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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2월 25일 개방형 등록제로 바뀐 청와대 기자실 첫 브리핑 장면.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기자실 통폐합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자유를 위해 혹은 권력을 감시하기 위해 기자실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기존매체들의 기득권 수호와 담합을 위한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과연 어떤 주장이 맞는 것일까? 어찌 보면 두 주장 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사실 두 모습은 기자실에 공존한다. 동전의 양면 혹은 빛과 그림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모 지역 경찰서 기자실에서 간사를 2년 정도 맡은 적이 있다. 반면 지금은 근무하고 지역에서는 기자실 근처에도 못 가는 '왕따 기자'가 됐다. 그런 면에서 나만큼 기자실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이 글은 그런 생각에서 쓰게 되었다. 내 주장을 강조하기보다, 글을 읽는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옳다고 싶어서다.

[기자실의 그림자 1] 보도되지 않은 간통사건

내가 모 지역에서 경찰서 기자실 간사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벌써 3년 전쯤이다. 저녁 무렵 같은 경찰서를 출입하던 지방신문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술 한잔 사겠다는 것이었다. 박봉이다 못해 '빡뽕'이라고 할 만큼 적은 월급을 받는 그가 술을 하겠다는 것은 천지 개벽할 일이었다. 웬일인가 싶어서 얼른 나갔다. 한 잔 두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가 본론을 꺼냈다.

경찰 내부의 엄청난 비리가 있는데, 보도 안 하겠다고 약속하면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말 안 해도 곧 알게 될 테지만, 어쨌든 약속해 주면 말하겠다는 것이었다. 순간 '큰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그런데… 보도를 하지 말라구?? 그럴 수야 없지' 싶었다.

약속을 하지 않고 유도 심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기자는 요지 부동. 계속 '비보도'를 약속해 줄 것만 요구했다. 결국 나는 '비보도' 약속을 해 주고 말았고, '경찰 내부 비리 사건'의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남편이 모텔에서 간통을 저지르고 있으니 잡아달라'는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출동해 붙잡았다. 그런데 잡고 보니, 간통한 남편의 정부(情婦)가 현직 경찰관의 부인이더라는 것. 간통 현장에 있던 여자의 진짜 남편은 바로 그 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경찰이더라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정부의 남편이 근무를 하고 있고, 그 사람의 동료들이 동료의 부인을 '간통' 혐의로 조사를 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게다가 간통남과 간통남의 본부인까지…. 참 희한한 '4자 대면'이었음에 틀림없다.

조사를 담당한 형사도 입장이 곤란했을 것이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간통녀로 지목된 경찰관의 부인(이하 간통녀로 약칭)이 '자신은 간통을 한 것이 아니라, 성폭행을 당했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임이 틀림없었다.

담당 형사의 목소리는 높아지기 시작했다. 동료의 부인이고 뭐고 간에, '뭐 이런 여자가 있나' 싶었을 것이다. 이때, 간통녀가 폭탄선언을 했다.

"몇 년 전에 늬네 경찰관한테도 당했다. 그놈이 바로 이 사무실 안에 있다. 이래도 내가 거짓말하는 거냐?"

대형사고가 터진 셈이다. 조사결과 간통녀의 남편(경찰관)의 동료가 2년 전에 동료의 부인이었던 간통녀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뒤의 상황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상상이 갈 것이다. 형사과 사무실 전체가, 아니 경찰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경찰은 이 일을 숨기려고 했지만, 내부고발자가 있었고, 결국 모 기자가 알게 됐다. 아마도 경찰은 그 기자에게 달려가 거의 애걸복걸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경찰의 애걸복걸에 넘어간 그 기자는 나를 찾아와 사건의 내막을 알려주며 비보도를 담합해 줄 것을 요구했고, 나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 기자의 애걸복걸에 넘어가고 말았다. 보도가 되면 회사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힐 수도 있고, 자칫 '짤릴' 수도 있다는데 매몰차게 거절하긴 힘들었다.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기자실의 다른 기자들도 비보도를 약속했고, 결국 그 사건은 묻히고 말았다. 경찰이나 공무원이 직접 왔다면 당연히 거절됐겠지만, 매일 얼굴보고 각종 사건현장에서 동고동락하는 동료 기자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기자실의 그림자 2] 너흰 기자가 아냐!

▲ 과천 정부청사 브리핑룸 전경. 참여정부는 기존의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룸으로 전환하는 1차 기자실 개혁을 단행했지만 성과는 뚜렷하지 않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역시 내가 모 경찰서 기자실 간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그 기자실은 방송 3사를 비롯해 2개 라디오방송, 통신사 기자와 2개 지방신문기자가 출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출입기자' 외에 또 한 명의 기자가 있었다. 지역 유선방송사의 기자였다.

내가 기자실 간사를 하기 훨씬 전부터 출입을 하고 있었지만, '출입기자단'에는 속하지 못했다. 이 기자에겐 보도자료가 가지 않았다. 직접 경찰서를 찾아와서 달라고 요구를 해야 받을 수 있었고, 서장 간담회 같은 자리나 공식 브리핑에 참석할 수 없었다. 애초에 연락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은근히 왕따를 시키곤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기자실에 몇몇 기자들이 모여있다 중국집에다 밥을 시켜 먹기로 했다.

"너 뭐할래, 나 이거 할래…"

한참을 떠들다 보니 그 유선방송 기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 또 왕따 당할 테니, 머쓱하게 앉아 있느니 미리 가버린 것 같았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밥 먹는 자리에서조차 왕따를 시킨다는 건 좀 치사하다 싶었다. 결국 내가 총대를 멨다. 전화를 걸었다.

"어이 XX기자, 밥 먹자는데 어딜 갔어? 약속 없음 빨리와. 뭐 시켜 놓을까?"

그 뒤, 그 기자는 '공식적'으로 기자실 출입을 요구했다. 정확히는 '기자단 가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는 기자실 간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경찰서 출입기자들은 기자사회에서도 가장 말단이다. 시경이나 도경처럼 광역단위 지방경찰청에 출입하는 속칭 '시경 캡'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지역 유선방송사 보통 SO라는 곳은 언론사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그곳의 기자는 기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를 거스른다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일이었다.

인터넷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언론 가운데에는 '언론'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향력을 가진 곳도 많이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그 당시 나도 지역 유선방송사 기자의 가입요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기자단 가입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차별받지 않도록 해 주겠다'라고 약속했다.

며칠 뒤, 약속대로 경찰서장과 경무과장(공보관 겸직)을 만나 그 부분을 이야기했고, 경찰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는 한동안 우리 회사는 물론 타회사 '캡'들로부터도 '보이지 않는' 질책의 눈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뒤,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긴 내가 '왕따 기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간사를 하고 있을 당시, 나를 비롯한 '기자단'이 저질렀던 그 악행을 내가 고스란히 받고 있는 셈이다. 그 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 것 같다.

서럽고 억울하지만, 인과응보라는 생각을 하며 반성을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먼저, 조금이라도 빨리, 내가 왕따 시켰던 그 유선방송사 기자의 마음을 알았다면, 내가 겪는 이 아픔도 빨리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기자실의 그림자 3] "장 기자, 나 진급 좀 시켜줘!"

내가 기자실 간사로 출입하던 경찰서의 ○○○ 경위는 나이가 좀 많은 편이었다. 그 경위의 소원은 자신의 고향이 있는 곳의 지구대 대장으로 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경감으로 진급을 해야 했다.

형사과와 조사과는 물론 정보과와 경비과까지 거친데다, 관리 업무도 맡은 적이 있어서, 진급은 따논 당상 같았지만, 매번 경쟁자들에게 밀렸다. 그가 나를 찾아온 해에도 그랬다. 이미 두 차례 이상 진급에서 미끄러졌던 탓에 그해는 꼭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안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그 경위가 전화를 했다. 한번 보자는 것이다. 그 다음 날쯤 나는 그를 찾았고, 차 한잔을 내놓고 딴소리를 한참 하던 그는 불쑥 말을 꺼냈다.

"장기자 나 진급 좀 시켜줘!"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었다. 진급 청탁을 왜 나한테 하느냔 말이다. 어이없어하는 나를 보고 그가 말했다.

"기자단에서 한 명을 추천하면, 그 사람은 꼭 되게 돼 있어. 올해 날 좀 추천해줘!"

물론, 그는 진급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일 처리도 깔끔했고, 누구보다 성실했다. 운이 없어 진급에 연거푸 미끄러졌지만, 그 외의 분야에선 절대 모자라지 않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야 당연히 추천해 주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어떻게 기자가….

그러나 그는 집요하게 부탁을 했고, 내가 그러겠다는 대답을 하고 나서야 빙그레 웃었다. "나 진급만 되면 한턱 쏠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도대체 기자가 부탁을 한다고 해서 진급이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던가? 어이가 없기도 했고, 황당했다. 한편 호기심도 생겼다.

며칠 뒤, 기자들을 점심시간 때 모았다. 진급 이야기를 했다. 기자들은 대부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몇몇 기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얼굴이었다. 알고 봤더니, 그런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했다.

"뭐 뇌물 받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 능력 되잖아요. 말 한마디 보태 주는 건데 뭐."
"게다가 그런 사례가 있어야 경찰들이 우릴 대우해 준다구요."
"선배 생각엔 좀 그렇지만, 기자들한테도 이런 힘이 있다는 걸 보여 줘야 되요. 그래야 보도자료가 잘 나와요."

몇몇 후배들의 설득이었다. 나 역시 '보도자료가 잘 나온다'는 말에 솔깃했다.

며칠 뒤 나는 서장을 만났다. 그리고 두 달 뒤. 그 경위는 경감으로 진급했다. 사족을 붙이자면,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다른 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 뒤, 그 경위는 몇몇 '진급 공로자'들에게 한턱을 냈다고 한다. 그 자리에 기자들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기자실의 빛] 막아도 소용없어!

우리나라 정부기관 중에서 가장 폐쇄적인 곳이 어딜까? 아마도 군부대가 아닐까 싶다. 내가 예비역 대위이고, 군 공보관(정훈 장교)이었지만,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군대도 기자들이 뭉치면 손을 들고만 사례가 있다.

몇 년 전이다. 그때도 나는 모 지역 경찰서를 출입하고 있었다. 간사는 모 TV방송의 기자였다. 그 간사기자에게 어느 날 제보가 들어왔다. 군 작전지역 인근에 대전차 지뢰들이 널려 있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는 제보였다. 당장 해당 군부대에 확인했지만 "그런 적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게다가 취재에도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기자는 함께 출입하던 경찰서 기자단에 공동취재를 제안했고, 우리는 취재에 들어갔다. 일단 지뢰가 널려 있는 지역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은 군사 작전구역. 민간인이 출입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군 정훈장교 출신인 내가 나섰다. 해당 부대 참모에게 이런저런 핑계로 출입허락을 받아 놓고는 그날 저녁부터 '지뢰 찾기'에 나섰다. 화천에서 전방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작전도로를 어느 정도 찾아 올라가자 길 양쪽 고랑으로 대전차 지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인근 개울에는 비스듬히 묻혀있는 지뢰도 있었다. 물론 모두 '연습용 지뢰'였다.

이번에는 군대에서 폭파병을 했던 모 기자가 나서 지뢰를 해체했고, 그 장면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달려온 모 사단 정훈 참모는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롯트번호(모든 군용 무기류에 붙어 있는 고유번호, 사제품의 시리얼 넘버와 비슷하지만, 롯트 번호는 각 물건마다 다른 번호가 부여된다)가 없어서 군용인 걸 확인 못 해서 수거를 안 했다"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했다. 물론 그 장면까지 고스란히 TV카메라에 잡혔고, 기자들은 그걸 놓칠세라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사실,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훈 참모가 촬영을 거부해 근접 촬영을 못 하고 있는 동안, 다른 방송사에서 멀찍이 서서 그 장면을 잡았다. 그 방송사의 와이어리스 마이크(카메라와 연결된 마이크로 무선으로 연결됨)는 내가 들고 있었다. 그 방송사 기자가 미처 다가서지 못한 상태였는데다, 정훈 참모를 따라온 다른 장교와 실랑이 중이기도 했다. 소속회사를 떠나서 합동작전(?) 펼친 끝에 기막힌 장면을 건진 셈이다.

다음날, 그 뉴스는 각 방송과 신문에 실렸다. 그 보도 때문에 국방부 장관이 아침밥을 먹다가 노발대발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기자실의 빛'은 많다. 이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다. 뭉치면 힘이 강해진다는 건 어디에서건 통하는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사례를 들고 싶지만 자기자랑이 될 것 같아 '기자실의 빛'은 그만 쓰기로 한다.

이처럼 기자실의 존재는 순기능도 있고, 역기능도 있다. 역기능이 있다고 해서 없애는 것도 잘못이지만, 순기능이 있다고 해서 역기능을 방치 하는 것은 더 잘못된 것이다.

기자실은 통폐합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기자들과 언론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기자실의 빛과 그림자를 체험했던 그 경찰서 기자실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책임을 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리는 것은 무책임하다. 왜냐하면, 기자실의 그림자를 혹은 역기능을 기자들이 스스로 개선해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비리를 비판하고, 잘못된 관행을 들춰내는데 적극적이었던 기자들이 스스로에게는 너무도 관대했다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되지 않는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기자실'을 살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자실의 그림자를 없애는 노력부터 먼저 하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기자실 폐쇄, #언론관행, #기자실 간사,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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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만 군에서 5년간 공보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군에 대한 자세한 것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군의 공보체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군내에 지인이 몇사람 있습니다. 군사분야에서 좀더 활동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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