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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
ⓒ 화남
5년이란 짧은 세월이지만 나도 탄광지역에 근무한 적이 있다. 초임 교사시절 강원도 정선 탄광지역에 근무했다. 시커먼 석탄 가득 실은 기차가 지나갈 때면 교실이 흔들릴 정도로 철도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5년의 탄광지역 생활에서 들을 건 듣고 볼 건 보았다고 생각했다. 진폐증 걸린 아버지를 둔 아이도 있었고, 탄광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아이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과 5년을 아웅다웅 살았으니 탄광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는 생각도 했었다.

도끼로 갱목에다 유언 쓰는 심정

성희직의 <세상을 움직이는 힘, 감동>을 읽으면서 탄광 생활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내 생각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깨달았다. 지옥 같은 막장에서 목숨을 걸고 탄을 캐던 이들의 처절한 삶이 어떤 것인지 소름 돋도록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무너진 막장
저만큼에서 다가오는 저승사자의 발자국소리
“어차피 우린 죽더라도 가족들은 살아야 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저마다 도끼를 움켜쥐고
갱목껍질을 벗겨 석탄조각으로 쓴 우리들의 유언
‘우리 가족들에게 2억씩 줘라’

자꾸만 밀려드는 죽탄더미에 깔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아내를 부르며
하나 둘 셋 … 눈앞에서 쓰러져 가던 동료들
견딜 수 없는 갈증 오줌을 받아 마셔가며
하루 이틀 사흘하고도 열아홉 시간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 꿈결처럼 들리는 목소리
“찾았다! 여기 한 사람 살아 있다!” (177쪽)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광부를 언론들은 ‘인간 승리’라 대서특필했다. 그런 언론을 향해 성희직은 이렇게 외친다.

인간승리?
도끼로 깎은 갱목에다 유언을 쓰던 심정
주검이 된 동료 곁에서 사흘 밤낮을 지낸 심정
알기나 하세요?
내일이면 그런 막장으로 또 들어가야 하는 심정을(177~178쪽)


막장에서 솟구쳐 떠오른 눈부신 생명력

‘광부 시인’, ‘광부 출신 도의원’으로 유명했던 성희직의 삶은 역동적인 힘이 철철 넘치는 감동의 드라마다. 제아무리 뛰어난 작가라 해도 결코 그려낼 수 없는 힘찬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신부전증 아들의 병을 고치려고 눈을 팔겠다던 가난한 어머니의 사연에 감동해서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이야기,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진폐환자 유족 보상금 찾아주기 위해 동분서주한 이야기, 체불임금을 얻기 위해 10개월 이상 광부 및 가족들과 한 몸이 되어 투쟁한 이야기, 명동 거리에서 갱목을 짊어지고 시위한 이야기….

성희직은 자신의 이런 삶의 바탕에 탄광막장에서 배운 정신이 있다고 설명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막다른 곳 막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왔던 날들, 혈연 지연 하나 없는 탄광 지역 채탄부 생활 5년이 그 어떤 어려움과도 맞설 수 있는 힘과 용기의 바탕이 되었다고 했다. 도의원이 되어서도 중국집에서 접시를 닦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막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면서도 가난하고 힘없는 광부들을 위해서 온몸으로 맞서 싸웠다. 그 모든 날들이 막장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회상한다.

막장정신으로 살아온 성희직은 어떤 사람일까. 차돌처럼 단단하고 무쇠 같은 팔뚝을 가진 억센 사람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한 대학생은 성희직의 첫 인상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책을 읽을 땐 마치 독립군 같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던 나로서는 의외의 첫 인상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독립군이었던 사람들도 특별한 인물이 아닌 우리 동네 아저씨 형님들이 아니었던가. …(중략)… 내 아버지와 같은 광부 출신의 그를 바라보면서 남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나의 삼촌이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 그렇다. 앞서 말했듯이 독립군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삼촌, 형이었듯 성희직 그 역시 우리의 형, 아버지, 삼촌 같은 사람으로 온정을 베푼 것이다. (219쪽)

탄광마을 아이들을 사랑하고, 어려운 광부들을 위해 눈물 흘리고, 힘없는 노동자들과 부대끼면서 눈물 흘리던 사람,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매일 마주치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 성희직이다.

지천명의 나이인 그가 또 하나의 투쟁을 시작했다. 강원랜드 복지재단 이사에서 해임되는 과정에 현직 정치인의 외압이 있었다며 국회 앞에서, 대법원 앞에서, 강원랜드 앞에서, 몸을 쇠사슬로 묶은 채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성희직의 글을 읽다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충격과 감동이 밀려온다. 막장정신 하나로 밀고 당기며 살아온 그의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삶에 소설가 현기영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지하의 캄캄한 막장의 한 젊은 광부가 몸을 솟구쳐 지상에 떠올라 세상을 거침없이 헤쳐 나가는 저 눈부신 생명력을 보라! (책 뒤표지)

세상을 움직이는 힘, 감동

성희직 지음, 화남출판사(2007)


태그:#성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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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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