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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계의 패스트푸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햄버거 업체들. 막대한 관광수입을 노린 미국의 각 주들이 저마다 햄버거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 시장을 석권한 미국식 햄버거 체인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맥도날드를 대표하는 '빅맥' 햄버거는 전 세계 물가를 비교하는 가늠자로서의 역할을 할 정도다. 두 개의 둥근 빵(bun) 사이에 갈아 만든 쇠고기 패티를 얹은 이 단순한 음식이 어떻게 전 세계에 퍼질 수 있었을까?

순진하게 맛의 차원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 문화 현상의 이면에는 '음식의 정치학'이 숨어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인이 즐기는 것과 똑같은 것을 즐기고 싶어하는 약소국민들의 부러움과 시샘이 섞인 채.

비록 세계는 햄버거를 미국의 음식으로 보고 있지만, 미국인은 그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보다. 미국인은 햄버거가 '미국의 음식'이 아니라 '자기 주, 자기 마을의 음식'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 각 주 의회까지 나서서 자신이 햄버거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는 현재의 초강대국 미국을 보지만, 정작 미국인은 뿌리가 얕은 자신의 과거를 '햄버거 원조 찾기'로 보상받길 원한다.

[위스콘신] '햄버거 원조 찾기'의 원조

위스콘신주 의회는 9일 "세이모어 시에 살던 찰스 나그린이라는 사람이 1885년 처음으로 갈아 만든 쇠고기 패티를 햄버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며 위스콘신이 햄버거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사실 위스콘신주는 주의회까지 나서 이런 선언문을 채택할 필요가 없었다. 위스콘신주는 여태껏 자타가 공인하는 햄버거의 원조였기 때문. 지난해 8월 오하이오주 아크론시에서 열린 전국 햄버거 축제에서는 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어느 주가 햄버거의 원조인가'라는 질문에 위스콘신주가 39.6%의 표를 얻어 당당히 1위가 됐다.

위스콘신주의 지역 역사가들도 "찰스 나그린이 한 지역 축제에서 미트볼을 팔다가 장사가 잘 안 되자 사람들이 먹기 쉽게 미트볼을 갈아서 빵 사이에 집어넣어 팔아 대성공을 거둔 게 햄버거의 시작"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스콘신주는 나그린이 살던 세이모어시에 '햄버거 명예의 전당'을 짓고, 수십 년 동안 매년 8월 첫번째 토요일에 햄버거 축제를 벌여 왔다. 위스콘신주는 햄버거 원조 찾기의 '원조'인 셈.

하지만 주 의회까지 나서 선언문을 채택해야 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텍사스주가 자신이 햄버거의 원조라며 작년 주 의회 결의문 'HCR No.15'을 채택하면서 위스콘신주의 아성이 위협 받게 됐기 때문이다.

[텍사스] "양키들이 햄버거에 대해 뭘 알아?"

결의문 주도의 주인공은 텍사스주 하원의원이자 댈러스시 동남쪽으로 116km 정도 떨어진 아텐시 주민인 베틀 브라운이었다.

이 의원은 "위스콘신주에서 만들어졌다는 햄버거는 갈아만든 쇠고기 패티에 불과했다"며 "오늘날 우리가 햄버거라 부르는, 빵 사이에 고기와 양파·피클 등이 들어가는 진정한 의미의 햄버거는 텍사스에서 1880년대 초에 처음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지역 역사가이자 유명 언론인인 프랭크 톨버트와 맥도날드가 세운 '햄버거 대학'의 연구로 뒷받침 되고 있다. 1904년 세인트 루이스시에서는 세계 박람회가 열렸다. 이를 참관한 <뉴욕 트리뷴>지의 한 기자는 이 박람회에서 처음 소개된 햄버거를 보고 '가판 음식의 혁신'이라고 썼다.

비록 이 기자는 누가 당시 햄버거를 팔았는지에 대해서 쓰지 않았지만 톨버트와 맥도날드 역사가들은 그가 텍사스 아텐시에 살던 플레치 데이비스라고 주장했다. 1864년에 태어난 데이비스는 아텐시에서 '올드 데이브'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샌드위치를 가게를 운영했다.

1904년 세인트 루이스에서 박람회가 열리자 아내와 같이 참가해 '올드 데이브의 햄버거 스탠드'라는 가판을 냈다. 여기서 그는 쇠고기를 갈아 얇게 만들어 두 개의 손수 만든 빵 사이에 넣었다. 거기다가 크고 두꺼운 양파를 얹은 최초의 햄버거를 팔았다는 것.

텍사스 주민인 페기 굴드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옛날부터 육류제품의 생산과 가공에 독보적이었던 텍사스에서 최초의 햄버거가 나왔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양키(미국 북부지역 주민을 낮춰 부르는 말)들이 쇠고기에 대해 뭘 알겠냐"고 비꼬았다.

ⓒ 오마이뉴스 성주영
[코네티컷] "부시도 햄버거도 우리가 원조"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주 중 하나인 코네티컷주는 '발명의 고향'인 자기 주에서 햄버거도 발명됐다고 주장한다. 실제 코네티컷주에서는 고무 타이어, 목화 조면기, 코르크 마개뽑기 등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시장 존 드스테파노는 "뉴헤이븐이 햄버거의 고향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는 연방 국회 도서관 기록에도 나와있다"고 말했다. 연방 하원의원인 로사 드로로는 코네티컷주가 햄버거의 원조라는 것을 밝히는 의회 결의문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1900년에 뉴헤이븐시에서 '루이스의 점심 마차'라는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루이스 라센이 햄버거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라센이 가게를 운영하던 어느 날 인근 공장에 다니던 한 바쁜 노동자가 가게에 들어와 달려가면서도 먹을 수 있는 점심을 주문했던 게 햄버거를 만들게 된 동기였다.

라센은 그 노동자를 위해 샌드위치용 빵과는 다른 특수한 빵과 갈아 만든 쇠고기를 이용해 햄버거를 만들었다는 것. 라센의 후손은 오늘날도 같은 장소에서 자신들의 할아버지가 쓰던 석쇠를 그대로 이용해 햄버거를 만들고 있다. 이런 사실은 2000년 7월 27일 미국 연방 의회 도서관 기록 1377 페이지에 실렸다.

뉴헤이븐 시장 드스테파노는 "우리는 부시 대통령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비록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텍사스 출신이라고 믿게 하려고 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텍사스 사람들은 햄버거가 텍사스에서 나왔다고 믿고 싶겠지만 사실은 코네티컷이 햄버거의 원조"라고 잘라 말했다.

오하이오·오클라호마도... 너도 나도 원조 타령

이들 주 외에도 햄버거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주는 줄을 섰다. 오하이오주는 자신의 주민인 프랭크 멘치스, 찰스 멘치스 형제가 1880년대 초에 햄버거를 처음 선보였다고 주장한다.

멘치스 형제는 뉴욕주 햄버그(Hamburg)시에서 열린 한 축제에서 돼지고기가 떨어지자 대신 쇠고기 조각들을 갈아 빵 사이에 넣은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은 지역 이름을 따 이 음식의 이름을 햄버거로 불렀다는 것. 오하이오주 아크론시는 이를 기념해 매년 전국 햄버거 축제를 벌이고 있다.

주지사가 직접 햄버거 원조의 명성을 찾아오는 데 발벗고 나선 주도 있다. 1995년 오클라호마 주지사 프랭크 키팅은 "1891년 오클라호마주 털사시에서 '오스카 할아버지'라고 불리던 사람이 처음 햄버거를 만들었다"며 "털사가 '진짜 햄버거의 고향'임이 명백하다"고 선포했다.

▲ 한 시민이 서울 명동의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햄버거와 콜라를 먹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에 뒤질세라 캘리포니아, 켄터키, 콜로라도주 등도 원조 타령에 한 박자씩 거들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햄버거 원조로 온통 난리를 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소비의 천국' 미국에서 원조로 인정 받는 지역은 만만치 않은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

미국인들은 역사에 관한 한 유럽에 대해 열등감이 깊다. 뿌리가 없는 나라에서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의 열망을 이용한 마케팅이다.

그러나 진짜 원조는 엉뚱한 곳에

그렇다면 어느 주가 진짜 원조일까? 정답은 '아무도 아니다'이다. 미국인들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햄버거의 진짜 원조는 아시아, 정확히는 몽골 제국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리전문가이자 'What's Cooking America'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린다 스트래들리에 따르면,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했던 몽골 기병은 말 위에서 수 십일 동안 먹고 자고 해야 했다. 말 안장에 깔고 앉아 보관했던 갈아만든 쇠고기 패티는 이들에게 훌륭한 전투 식량이었다.

이들에 짓밟혔던 모스크바는 몽골인들의 음식을 '스테이크 타타르(몽골의 러시아식 이름)'라 부르면서 13세기 이후 이를 빵에 넣어 즐기기 시작했다.

이 음식은 당시 유럽의 가장 번화한 항구 중 하나였던 독일 함부르크시로 전해져 '함부르크 스테이크'가 되었다. 미국의 건립 이후 대량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계 이민자들은 고향의 음식을 영어식으로 햄버거라 불렀다.

1000년의 역사를 가진 햄버거의 원조를 미국인들은 100여년 전의 허술한 자기네들만의 족보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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