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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논란되고 있다. 통일부와 여성부, 해양수산부 폐지가 도마에 올랐고, 국가인권위와 방송위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하다.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 찬반을 떠나 풍부한 논의는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정당한 논의를 위해서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건 잘못이나 실수 차원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신들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줄 것이라고 믿는 가운데 벌어지는 행위, 한마디로 우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권인수위의 대변인을 맡은 사람의 행동이 그렇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얼마 전,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서 미국의 연방 통신위원회(이하 FCC)가 미 연방 대통령의 직속기관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현재 독립기구인 방송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만드는데 반발이 심하자 '미국도 대통령 직속기구'라며 대통령 직속 기구 편입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틀렸다. 최근 발행된 PD협회의 기관지인 <PD저널>에도 박형준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사실, 틀렸다기보다, 거짓말에 가깝다. 이유가 궁금하다면, 인터넷으로 국회도서관에 접속해 '미 연방통신위원회' 혹은 '독립규제 위원회'라는 주제어로 검색을 해보기 바란다. 우리나라에도 '미 연방 통신위원회'에 대한 연구가 엄청나게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진행됐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부 간행물은 물론이고 수많은 석박사 논문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중 어느 저작물을 골라도 좋다.

 

그 논문과 간행물들 중에서 '미 연방통신위원회'를 '미 연방 대통령 직속기구'라고 기술한 저작이 몇 권이나 되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아마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있다고 해도, 진짜 '미 연방 대통령 직속'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리 독립이 돼 있다 해도 대통령이 위원을 임명하므로, 넓은 의미에서 대통령의 행정부에 속해 있다'라는 기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 데도, 한나라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버젓이 '미 연방 통신위원회는 미 대통령 직속'이라고 주장을 한 것은 설령 거짓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거나 일부러 준비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사기에 쉬울 것 같다.

 

게다가 박형준 의원이 누군가? 전직 부산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가 아닌가? 그런, 박 의원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즉, 박의원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자, 그럼 여기서 미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란 어떤 기구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 연방통신위원회 FCC는 1934년 연방의회가 제정한 '통신법'에 의해 세워진 기구이며, 1962년 통신위성법에 의해, 그리고 1996년 원거리 통신법에 의해 권한이 확대됐고 지난 2002년 다시 법개정을 거쳐 기구가 정비됐다.

 

5명의 위원은 미 상원의 인준을 거쳐 미 연방대통령이 선출하며, 위원장도 위원들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위원은 여야가 각각 2명씩을 선출하고, 대통령도 1명을 지명할 수 있는데 보통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이 위원장을 겸한다.(<미국의 연방정부조직>, 한국 행정연구원, 1997 홍준현  조신래  Roy W Shin 공저.  p132 참조)

 

미국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케이블 TV를 비롯해 위성통신과 전화, 방송사업 전반에 걸친 규제를 담당하며 때로는 일정한 분쟁에 대한 조정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런 기구는 행정기관이면서도 사법기능을 일부 담당하기 때문에 '독립규제 위원회' 혹은 '독립행정위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위의 책  p132)

 

대체로 행정부에 속하지만 행정부로부터 독립해서 운영하게 되며, 특별한 경우에는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연방 통신위원회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미 행정부와는 별도의 예산편성권을 가지고 있고, 의회가 연방정부와는 따로 예산을 심의하며, 위원들을 선임하는 것 외에는 연방 대통령이나 연방 상원이 따로 간섭을 하지도 않는다.

 

연방 정부에 속하지 않지만, 행정부라고 보는 사례도 있고, 연방정부에 포함되지 않는 독립적인 행정기관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미 의회에 소속된 기관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통신서비스시장 환경변화에 따른 통신정책 및 규제기능 개선방안 연구> 2002 서진완. 정보통신부. p41)

 

독립 행정위원회 혹은 독립규제위원회는 주로 대륙법 국가들에게 선호된 제도였는데, 영미법계인 미국이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은 연방정부의 지속적인 팽창과 권한 확대를 경계하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즉, 방송과 통신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전문기구가 행정부 소속이 된다면, 의회의 권능을 더 줄어들 것을 염려한 것이다. 따라서, 미 연방 의회는 행정부를 거치지 않고 FCC에 직접 권한을 위임해 업무를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앞의 책 p 69)

 

문제는 이런 기구가 FCC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린스펀 의장으로 유명한 미국 준비제도 이사회 역시 이런 형태의 기구이며, 연방선거위원회, 연방노사관계위원회 등도 같은 유형이다. .(<미국의 연방정부조직> 한국 행정연구원, 1997 홍준현  조신래  Roy W Shin 공저 참조)

 

그리고 이 가운데는 최근 독립기구에서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이 거론되고 있는 '인권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미 연방 민권위원회'도 있다.

 

이 같은 예를 볼 때, 방송통신위원회와 인권위원회는 대체로 독립기구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독립기구로 격상돼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 임기가 채 시작되지도 않은 이명박 정부가 굳이 이 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려 하는 것은 방송통신의 장악과 인권위원회의 약화 혹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굽실거려주는 거수기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http://blog.daum.net/ohngbear/?_top_blogtop=go2myblog


태그:#미 연방통신위원회,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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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전문 지식은 없습니다만 군에서 5년간 공보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군에 대한 자세한 것까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군의 공보체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군내에 지인이 몇사람 있습니다. 군사분야에서 좀더 활동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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