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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농촌학교의 전경, 넓은 운동장에 뛰놀 아이들이 없다
ⓒ 정근영
▲ 어느 도시의 초등학교. 1500명이 넘는 학교의 좁은 운동장, 아이들이 뛰놀 곳이 없다.
ⓒ 정근영
나는 1973년 경남 합천군 쌍백면 쌍백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교직에 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34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제자들의 초대를 받아 초임지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당시로서도 낡은 건물이 있었지만 쓸만한 교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사라지고 없었다. 연못도 석가산(인공으로 만든 돌산)도 없어지고 교실 앞에서 짙은 그늘을 드리우던 나무도 없어졌다. 그래도 이런 변화야 조금 아쉬운 맘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 좋지 않은 변화는 학생이 너무 많이 줄어든 것이다.

1970년대 그때만 해도 전교생 1500명이 넘는, 합천군에서는 가장 큰 학교였다. 그러던 학교가 30여년이 지난 지금 전교생이 53명으로 줄어들었다. 더구나 1학년은 1명도 없다고 한다. 한 면에 하나뿐인 유일한 초등학교 전교생이, 내가 이 학교에 근무할 적의 한 학급 숫자보다도 훨씬 적다. 그렇지만 당시보다 많은 것도 있다. 일반직이다. 학생이 1500명이 넘을 당시에 기능직 2명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원 외 일반직의 숫자가 7명이다.

70년대 당시는 이른바 전달부라 해서 기능직이 2명 있었다. 합천군 안에서 한 학교에 기능직이 2명 있는 학교는 쌍백초등학교가 유일했다. 당시는 교장 교감 외에 교무부장과 연구부장은 담임을 맡지 않고 교무를 처리했다. 유령 학급을 만들어 놓고 담임을 하는 것처럼 위장했지만 사실은 학급 담임을 맡지 않고 교무 처리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교생 53명의 학교에 행정직이 2명이나 되고 기능직이 4명, 교무보조가 1명이다. 오늘날 농촌 학교를 보면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교육 여건이 좋아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않은 데 문제가 있다. 전교생 53명에 아동 교육을 직접 맡지 않고 지원하는 행정직 등(교장, 교감 포함)이 7명이나 된다. 예전엔 담임교사 한 사람이 맡았던 일을 18명이 맡고 있는 셈이다.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학생 1명이 한 학급이라면 문제가 많다. 친구는 어떻게 사귀고 다른 사람과 교류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오늘날 학교 공부는 토론 중심으로 단체 활동 위주로 되어 있지 않은가. 학생 1명을 한 학급으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친구들과 협동하며 어울려 살아야 할 중요한 어린 시절을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야 하는 그 아이가 불쌍하지 않은가. 이것은 제도가 한 아이를 따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의령군 대의초등학교는 예정되어 있었던 신입생 하나가 다른 학교로 전학(?)해 가는 바람에 학생은 없고 담임교사만 있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작은 학교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 예산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농촌교육을 더욱 황폐시킨다.

쌍백초등학교의 이웃에 있는 삼가초등학교는 어떤가. 삼가에는 삼가초등학교 말고도 외토초등학교, 봉성초등학교, 자양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 학교는 모두 차례차례 폐교가 되고 이제는 삼가면에서 삼가초등학교가 유일한 초등학교이지만 전교생은 242명밖에 안 된다. 예전에 삼가면에 4개의 초등학교가 있을 1969년에 삼가초등학교의 전교생이 2248명에 41학급이나 되었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오늘날 농촌교육은 황폐 그 자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농촌 학교, 도시에 사는 동문들이 귀향하여 축제를 하고 있다
ⓒ 정근영
▲ 농촌 학교, 도시 아이들도 도농 교류로 이런 푸른 숲속에서 맘껏 뛰놀게 해야 한다
ⓒ 정근영
▲ 농촌 학교의 정원, 평소엔 아이들이 없어 쓸쓸하기만 하다
ⓒ 정근영
오늘날 농촌은 한 군의 학생을 다 보태도 도시 학교의 한 학교보다 학생 수가 적다. 그런데도 수십 개의 학교가 있고 또 교육청까지 있다. 지금 농촌에는 교육행정이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두 명의 학생이 한 학급을 이루고 20-30명의 학생이 한 학교를 이루게 해서 교육행정기관을 존속시키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농촌 교육이 살아나고 농촌이 살아난다면 할 말이 없을 테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이런 교육행정이 농촌 교육을 황폐하게 하고 농촌 학생을 고통 속으로 빠트린다는 데 있다.

더구나 이렇게 해서 낭비되는 국가 예산은 실로 천문학적 숫자가 될 것이다. 교육예산이 이렇게 낭비됨에 따라 농촌 교육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 교육 전체가 황폐하게 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농촌 교육을 살리고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1면 1초등학교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농촌 학교를 통폐합해서 교육여건을 더욱 좋게 만들어야 한다. 고급의 아파트형 기숙사를 지어 학생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여타의 교육시설도 세계 최고로 만들어 농촌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아울러 농촌 학교와 도시 학교를 아우르는 복합형 학교로 만들어 도시 학생과 농촌 학생을 일정기간 교류하면서 농촌학생들에겐 도시를 도시학생에겐 농촌생활을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도시 학생에게 농촌 생활을 체험하게 하는 것은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도시 아이들이 어릴 적에 농촌에서 양질의 교육과 농촌 생활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 도시 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데도 차량 통행에 밀려 제지를 받아야 한다
ⓒ 정근영
▲ 도시 학교 아이들의 등교시간
ⓒ 정근영
지금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농산어촌에서 자연과 어울려 공부하고 농촌을 경험한 아이들 가운데는 커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싶은 이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아이들이 나오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농촌 교육이 살아나고 농촌이 살아나게 된다.

도시학교에서 교육행정직에 근무하던 A씨는 몇 해 전 명퇴를 하고 지금은 농촌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면서 연간 1억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A씨는 농촌생활이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진작에 농사를 지었을 것을 하며 아쉬워한다고 한다. A씨의 일화에서 이 나라 농촌의 새로운 희망을 본다.

덧붙이는 글 | 정근영 기자는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을 지냈습니다.


태그:#도농복합형학교, #학교통폐합, #합천 쌍백초등학교, #농촌교육, #농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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