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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부 출신 시인이자 전 강원도의원인 성희직이 자전 에세이를 펴냈다.
ⓒ 화남
1992년 주요 일간지와 KBS와 MBC 등 지상파 방송은 광부 출신 한 도의원의 '파격'을 크게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도의원이 중국집 접시닦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소식을 대문짝만하게 실었고, <동아일보> 네 컷 만화 '고바우 영감'은 그 도의원을 소재로 삼았다. MBC <뉴스데스크>에도 얼굴을 내민 그는 KBS 특집 프로그램에 50분 동안 소개되기도 했다.

성희직(50). 손댔던 중장비 사업에 실패한 그는 1986년 스물 아홉이란 젊은 나이에 '생의 막장'이라 일컬어지던 탄광촌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매일 매일이 목숨을 걸어야하는 힘겨운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중학교 졸업학력이 전부인 광부 성희직은 삶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1987년 여름, 폭풍처럼 한국을 휩쓸었던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를 통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눈뜬 그는 최악의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삶을 시로 형상화하기 시작하면서 변혁운동에 참여한다.

1990년 열악한 탄광의 노동현실을 알리고 광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평민당사에서 농성하던 그는 억압받는 자들을 외면하는 세상을 향해 절규하며 손가락 2개를 자르는 극단적 단지(斷指) 투쟁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다.

그랬던 성희직이 1991년 시집 <광부의 하늘>을 내고 시인으로 데뷔했다. 민족문학 진영에서 배출한 최초의 '광부 시인'이었다. 강원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민중당 출신 전국 유일의 당선자' '광부 출신 도의원'이란 수식어를 이름 앞에 단 것도 바로 그 해였다.

도의원 당선 후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궁여지책으로 서울 종로에 위치한 중국집 주방에서 접시를 닦아 생활비를 마련하려 했고, 경향 각처의 언론사들은 한국 정치사상 유래가 드문 이 '파격적 사건'에 주목했던 것이다.

에세이집 통해 만나게 되는 성희직의 인생역정

최근 출간된 에세이집 <세상을 움직이는 힘, 감동>(화남)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성희직의 삶과 험난했던 인생역정을 더하거나 뺌 없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책의 서문을 통해 "나는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경험에 의하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감동이다"라고 말한 성씨는 "약자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고 사회적 모순에 분노한 시간들이 탄광 노동자인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도의원으로 활동하게 했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그가 강원도의회 부의장이 되기까지의 지난했던 과정, '광역의회 으뜸의원'으로 선정된 이유, 1994년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통해 신장을 기증한 사연, 정치를 그만두고 가족 곁으로 돌아간 까닭 등이 실렸다. 굴종을 거부하며 살아온 가난한 노동자의 작은 자서전인 셈이다.

하지만, 더 큰 감동을 주는 건 '정치인 성희직'이 아닌 '인간 성희직'의 이야기다. 아내와 두 딸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이 행간마다 느껴지는 '탄광마을 아이들'과 '25년만에 다시 떠난 신혼여행'이란 소제목의 글은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낼 듯하다.

광부 성희직을 시인으로 데뷔시킨 장본인 중 한 명인 이승철 시인은 "자칫 운명이라고 믿을 수 있는 부당한 현실 앞에서 견인불발, 오체투지의 정신으로 견고한 '벽'을 희망의 '문'으로 만든 사람"이라고 성 시인을 추켜세우며 "이번 책은 바로 그러한 파란과 신명의 자전적 기록"이라 평했다.

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인 소설가 현기영 역시 "지하 캄캄한 막장의 한 젊은 광부가 몸을 솟구쳐 지상에 떠올라 세상을 거침없이 헤쳐나가는 눈부신 생명력"이란 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 감동>을 상찬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 감동

성희직 지음, 화남출판사(2007)


태그:#성희직, #광부, #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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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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