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산행의 첫머리에서 뒤돌아 본 산들. 멀리 구름에 쌓인 산이 충남에서 가장 높은 서대산이다.
ⓒ 안병기
산을 오른다. 오늘(6일), 내 산행은 어느 산을 오른다고 꼬집어 말할 수가 없는 산행이다. 요즘 대전에서는 대전둘레산길잇기 산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오늘 오르는 산행길은 대전둘레산길잇기 12구간 중 4구간의 변형이다.

이 구간은 닭재에서 세천공원에 이르는 13km에 달하는 거리다. 난 덕산마을에서 계현산성이 있는 닭재를 거쳐 식장산 고스락에 오른 다음 고산사로 하산할 예정이다.

난 '완주'라거나 무슨 '구간'을 정해놓고 하는 산행은 질색인 사람이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산을 오른다면서 또다시 무엇인가에 자신을 얽매이게 하고 구속하는 건 모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산행하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서 하산하면 그만이다.

오래 전 한길사에서 나온 <국토와 민중>이란 책에서 소설가 박태순 선생은 지리산에 대해 언급하면서 산을 오르는 형태를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한다. '안돌이'와 '지돌이'. 산을 품에 안는 식으로 도는 것이 안돌이며, 산을 등에 지는 것처럼 도는 것이 지돌이다.

선생은 지돌이로 산을 오르면서 산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했지만 난 어느 한쪽도 배격하고 싶지 않다. 지돌이와 안돌이를 병행하는 것이다. 통쾌하게 바라보는 것, 산 아래를 살핀다는 것, 멀리 바라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산기슭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작은 식물들의 아기자기한 모듬살이를 살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아닌가.

▲ 가막살나무 꽃. 가막살나무는 보통 산허리 아래의 숲속에서 자란다.
ⓒ 안병기

▲ 꿀풀. 꽃이 초여름에 피었다가 바로 말라죽기 때문에 여름 하(夏) 마를 고 (枯) 풀 초 (草)자를 써서 하고초라고도 한다. 입으로 쪽쪽 빨면 달다.
ⓒ 안병기

▲ 산비장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줄기가 곧게 선다.
ⓒ 안병기

▲ 싸리나무꽃. 옛날에 빗자루를 만들어 마당을 쓸던 나무이다.
ⓒ 안병기

▲ 인동꽃. 처음에 꽃이 흰색이었다가 2,3일 후 노랑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금은화라고도 한다.
ⓒ 안병기

▲ 으아리.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것은 꽃이 아니라 꽃받침이다. 꽃잎이 없으니까 꽃처럼 보일 뿐이다.
ⓒ 안병기

▲ 기린초꽃. 산야의 바위 표면이나 길가의 돌 많은 곳에 핀다. 꽃이 마치 노란 별이 뭉쳐 있는 듯 하다.
ⓒ 안병기

▲ 백선. 우아한 꽃이지만 접근하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 안병기

▲ 식장산. 송신소와 중계탑이다.
ⓒ 안병기
5시간의 산행 끝에 마침내 식장산 고스락에 올랐다. 대전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건너편엔 보문산이 빤히 바라다 보인다.

산은 오를 때마다 내게 말한다. 너를 옭아매는 세상사는 다 제자리에 놔두고 오로지 마음 하나로 내게 오라고, 네가 버리고 온 만큼 내가 그 빈 공간을 다 채우겠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난 단 한번도 산의 말에 내 전체를 다 맡긴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단 50%도 맡긴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산에 오르고 나면 언제나 마음이 채워진 나를 느낀다. 채워졌다는 것은 뿌듯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주일 전 산행에서 만났던 꽃들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다. 머지않아 장마가 오고 새로운 꽃들이 숲을 채울 것이다. 꽃들은 오늘도 내게 시간이란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를 가르쳐줬다. 산에는 드러나지 않게 삶을 가르치는 선생이 얼마나 많은가.

서서히 산자락을 내려간다. 산의 배웅을 받으면서 내려가는 마음은 원만해진 마음이다. 모난 데 없이 둥글어진 마음이다. 자연의 풍경에서 사람의 풍경 속으로 성큼 발을 디딘다. 다시 일상이다. 하루 동안 버려둔 채였지만 여전히 싱싱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생의 꽃이여.

태그:#대전, #식장산, #산행, #세상사, #선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