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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편을 맞아 새롭게 등장한 퀴즈쇼, KBS2 김용만의 <1대 100>.
ⓒ KBS

동서고금, '퀴즈쇼' 형식의 TV 프로그램들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리며 많은 인기를 누린다.

퀴즈쇼의 묘미는 크게 두 가지다. 불특정 일반인에게 보통이라면 꿈꾸지 못할 엄청난 '대박의 꿈'을 실현시킨다는 점. 그리고, '천박'한 몸놀림이나 우연한 해프닝이 아니라, 고상한 '지적능력'을 통해 꿈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 '지적능력'과 '대박의 꿈'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마술처럼 작용하여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퀴즈쇼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물론, 그러한 지적능력의 소유자와 자신의 상식을 간접적으로나마 견줄 기회를 제공한다.

동서고금 막론한 인기프로, 그러나

제작자는 이러한 기본원칙에 다양한 형식을 추가해 가족 구성원 전체를 시청자로 아우를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일까. 과거 MBC 임성훈의 <생방송 퀴즈가 좋다!> 이후 주춤하던 대형 퀴즈프로그램들이 개편을 맞아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KBS2 김용만의 <1대 100>이나 SBS의 이경규의 <퀴즈 육감대결>을 비롯해, 4월 20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MBC <도전! 퀴즈 원정대>, 퀴즈쇼 형식을 빌린 심리게임쇼인 케이블 방송 tvN의 <신동엽의 YES or NO> 등이 그것.

그들은 대부분 억 단위를 넘나드는 최고상금과 막강한 인기와 입담을 구가하는 MC진, 그리고 과감한 형식의 대형세트장과 번쩍이는 조명으로 시청자와 참가자들을 동시에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퀴즈쇼에서 '퀴즈'는 더 이상 프로그램의 필수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퀴즈쇼가 과거처럼 퀴즈를 통한 지적 오락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심리적 스릴감과 상금 대박의 꿈에 그 초점을 과다하게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퀴즈쇼'엔 '퀴즈'가 없다

방송 3사 퀴즈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KBS2 김용만의 <1대 100>의 경우 네덜란드 엔데몰사의 포맷을 가져온 것으로, 참가자 1인이 각 분야의 전문인과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100인과 겨뤄 퀴즈를 푸는 형식의 대형 퀴즈쇼이다.

그러나 참가자들의 지적 능력을 견줘볼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퀴즈 선택지 대신 일방적인 문제 제시와 협소한 문제 범위 때문에 아쉬움이 생긴다.

또 <1대 100>에서 참가자와 100인이 문제를 푸는 시간은 얼핏 봐도 프로그램 방영시간 전체의 일부에만 국한돼 있다. 나머지 시간은 참가자와의 인터뷰나 MC의 농 섞인 입담과 연출이 대신한다. 이러한 점은 앞서 말했듯 퀴즈쇼에서 퀴즈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 퀴즈보다는 토크에 초점을 맞춘 SBS <퀴즈 육감대결>.
ⓒ SBS
일본 후지 TV에서 판권을 사들여, 일본 예능 프로그램 <헥사곤>의 포맷으로 제작된 SBS 이경규의 <퀴즈 육감대결>의 경우 스스로 퀴즈 버라이어티 '토크쇼'를 표방한다.

퀴즈를 풀고 맞히는 것보다 출연자 6명의 심리게임의 측면이 훨씬 강해 퀴즈쇼라기보다는 일반 토크쇼에 가까운 모습이며, 퀴즈는 그들 쇼를 돋워주는 하나의 요소로만 작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 NBC의 인기 TV쇼 < Deal or No Deal >에서 포맷을 가져온 tvN <신동엽의 YES or NO >에서 극대화된다.

이 프로그램의 경우 퀴즈 자체가 완전히 부재되어 있는 형식을 따른다. 참가자는 10원에서 1억원까지 적혀있는 최초 26개의 상자 중에서 하나를 택해 최대 금액 1억원을 갖기 위해 최초 선택한 상자 하나를 계속해서 가져갈 것인지 교환할 것인지, 아니면 tvN 제작자 측에서 제시하는 협상금액을 선택할 것인지 '예, 아니오'로 대답만 하면 된다.

오락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최근 퀴즈쇼에서 참가자가 크게 외치는 퀴즈의 정답과 그로인해 그가 가져가는 상금의 획득은 그 원천이 과거처럼 개인의 지적 능력보다는 '운'과 '선택'에 맞추어져 가고 있다.

시청자들이 퀴즈쇼를 통해 느끼던 간접적인 지적 능력 대결의 시간도 자꾸만 들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

그나마 남아있는 퀴즈의 수준도 현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분야의 시사 상식이나 학문·역사·외국어·정책 등에 관한 상식 대신 난센스 형식의 수수께끼가 그것을 대신하는 추세라 더 안타깝다.

퀴즈쇼 프로그램 제작 목표가 '전 국민의 상식 증진'이 아닌 이상 그러한 오락성을 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오락성이야 사실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겨우 천만 원입니다, 더 도전하시겠습니까?"

번쩍거리는 세트장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MC가 카메라를 향해 크게 소리친다.

"이제 상금은 천만 원입니다. 더 도전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방청객들은 어찌할 바 모르며 위축되어 있는 참가자를 향해 더 큰 소리로 말한다. "조금 더! 조금 더!, 도전해! 도전해!"

언제부터인가 퀴즈쇼에서 저러한 풍경은 이젠 꽤 익숙해져 있다. 상금과 대박의 꿈은 일반 시청자들을 퀴즈쇼의 참여자로 이끄는 동시에, 참가자의 상금에 관한 결정적 선택에 기여하게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상금만이 모든 것인 듯 보이는 모습은 가히 경계할 만한 수준이다. 과거 최대 천만 원가량이던 퀴즈 상금은 이제 억 단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퀴즈쇼에서 받은 상금의 몇 %를 의무적으로 기부하던 관행 역시 어느 순간부터 흐지부지 사라졌다.

따라서 이제 퀴즈쇼가 제공하는 상금에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그래서인지 퀴즈 프로그램 진행 중에 참가자가 스톱을 외치며 '도전 포기'를 말하려 하는 것을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실제로 누군가 거액의 상금을 획득하게 되면, 그가 어떤 문제를 맞혔나 혹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보다는, 그 상금의 금액이 얼마였고 어떻게 그 돈을 사용했는가에 더 관심을 쏟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MBC <장학퀴즈>에서 느꼈던 검은 교복의 빡빡머리 고등학생의 결의 가득 찬 눈빛이나 성공 이후 눈물을 흘리며 학우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던 진한 감동을 찾아 볼 수 없음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마치 도박 같은 퀴즈쇼에서는, 장담하건대 결코 진심 어린 눈물이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장학퀴즈>가 그립다

▲ 참가자가 '예, 아니오'라는 답으로만 진행되며, 최대상금 1억원을 자랑하는 tvN <신동엽의 YES or NO>.
ⓒ tvN
일반적인 퀴즈쇼를 거부하고 새롭고 자극적인 포맷을 해외에서 사들여서라도 방영을 강행하는 방송사 측의 그 나름의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시청자들의 경향도 탐구적 학문 경향의 퀴즈보다는 가볍고 오락과 스릴을 느끼는 퀴즈 쪽에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퀴즈쇼가 지켜야 할 원칙은 최소한 고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퀴즈쇼는 무엇보다도 '퀴즈'가 주가 되어,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가 함께 풀 수 있어야 한다. 퀴즈쇼 자체가 예능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식을 통해 진행되는 프로그램인 만큼 시청자가 습득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오락성과 공익성이 공존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운에 기대어 일확천금을 추구하도록 조장하는 게 방송사에서 나서서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티뷰기자단 기사입니다.


태그:#퀴즈쇼, #1대 100, #퀴즈 육감대결, #YES OR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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