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무를 보러 가다

▲ 도예공방 흙즐김 임하나 대표.
ⓒ 유호정
임하나씨는 올해 4월 18일부터 일주일간 인사아트센터에서 세 번째 개인전 <나무와 나>를 가진 젊은 예술가이다. 현재 대학로에서 도예공방 흙즐김을 운영하고 있다. 일관되게 사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으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억이나 회한, 기쁨이나 슬픔 등을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때로는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최근 작품 <나무와 나>에서는 나무그림을 통하여 상처가 치유되는 성숙의 과정을 표현하였다. 대표작 <나무와 나>에서는 사람 옆에 나무가 서 있다. 나무는 움직일 수가 없으니 사람이 어디선가 걸어온 것이다. 여로에 지친 사람은 나무 옆에 앉아 눈을 감고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무와 사람 사이의 빈 공간을 지나는 바람 위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리는 듯하다. 아마 그녀가 지금까지 천착해왔던 사람의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얼마전 대학로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전화로 위치를 물어 보았을 때 꼼꼼하고 세밀하게 위치를 알려 주어 섬세한 성격이려니 했으나, 의외로 소탈하고 소박한 말투와 인상이었다. 물레와 작업 도구들이 적당히 방치되어 있는 모습에서는 여유로움과 멋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예술가의 작업실이 행정 사무실처럼 완벽히 정리되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을러서 그래요. 자신을 꽉 죄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이렇게 되죠. 그래도 기자님 오신다고 부랴부랴 치운 게 이래요."

아마도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작업실이었다면 부담스럽기도 하고 솔직히 더 어색했을 것 같다. 인간의 마음도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는데, 인간을 다루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은 어딘지 모순이 있는 말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얼마 전에야 알았어요. 세상에 '다른 일'이란 없다는 것을요

"세상에 따로 떨어진 것은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이 관념 다르고 저 관념 다르고, 이 일 다르고 저 일 다르고, 모든 걸 분리해서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세상 일이라는 것은 전부 연결되어 있었어요. 그걸 깨닫고 나니 제 속에 많은 고민들이 사라지고 성숙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어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도 사실은 다르지 않아요. 그것들을 너무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마음이 문제죠. 그들 사이에도 분명한 공통점이 있고 융화할 수 있는 요소로 분명히 이어져 있습니다."

이런 멋진 작업실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가 한 말이다. 그녀의 말은 거침없이 나오면서도 듣는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부드럽다.

"무엇인가를 파는 사람,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생각해보면 다 같은 일입니다. 다 자신만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게 된 거에요."

그녀의 화법은 독특하다. 의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딘지 사람을 위로해주는 마음이 느껴진다. 아마 의도하려 했다면 단박에 느껴졌으리라. 그녀의 따뜻한 위로를 좀 더 경청하기로 한다. 아, 참. 그런데 나이가 몇 살일까? 인생론을 펼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나이는 이따 가실 때 알려 드릴게요

나이를 좀처럼 짐작할 수 없다고 하자, 웃으며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나이를 말하기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요. 나이를 말하게 되면 그 나이를 듣는 순간 무엇인가 한계가 지어지고, 마음속으로 이것저것 재단하게 되죠. 재미없잖아요. 제 공방에서 저한테 수업 듣는 학생 중에 저랑 친구처럼 지내는 분이 있는데 그 분도 나이를 몰라요. 서로 속 깊은 이야기도 털어 놓고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다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눈빛을 보내자 대답이 돌아온다.

"예전에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공항에 마중 나와서 마지막으로 배웅하면서 그러더라고요. '근데 몇 살이야' 하고, 재미있죠?(웃음) 나이는 이따가 인터뷰 끝나고 나가실 때 알려드릴게요."

그런데 그녀의 개인전 팸플릿에 그녀의 나이가 나와 있었다. 기자보다 많다. 어색한 웃음을 짓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걸요.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하나씨라고 부르세요." 기자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는가 보다. 아무리 그래도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 괜찮겠냐고 묻자, "나이는 정말로 숫자에 불과한 걸요" 그녀, 따뜻한 말씨 속에 경쾌한 생각의 호흡이 숨어 있다.

조금씩 변하는 나, 그리고 3번의 개인전

"결국 제 작품은 제 자신을 표현한 것이었어요."

하나씨는 말한다.

"두 번째 개인전까지는 생각해보면 제 모습이 작품 속에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나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더군요. 이번 개인전에서는 어느 정도 저의 모습을 탈피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처음으로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말처럼 손바닥 위의 머리카락이 눈 속의 머리카락으로 느껴진다고 할까요. 자기 자신을 벗어나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지금 나의 나무 그림은 3년 전 그림과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조금씩 나는 성장하고 있고 어제보다는 오늘이 나아진, 그것이 바로 내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나의 또 다른 탄생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조금은 성장한 나를 자축하는 자리이며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고 싶은 것이다. 나의 나무는 가만히 있는 듯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커 가고 있었다.-제3회 개인전 <나무와 나> 팸플릿 중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뭐, 여기에 있으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전 이 일을 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또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자기가 잘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면 나중에 뭐가 되든 되지 않겠어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벌이에 대한 뉘앙스를 풍기는 질문에 나온 그녀의 대답.

"직장인들이나 주부님들을 대상으로 취미 반을 운영하기도 하고요, 크고 작은 축제의 도자기 만드는 체험 행사에서 강사 등을 하기도 했었어요. 수업 들으시는 분들은 지금도 알음알음으로 찾아오세요. 그러나 너무 크게는 못해요. 제가 감당을 못하기도 하고, 이 곳도 그렇게 넓지는 않고요. 일주일에 하루면 하루 이틀이면 이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지요."

선반 위에 놓여진 그릇들이 소박하고 예쁘다. 예술가가 아닌 범인의 생각으로는 이런 그릇들을 팔아도 괜찮을 것 같다. 브랜드화 시키는 것도 괜찮을 테고.

"조형과 예술은, 아까 말한 것처럼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 연결 된 것이지요. 공장에서 나온 작품도, 사람 손을 거쳐 나온 것도, 다 나름의 조형미가 있어요. 컵이나 그릇 등을 판매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작업을 해 봤는데, 안 해본 일이라 그런지 쉽지가 않더라고요. 조금만 비뚤어져도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니까요.(그녀는 컵 입구가 둥그스름한 컵을 가져와 보여준다. 인공의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미가 느껴지는 컵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상품으로 팔기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둔한 기자의 눈에는 예쁘게만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이트나 블로그를 통해 오셔서 저에게 구입의사를 물어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데 가격을 매기기도 쉽지 않고 이것저것 간단한 일이 아니더군요. 아마 프로통에 제 블로그가 올라가면 더 많아질 텐데,(웃음) 저도 준비 잘하고 있겠습니다."

앞으로 이 곳을 자주 찾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인터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재주꾼들을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고 더 많은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일하는 것

"무슨 일을 하든지 재미있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일들이 재미있지가 않아서 어긋나는 것 아닙니까? 공부도 잘 하는 애들 이야기 들어 보면 재미있게 한다고 그러고, 결혼 생활에 실패 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고요. 컵이나 그릇을 만들어 파는 일도 재미있게 하고 싶고요. 어쨌든 재미없는 일을 계속 하고 싶지는 않으니깐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임하나씨는 길가까지 배웅을 해 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프로의 모습에 대한 또 다른 정의이기도 할 것이다. 도예가 임하나,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신이 내린 정의에 따라 묵묵히 나아가고 있었다. 대학로 한 편 지하 그녀의 작업실 흙즐김에서 보낸 두 시간이 한 순간에 지나간 것 같다. 오후의 햇살에서 작업실에서 나던 흙냄새가 풍긴다. 나무 냄새 같기도 하다. 아니, 자세히 맡아보니 그것은 사람의 냄새였다.

덧붙이는 글 | █ 프로필 

임하나(Im, Ha-Na)
1999년 제 1회 개인전 '자화상'
2003년 제 2회 개인전 '뚫고 나오다'
2007년 제 3회 개인전 '나무와 나'
2006년 "ON THE INSIDE(ABOUT MYSELF)
        독일 Bochum KUNST-UND GALERIEHAUS
그 외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