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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교통사고 외에도 화재나 산업재해 등도 방송 뉴스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산재사고 보도에 대하여 유난히 인색하던 방송사의 과거의 행태와 비교해서는 많이 달라진 것이지만 여전히 사고의 규모에만 초점을 맞출 뿐 원인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빠른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뉴스방송의 한계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KBS 프로그램 <위기탈출 넘버원>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화재나 산재예방 뿐만 아니라 일반 생활안전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도 그 원인과 대책을 아주 재밌게 소개하고 있다.

아직 2년이 채 되지 않는 동안 89회 방영된 프로그램이지만 이미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반응이 뜨거운데 10살도 되지 않은 내 조카들도 토요일이면 늦도록 잠을 자지 않고 ‘넘버원씨’ 안전한 탈출을 확인해야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되었다. 만화로 나온 ‘위기탈출 넘버원’은 이미 사서 읽은 지 오래이다.

며칠 전 민방위훈련에 참석한 나도 그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방위훈련 교육 첫 시간이 ‘위기탈출 넘버원’의 주요 장면 편집 동영상이었는데 조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 피교육생들이 고개를 들고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민방위훈련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었다.

교육효과는 구체적으로 사람을 살린 사례를 만들기도 했는데 전철로 떨어진 사람이 TV에서 배운 대로 배수구로 몸을 숨겨 목숨을 건지는 등 가시적 성과들도 나타났다. 일선 노동현장에서도 방송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부터 시작된 지게차 안전벨트 착용의무에 대해서 많은 현장에서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사용하지 않던 안전벨트를 착용하거나 혹은 교체하는 사례도 눈에 띄었다. 산업안전근로감독관 수십 명이 해야 할 몫을 족히 방송이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옥의 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주 토요일(26일) 방영된 89회만 보더라도 실험과 대책 부분에서 적절치 못한 절차와 대책이 제시되었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간에서 페인트칠을 하다가 유기용제(시너) 중독으로 사망했던 사례를 소개한 것이었는데 대책으로 제시한 마스크가 안면부 여과식 방진마스크였다. 방진마스크는 먼지를 막는 데 쓰이는 것으로 유기용제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방진마스크가 아니라 방독마스크가 필요하다.

유기용제 작업현장을 재현하는 실험장면에서도 피실험자가 착용한 보호구는 공기호흡기였음에도 자막에서는 산소호흡기라고 잘못 표기됐다. 작업현장에서 산소만으로 호흡하면 오히려 작업자가 산소중독에 걸릴 수 있어 위험하다.

잠수부들이 물속에서 메고 다니는 가스통도 산소통이 아니라 산소와 질소가 혼합된 공기통이다. 산소호흡기 즉 산소마스크는 순수산소를 공급하는 기구인데 고압 산소치료가 필요한 환자나 혹은 고공에서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승객 머리위에서 내려오는 비상용 호흡기 등에만 적용된다. 빠른 시간 안에 제작을 하려다 보니 전문가의 조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위기탈출 넘버원>이 방영이 두 해를 맞고 있고 또 최근 다른 방송사의 비슷한 프로그램인 <요! 주의사항>을 무릎 꿇린 것에 만족하지 말고 좀 더 신중하고 치밀한 제작을 해주기를 부탁한다.

티가 없지 않지만 <위기탈출 넘버원>은 우리나라의 안전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가고 있는 안전 분야의 옥동자임은 분명하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OECD 어린이 사고율 1위, 산재 사망률 1위의 오명을 벗는데 ‘넘버원씨’의 활약이 많은 힘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안전 분야 종사자로서 깊은 감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 노동부 산업안전근로감독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위기탈출, #넘버원, #공기호흡기, #산소호흡기, #산소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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