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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 표지
ⓒ 청년사
책을 집어들며 '권인숙'이라는 이름 뒤에 놓인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참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낯설다 함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저자의 이력을 들추고자 함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저자에게서 세월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8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현장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저자에게서 세월의 흐름을 엿보았다 함은, 일반이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이나 고정관념에 맞서 양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 강하게 몰아세우기보단, 딸아이를 앞에 두고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듯 풀어가는 모습에서 투사에서 교수가 된 이의 녹록지 않았을 삶의 여정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여성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삶을 같이 이야기하고 딸과 딸의 친구들의 경험했던, 그리고 의도적으로 중학생을 만나서 나누었던 이야기 등을 토대로 딸과 대화하듯 글을 썼고, 그 와중에 남학생들도 많이 의식했다고 밝히고 있다.

<양성평등 이야기>는 크게 다섯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성별화된 차별 의식을 지적하는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란 제목으로, 여자는 왜 똑똑한 남자를 좋아할까? 여자와 남자는 정말 다를까? 여자다움이 의미하는 것들, 남자다움이 의미하는 것들,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군대 문화 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차별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는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어.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차이가 있는 것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야."

"모든 차별은 인간들 사이의 다름을 서열화하고 위계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 차이의 위계화를 해체하는 것은 곧 정상의 기능을 해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조순경, 차이의 신화와 차별의 현실)


저자는 여기에서 '성별화된 사회는 성별 검사를 할 만큼 아들을 더 원하게 만드는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는 그만큼 여성과 남성을 다르게 평가하고 대접하는 사회'라고 꼬집는다. 성별검사가 개인에게는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남을 위한 강요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 '남자=보호자'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군대 같은 학교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양성이 평등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이야기는 '어머니의 희생을 늘 아름다운가'라는 제목으로, 전문직을 갖고 있는 엄마에게 전업주부의 역량을 요구하는 딸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모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모성 이데올로기가 극복될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저자는 두 번째 이야기 말미에 "자녀의 행복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좋은 부모에 대해, 비혼모(결혼하지 않고 아이만 낳아 기르는 여성)에 대해 함께 생각할 것을 권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몸이 여성을 지배하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이어트로 잠 못 드는 딸을 보며, 다이어트로 대표되는 외모지상주의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사회를 고발하며, 외모지상주의가 여성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핀다.

"대중매체가 다이어트를 그토록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선전하는 내용 속에는 단순히 여자들에게 마른 몸매를 요구하는 메시지만 담겨 있지는 않아. '자기 관리', '승자의 선택'이라는 이미지가 없다면 이렇게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야."

2006년 초 발생한 KTX 여승무원들의 파업을 통해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젊은 여성의 외모를 서비스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며 성차별하는데, 국가가 운영하는 공기업이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도 남성은 철도공사 소속의 정규직으로, 여성은 자회사인 한국철도유통의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관행을 통해 차별을 합리화하고 있다.

네 번째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의 성, 그리고 성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왜 남자와 여자의 성 정체성이 다르게 형성되는지, 남성에게 성폭력과 성행위는 다른 것인지, 성폭력은 여자하기 나름인지에 대해 질문하며, 우리 사회 성폭력의 현실을 질타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여성이 성의 주체이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을 상식화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고 지적한 저자는 2004년도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법조인 성의식 조사에서 60% 이상의 남성 법조인이 '여성이 야한 옷을 입어서' 성폭력을 유발한다고 답한 결과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비난하는 현실을 반증한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성폭력을 조장하기도 하고, '남자는 늑대다'라며 성범죄성을 본능적이며 당연한 것으로 합리화하는 문화도 성폭력을 성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음을 비판하며, 대중매체에서 퍼트리는 통념이나 제도적 시각이 건강하게 바뀌어야 함을 주장한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일터의 여성들,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과연 여성상위시대인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여성 노동의 현실과 열악한 여성 노동 현실이 변하지 않는 이유들과 변화를 위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일터의 여성들은 '여자는 결혼하면'이라는 가능성에 차별받고, 가정에서 일방적으로 가사와 양육을 부담하는 관행이나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 개입에 의한 법제적 조치를 친여성 노동의 입장에서 만들기 위해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고, '여성의 평생 노동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을 상식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일반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인숙의 양성평등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 사회의 여성에 대한 편견과 대우에 대해 남성의 입장에서도 맞장구를 치게 된다. 또한 '남자는 늑대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던질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이나 아이에게 '남자가 어쩌고'하며 아이를 훈계하던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찔리기도 한다.

<양성평등 이야기>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차별받지 않고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전해 주고 있다.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

권인숙 지음, 유지연 그림, 청년사(2007)


태그:#양성평등 이야기, #권인숙, #성의식, #성폭력,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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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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