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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한강인도교 폭파 희생자 위령제'가 28일 오후 2시 30분 노들섬 둔치에서 57년 만에 열렸다. 참석자들이 위령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 이경태

"흘러가는 한강이여. 구천에 떠도는 영령들이여.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이 반드시 역사 앞에 진실을 밝혀 원한을 풀겠습니다."

윤호상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협의회 협력특별위원장은 말을 마친 후 제사상 앞에 모인 이들에게 깊게 머리 숙였다. 한강인도교 밑의 노들섬 둔치에 모인 이들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 '제1회 한강인도교 폭파 희생자 위령제'가 28일 오후 2시 30분 노들섬 둔치에서 57년 만에 열렸다.
ⓒ 이경태

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국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한강인도교를 폭파했다. 이미 이승만 전 대통령은 27일 새벽 특별 열차 편으로 대전으로 떠났고, 이날 오전 11시 긴급회의에서 채병덕 총참모장('참모 총장'의 옛말)은 서울 사수를 포기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녹음해놓은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대한민국 국군은 인민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이미 해주를 탈환했습니다."

철썩같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던 내용만 믿고 있던 서울시민들에게 북한군이 서울 가까이 왔다는 소식은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27일 오전 11시 북한군이 미아리 고개에 다다르자 서울시민들은 급하게 가족의 손을 부여잡고 전쟁의 포화를 피해 부랴부랴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날 한강인도교를 건너던 1천여명(정부 발표 800명)의 피난민 생명은 대한민국 총참모장의 한강인도교 폭파명령에 의해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1950년 한강인도교 폭파... 울어줄 사람도 없었던 지난 57년

▲ 황두완씨가 무거운 표정으로 위령제를 지켜보고 있다
ⓒ 이경태
그리고 한강인도교가 폭파된지 57년이 지난 2007년 6월 28일 오후 2시 30분. 평화재향군인회(상임대표 표명렬 예비역 준장)가 그들의 제사상을 준비했다. '제1회 한강인도교 폭파 희생자 위령회'. 이날 모인 이들은 향을 피우고 축문을 읽으며 영혼들을 위로했다.

백발을 성성한 이강립씨는 위령제를 지켜보며 혀를 찼다.

"정말로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들이 아닌가 말이여. 가족들이 다 같이 한 순간 죽었으니 울어줄 사람도, 상 차려줄 사람도 없어. 그렇게 간지 50년이 훌쩍 넘어버렸어."

황두완씨는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전쟁이 나고 충남 당진에 있었는데, 우연찮게 <인민일보>를 봤어. 이승만이가 27일날 도망을 쳤다는 게야. 그리고 나서 다리를 끊어서 뒤따르던 민간인들이 다 죽었다고 해. 이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 돈암동에 사는 사람이 나중에 말해주더라고. 미아리 고개 쪽에서 북한군이 들어오는데 탱크 몇 대 뒤에 대포를 소달구지에 끌고 들어오더라 이거야. 나라를 지킨다는 놈들이 겁을 먹고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게야.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분노하니깐 그 공병감 최창식 대령한테 다 뒤집어 씌워서 죽였어."

이승만 정부는 한강인도교 조기 폭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관련된 군인들을 군사 재판에 회부했다. 이 재판에서 한강인도교 폭파 책임자였던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사형을 선고받고 1950년 9월 21일 형이 집행됐다. 그러나 14년 후 최 대령의 부인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법원은 "최 대령은 상관 명령에 복종한 것"으로 인정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한강인도교 폭파 명령을 내린 이승만은 '전범'"

▲ 희생자들의 위패에 잔을 올리고 있는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
ⓒ 이경태
지팡이를 짚고 이야기를 듣던 장정기씨도 당시 기억을 덧붙였다.

"이승만이 '직무유기'한 거야. 2년 동안 군대를 키우면 얼마나 키우겠냐만은, 비리를 얼마나 저질렀나 말이야. 20~30대 장정들을 소집해놓고 식량 배급을 안 해서 굶어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 군대에 일본놈들 앞잽이 했던 놈들이 있는데다, 썩기까지 했으니 그리 쉽게 밀렸지. 평양에서 점심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큰 소리치더니 말야. 거짓방송이나 하고."

노구를 이끌고 노들섬 둔치를 찾은 이들의 목소리는 무거웠던 기억만큼이나 가라앉아갔다. 추도사를 올리는 이들도 부질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아파했다.

흰 상복을 입고 자리에 참석한 김원웅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도 "이제서야 찾아뵙게 돼서 부끄럽다"며 "전쟁 당시 국군과 정부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희생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에 대한 사과와 위령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도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것은 밝힐 것을 밝히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국전쟁을 언급하며 반공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세력들을 비판했다.

표 상임대표는 일부 보수언론들의 한국전쟁 관련 보도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6.25를 젊은 세대가 잊었다고 문제라며 보도하는데 정작 언론이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증오심', '혈맹으로 맺어진 미국'이다. 객관성이 없다. 정작 젊은이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다. 피난 떠나다가 자기 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들이 세상 어디에 있겠나. 이런 것을 보면 이승만은 전범이다."

윤 위원장은 "이 자리야말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태동지"라며 한강인도교를 올려다봤다.

그는 "1천여명의 민간인을 죽여놓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부역자 처리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또 사람들을 죽였다"며 "이런 민족의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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