵의 선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로마제국 아래 어디를 더 추가하고 왔다며 자랑스레 신고하는 개선식에 나가 양손에 꽃을 들고 환영하는 인파에 한번이라도 끼어봤다면, 제국이라는 큰 울타리 아래 로마시민의 동질감과 자부심이 한층 더 빛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제국이 된 후의 이야기다. 로마가 동시대의 카르타고와 그리스인을 뛰어넘어 종국에 이들을 통합할 제국을 세웠다면, 먼저 그에 걸맞는 자질을 먼저 갖추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로마인들이 이룩했던 유산을 되짚어 보자. 가도, 수도교 같은 사회간접자본, 무상으로 밀을 공급했던 빈민구제책, 화제 등 자연재해에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사회보장제도 등에서 빈틈없는 시스템을 구축할 줄 알았던 앞선 사고와 기능을 중시한 실용성이 특히 눈에 띈다. 하지만 사람이 드러내는 어떤 성(性)은 그 정신에서 기인한다.

로마시민의 정신을 뒷받침했던 요소는 종교와 정치라고 본다. 로마인들의 다신교는 개방적인 사고의 바탕이 된다. 신이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과 여러 명이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사고방식의 차이는 크다. 믿음의 방식에 따라 사람이 선택하게 되는 갈래도 나뉘기 때문에, 처음에 그것을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신의 계시였지만, 신이 한 명임을 굳게 믿고 끈질기게 따랐다.

그들로서는 지켜야 할 것을 지켰을 뿐이지만, 결국 오로지 하나여야 한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많은 충돌이 따랐다. 역사상 최강의 특수케이스인 유대인을 상대했던 로마인을 보면, 그 개방성이 어디까지 포괄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로마인들의 여러 신들은 유대의 신에게 좌석 하나를 더 내줄만큼 관대했다. 유대인은 신을 위해 존재했지만, 로마의 신은 로마인의 어깨선보다 약간 높이 걸으며 그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초여름의 맑은 아침 햇살 아래, 하얀 대리석 신전 앞에서 벌어지는 의식, 하얀 토가 차림으로 신들에게 드리는 엄숙한 기도, 새하얀 투니카 차림에 화관을 머리에 쓴 소년 소녀들의 합창. 이런 것들을 보고 듣는 로마인의 가슴속에서는 자신들의 힘에 대한 확신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활활 타올랐을 게 분명하다. 소박하고 건전하면서도 화려한 것은 로마인의 이상적인 자세였다.
-팍스 로마나, 174페이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했던 것처럼 15명의 사제와 시민이 제단 앞에 모여 제를 올릴 때 공유했을 일체감과 경건함을 우리는 느낄 수 있을까? 종교가 주는 믿음과 믿음 속에서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 믿음이 올바르다면 분명 로마인처럼 타인의 믿음에 대해서도 인정해주는 개방적인 방향으로 갈 것이다. 제국에 걸맞는 이러한 개방성, 로마인이라는 자부심, 국가에 충성하고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삶이라면 현대인들처럼 사야할 것도 많고 해야할 것도 많은 삶에 비해 단조로울지는 몰라도 분명 훌륭한 삶이다.

개개인을 보호하는 것은 신들의 역할이라 쳐도, 그 인간들이 모여서 구성하고 있는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악명 높은 황제들, 137페이지


로마인에게 종교와 정치의 분리는 당연했다. 그리고 그 나름의 역할이 있었다.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평균을 유지했던 이 현실감각이야말로 로마인 최고의 미덕이다. 이 건전한 정신이 제국을 통치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였음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로마인 스스로 자유로운 정신을 지녔어도 이 정신을 한데 모아 일정한 방향을 제시할 인물은 필요하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 로마제정의 세 인물은 최초의 방향을 단단히 잘 잡아두었다. 합리성에 있어서는 몸의 아름다운 황금비율처럼 정확히 다룰 줄 알았던 인물이었다. 종교가 용인된 범위를 벗어나 사회의 불안을 야기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잔가지를 쳐 낼 줄 아는 칼이 필요하다. 세속이니 신성이니 하는 탁상공론을 좋아하지 않는 로마였기에 정치가 그 칼을 쥘 수 있었다. 필요를 우선에 둘 줄 아는 것은 로마인들의 전문분야였다.

덧붙이자면 로마인들을 지탱하는 두 가지인 종교와 정치는 최소의 요건이다. 로마제국 자체는 저 둘에 존망이 결정될 만큼 약하지 않았다. 뛰어난 지도자, 지도자의 실책을 받쳐낼 수 있는 제도, 위기상황에 뭉쳤던 로마인들의 정신 혹은 운의 도움까지 받은 몇 겹의 안정장치 속에 로마는 축복받은 시대를 누렸다. 제국을 이끄는 정신이 무너졌을 때는 제국의 전통과 역사가 대신 끌고 나갔다. 분명 로마제국은 한 제방이 무너지면 둑 전체가 도미노처럼 쓰러지듯 쓰러질 수 없게끔 되어 있었다.

특히 여름에는 미드나이트 블루란 바로 이런 색깔을 말하는가 하고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감청색을 띤 맑은 밤하늘이 펼쳐진다. 그 밤하늘 밑에서 야간경기를 관전하는 것이다.
-위기와 극복, 377페이지


도미티아누스황제의 정치적 이유가 무엇이었든, 그날 밤 맑게 트인 하늘과 등불 아래 모인 시민들이 느꼈을 환희와 동질의 마음은 눈에 보일 듯이 선하다. 오늘날 2천룩스의 야간 조명 아래서는 별조차 빛을 바래고 가슴은 무디어진다. 등불이 로마인이 만들어낸 기술과 도전정신을 대변한다면, 하늘의 무수한 별은 올림푸스 12신들이 내려다보는 천 개의 눈이다. 인간이 품는 경외와 하늘의 경건성이 조화를 이루고, 거기에 실질적인 지도자의 통치가 적절한 힘을 발휘한다면, 또 이 둘의 균형이 지속된다면 이보다 이상적일 수는 없다.

시오노 나나미가 말하는 로마인의 인식수준이라는 것도, 그 기반은 이러한 균형에 대한 감각에 두고 있다.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균형이 깨진지 오래로, 오히려 하나하나가 극단으로 치닫기를 종용하고 있는 듯하다. 현대는 국교를 선포할 만한 시대가 분명히 아니다. 현대인에게 '하늘'이 무엇이 되든지는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경건과 경외심에 필적할 만한 중용의 선이다. 정치는 유권자와 시민으로서 해야 할 만큼 돕고, 나머지는 지도자의 능력과 시운에 맡길 뿐이다.

▲ 하드리아누스 별장
ⓒ 한길사
로마의 상징인 트레비분수가 말라간다는 소식이 들린다. 로마제국 때 건설되어 2천년 가까이 물을 공급하던 지하수로 '처녀의 샘'이 주변공사로 막혔기 때문이다.

지하수로의 단절은 트레비 분수뿐 아니라 로마 중심부의 보르게세 공원과 콜로라 광장, 총리 관저와 판테온의 수도 공급에까지 차질을 미쳐 이것이 로마 전체를 이어주는 수맥의 역할을 해왔음을 뒤늦게 입증했다.
- '로마의 명소 트레비 분수가 말라간다', 뉴시스 6/13일자 기사 인용


이음새 하나가 천년을 결정한다는 한 명인의 말이 생각난다. 갑작스레 세상의 빛을 보게된 이 지하수로를 통해 로마인들이 제국의 진정한 장인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로마 전체를 물로 이었던 수로처럼 로마인의 정신 또한 로마제국을 단단히 잇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지중해 세계의 통합을 이뤄냈고 몰락해서는 지중해를 넘어 전 세계로 그 망을 뻗혀 왔다. 제국 전역에 남아있는 가도와 수로에서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는 로마정신의 흔적을 발견한다. 유적의 잔해보다는 유적에 남아있는 정신의 잔해로 한때 그곳을 풍미했던 로마를 배운다.

로마제국은 인간중심과 합리성의 수원(水源)이다. 로마제국 멸망 후 중세가 암흑시대라 불린 것은 이 아름다운 정신적 유산이 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종교든 단 하나를 인간 위에 두기에 인간은 너무도 많은 가능성을 지녔음을 우리는 로마제국을 통해 이미 보았다. 르네상스가 복원하려 했던 것은 바로 맨 정신의 인간이었다. 맨 정신의 인간만이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균형감각을 가진다. 카르타고나 그리스인과 비교해 학문과 해상기술 등에 특출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중이 분별력을 갖기 힘들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경우에 예외가 되지도 않았던 로마시민은, 다만 현실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정신을 활짝 열어두었다.

라인강변에 게르마니쿠스 신화의 영향력이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것처럼, 이 극동의 '변방'에서도 한동안 로마인 신화가 지속될 듯하다. 우상에 얽매이는 것은 위에서 그토록 강조한 '맨 정신'에 어긋나지만, 우리와 다를바 없는 인간과 그 집단이 앞선 시대에 이룩해낸 영광은 깨어나기에는 너무 달콤한 꿈이 아닌가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한국적 변용은 한낮에 꿀 수 있는 꿈은 아니다. 한여름밤의 꿈 속에서나 보게 될까. 다만 <삼국지>가 전부인 줄 알았을 때도 <삼한지>의 등장은 아무도 생각치 못한 사건이었다. <로마인이야기>가 <한국인이야기>가 되는 시작도 한낱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응모작입니다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