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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해군 묘. 왕이었지만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하에 잠들어 있는 광해군은 권력을 어떻게 생각할까
ⓒ 이정근
조선왕실에는 세 가지 묘제가 있다. 능과 원과 묘다. 왕릉(陵)은 왕과 왕후가 모셔져 있는 곳이며 원(園)은 왕의 사친과 세자와 세자빈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묘(墓)는 왕위에 있었지만 왕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연산군 묘와 광해군 묘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묘제에도 예외가 있다. 왕위에 등극하지 않았지만 왕릉으로 존칭되는 능이다. 세조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자로 책봉되었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스무 살 한창 나이에 요절한 의경세자는 그의 아들 성종이 등극하자 덕종으로 추존되고 그가 잠들어 있는 곳도 경릉으로 격상되었다. 서오릉에 있다.

또한, 우리가 사도세자로 알고 있는 장헌세자도 이에 해당한다. 세자에 책봉되었지만 아버지 영조에 의해 스물여덟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혜경궁홍씨)와 아들을 두고 뒤주에 갇혀 죽어야 했던 사도세자.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자 장조로 추존하고 융릉으로 격상했다. 아들 정조의 건릉과 함께 경기도 화성에 있다.

▲ 덕릉마을 표지석. 덕흥대원군 묘를 덕릉이라 부르게 했던 선조의 마음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 이정근
왕위에 오른 아들의 효심으로 왕릉이 되었지만 아들이 죽은 후 원래의 위치 묘로 내려온 능도 있다. 덕릉이다. 중종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왕위 계승권에서 명종에 밀려 초야에 묻혀있던 덕흥군은 명종에게 후사가 없어 그의 아들이 선조로 즉위하자 덕흥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

왕위에 오른 선조는 효심이 넘쳐 재위기간에 아버지의 묘를 비공식적으로 능으로 격상했지만 선조가 죽자 다시 묘가 되었다. 덕흥대원군으로 불리는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여 종묘(宗廟)에 봉안하고 능으로 불러야 순서가 맞는데 조일전쟁(임진왜란)을 겪은 그 당시 정치 환경이 그러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연 많은 조선 왕실의 능과 묘 중에서 역사적으로 복권되어 묘가 능이 된 곳이 있다. 단종 비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사릉(思陵)이다. 돈령부판사 송현수의 딸로 태어난 정순왕후 송씨는 열네 살 어린 나이(1454년)에 왕비로 책봉되었지만 불과 일 년 만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쿠데타로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 영월에서 죽자 정업원에서 홀로 여생을 보냈다.

▲ 사릉(思陵). 단종 비 정순왕후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 이정근
정순왕후가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묻힐 곳이 없었다. 조선 팔도는 넓었지만 그의 몸 하나 받아줄 곳이 없었다. 단종 복위를 꾀하다 사육신을 비롯한 수많은 선비들이 희생되었으니 누구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세상인심이 그런 것이다. 수양대군이 정난의 정변을 일으켜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을 때 민심은 흉흉했고 선비들은 분개했다. 사육신을 비롯한 생육신 그리고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이 희생되자 위축되었다.

보다 못한 정씨가(家)에서 나섰다.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시집이다. 여산 송씨 집안에서 태어나 전주이씨 집안으로 시집갔지만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정씨가(鄭氏家)의 선영에 묻힌 셈이다. 이로부터 177년 후, 숙종 시대에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되면서 이름 없는 묘로 불리던 정순왕후 묘가 사릉(思陵)으로 불리게 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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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