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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try to rearrange them, just throw them away!
(다시 정리해 보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냥 버리세요!)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도솔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이 한 줄을 발견하고는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있다. 글의 내용은 이랬다.

좀더 효과적으로 정리해 보려고 자꾸 헛된 노력만 반복하지 말라는 것. 집안의 덩치 큰 가구들은 물론이고 넘쳐나는 종이와 문구류, 옷가지와 신발, 그릇, 소품들, 심지어 냉장고나 수납장 속까지, 창조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보려는 의도에서 물건의 위치를 바꾸고 새로운 수납용품들을 사들이는 어리석은 반복은 그만두라는 것.

대신 그저 주기적으로 부지런히 버리라는 것. 그것만으로 집안은 말할 수 없이 말끔해지고 우리의 일상은 단순화되며 이로 인해 새로운 에너지가 우리 속에 흐르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무렵, 예전에 읽었던 책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을 다시 훑어보게 되었다. 영국인인 저자 캐런 킹스턴은 풍수이론에 기반을 둔 '버리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무엇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한다. 많은 경우 소유물에 대한 애착이 우리를 가로막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소유물에 자신을 지나치게 결속시킨 나머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잡동사니를 치우는 과정은 버림에 관한 것인데 이는 그저 소유물을 버리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단지 행위의 결과일 뿐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렇게 오랫동안 물건을 간직해야 했던 우리의 두려움을 버리는 의미라는 것이다.

작가가 짚어내는 현대인의 삶은 마치 나의 한심한 일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람들은 잡동사니를 찾아 헤매며 쇼핑을 하고, 그 잡동사니를 보관하기 위해 수납 상자나, 서랍장, 서류함 등 또 다른 물건들을 사들이고, 심지어는 집안 구조를 확장을 하고, 창고를 만들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것을 청소하고 유지하느라 또다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

'몇 천만 원을 들여 차고를 증축해 놓고는, 평생 들춰볼 일 없는 잡동사니들을 모셔두기 위해 몇 천만 원짜리 새 차는 오히려 항상 차고 밖에다 세워두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굳이 차고까지 예로 들지 않더라도,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도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다시 좁게 느껴지는 것 정도는 누구나 경험을 했을 것이다. 아이가 크고 가족 구성원이 늘어서일 수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 집안의 물건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며칠 동안 작정을 하고 버렸다. 집을 통째로 들어서 거꾸로 한 번 뒤집어 탈탈 털어낸 후 텅 빈 집안에 딱 필요한 것만 하나 둘 다시 집어넣는 듯, 그렇게 대대적인 버리기 작업을 해 버린 것이다.

'최근 일 년 사이에 들춰 본 적이 없는 물건'을 기준으로 쓸만한 것들은 모아서 YMCA에서 운영하는 가게에 갖다 주기도 하고, 필요한 이웃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문구류나 책들은 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재활용(기부하거나 나눠 줄 것), 쓰레기, 1년간 더 보관할 물건 박스로 나누어 하나 둘 분류해 가는데 처음엔 넣었다 뺐다 망설이게 되던 것도 '버리기'에 익숙해지면서 차차 물건에 대한 욕심이나 미련이 사라지더니 쉽게 정리가 되어갔다. 내게 필요한 것과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곳들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수납장 속까지 텅 비었을 정도로 그렇게 다 치워 버렸다. 정말 유쾌했다. 집안 구석구석이 숨을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새로운 에너지가 온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 듯한 느낌.

물론 '버리기' 작업을 대대적으로 한 후에도 당장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아침에 눈뜨는 느낌, 잠자리에 들 때의 마음가짐, 하루하루 일상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과 태도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영혼의 잡동사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온갖 쓸데없는 물건으로 가득 찬 집안처럼 영혼에도 잡동사니가 있다는 것이다. 직관을 흩뜨리고 혼란시키고, 갈피를 못 잡게 하고, 생의 기로에 선 우리를 가로막는 잡동사니. 그런 영혼의 잡동사니를 없애버려야 반짝이는 눈빛과 맑은 정신, 민첩한 행동으로 삶을 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필요한 물건도,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목표와 계획도 계속 변해간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내 인생에 들어 올만한 공간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지나간 것, 오래 묵은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새롭고 반짝이는 것들이 들어올 공간이 부족하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텅 비워 두고, 활짝 열어 두어 새로운 기운이 맘껏 들어올 수 있게 하자. 내게 머무르는 동안은 소중하게 함께 지내다가 때가 되면 훌쩍 떠나보내는 삶, 멋지지 않은가. 나는 단지 잠시 그것의 주인이었던 것뿐이다. 그것이 물건이든, 시간이든, 인연이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옮김 / 도솔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풍수와 함께하는 잡동사니 청소, 2013 원서개정판

캐런 킹스턴 지음, 최지현 옮김, 도솔(2016)


태그:#캐런 킹스턴, #최이정,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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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시대를 넘나드는 기호와 이야기 찾아내기를 즐기며,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인문학자입니다. 이중언어와 외국어습득, 다문화교육과 국내외 한국어교육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헤밍웨이를 따라 파리를 걷다>, <다문화 배경 학생을 위한 KSL 한국어교육의 이해와 원리>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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