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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대륙' 호주의 넓은 초원에서 사육되고 있는 비육우들. 한국의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에 호주 축산농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광우병 파동으로 2003년 12월 이후 수입이 중단됐던 미국산 뼈없는 쇠고기 6.4톤이 지난 23일 항공편으로 수입됐다. 그 뉴스를 접한 한국축산농가 농민들의 긴 한숨소리가 호주에서도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한국 농민 말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전면적인 시장개방으로 바짝 긴장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호주축산농가 농민들이다. 농민뿐만 아니라 도축업계와 쇠고기 수출회사들도 초긴장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목장들이

호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은 나라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몇날며칠을 자동차로 달리면서 바라보는 차창 밖의 풍경은 끝없는 초원으로 이어진다. 그야말로 푸르고 푸른 풀밭이다.

지구상의 6대주 중에서 대륙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나라는 호주밖에 없다. 또한 호주는 거대한 섬이면서 대륙이어서 '섬대륙(The Island Continent)'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한반도 면적의 35배이고 유럽면적의 두 배, 알래스카를 뺀 미국과 거의 비슷하다.

반면에, 호주의 인구는 2천만 명을 약간 웃도는 정도다. 인구밀도 또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여서, 1㎦에 대략 두 명 정도가 살고 있을 뿐이다. 텅 비어있는 대륙인 셈이다.

텅 빈 호주대륙에는 사람 대신 소나 양들이 살고 있다. 띄엄띄엄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는 소와 양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평화가 느껴질 정도다. 그런 천혜의 환경이 호주축산농가의 경쟁력을 갖게 해준다.

호주는 자국산 쇠고기에 '클린앤 세이프(Clean&Safe)'라는 마크를 붙여서 한국 소비자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호주 쇠고기를 사먹으라고 홍보해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끝간 데 없이 이어지는 그림 같은 목장들에서 생산된 쇠고기에 '호주 청정우'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광우병 파동으로 시달려온 미국산 쇠고기와 차별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재상륙

그러나 재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시판되기도 전에 호주산 쇠고기의 가격이 20~30% 정도 크게 하락하고 재고 물량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3년, 캐나다와 미국에서 연이어 광우병이 발생하자 한국정부는 두 나라의 쇠고기 수입을 중단시켰다. 캐나다산 쇠고기는 2003년 6월부터, 미국산 뼈없는 쇠고기는 2003년 12월부터 수입이 금지된 것.

그때까지 한국에 쇠고기를 수출하는 나라의 순위는 미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순이었다. 그런데 미국과 캐나다가 아웃되자 한국의 수입쇠고기 시장은 지난 3년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의 독무대가 됐다.

그러나 수의과학검역원의 검역실적 자료를 보면, 2004년 호주산 쇠고기 수입은 2만톤 증가하는데 그쳤고, 이마저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결국 호주산이 아닌 한국산 쇠고기가 미국산의 빈 자리를 대체한 셈이다.('한미FTA의 쟁점과 대안적 발전모델 모색' 포럼의 이해영 한신대 교수 발제문 참고)

그럼에도 미국산 수입재개에 이어, 23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제10차 한국-캐나다FTA 협상결과에 따라 캐나다산 쇠고기까지 수입이 재개되면, 북미산 쇠고기가 한국 수입쇠고기 시장을 재탈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산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미국의 광우병 파동 이전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미국산 쇠고기는 관세의 영향으로 호주산보다도 더 싸지게 된다. 한미FTA 합의안을 보면, 한국은 미국에 현행 40%의 쇠고기 관세를 협정 발효시점부터 단계적으로 낮추어 15년 뒤에 철폐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5월에 열리는 국제수역사무국(OIE, 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총회에서 미국과 캐나다산 쇠고기에 대해 '광우병 위험 통제국가' 판정을 내릴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소비 급증은 불 보듯 뻔하다.

호주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호주산 쇠고기가 지난 3년간 한국시장을 굳건히 지켜온 것은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주는 지난 2006년 5월에 OIE로부터 광우병 안전 1등급 국가 인증을 획득했다.

호주는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가축안전 및 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한 호주검역청(AQIS)에서 수출식품에 대해 철저하게 관리 감독한다.

호주검역청에서 발급되는 검역증은 국제품질 및 위생보증으로 인정될 정도의 공신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검역증을 획득해한 업체만 쇠고기수출이 가능하다.

기자는 지난 2004년에 2개월 동안 호주축산농가와 도축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취재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기자는 호주정부와 산업표준기구인 오스밋(AUS-MEAT)이 매우 엄격한 규정을 지키게 만든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실례로, 정부에서 파견한 수의사들이 도축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많은 경비가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가차 없이 생산라인을 스톱시켰다. 머리카락은 고사하고 소의 털이 조금만 발견되어도 그날의 작업은 끝이나 다름 없었다.

바로 이런 대목이 호주축산업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자 그대로 '호주청정우'의 진면목을 제대로 홍보해서 가격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있는 미국과의 한 판 승부를 벌이는 것.

"우린 호주 청정우만 믿습니다"

기자가 최근에 시드니에서 열린 '로열 이스터 쇼(Royal Easter Show, 호주의 가을인 부활절 전후로 열리는 농민축제)' 현장에서 만난 호주농부들은 한국농민들만큼이나 시름에 가득 찬 모습이었다.

로이터통신은 "호주 농민들은 지난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었던 2002-3년 가뭄을 견뎌낸 다음 그것보다 더 심한 2005년 가뭄을 맞아 댐은 바닥을 드러냈고 농토는 햇볕에 구워진 채로 갈라졌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어서 "일부 농민은 몇 년 동안 수입이 전혀 없었고, 그 중의 많은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서 농촌을 떠났다"고 보도하면서 "비육우와 양을 키우는 농부들은 값어치가 나가는 송아지를 먹일 물과 사료가 없어서 도살장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로열 이스터 쇼 현장에서 만난 축산농가 농민들은 "한국시장의 희망을 내려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호주내륙 머지에서 온 안토니 마킨씨는 "우린 호주 청정우만 믿는다, 지상에서 그보다 좋은 품질의 쇠고기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는 '호주 청정우'라는 단어를 정확한 한국말로 발음했다.

"호주는 한국 시장만을 위한 비육우 키운다"

▲ 호주축산공사 피터 위크스 연구원
ⓒ 윤여문
호주축산공사에 근무하는 피터 위크스 해외담당 매니저와 알리스타 럭스톤 국내담당 매니저의 얘기를 들어봤다.

- 호주당국이나 호주축산업자들이 호주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호주에서 키우는 가축은 1800년대 초기에 유럽으로부터 도입됐다. 질병이 없는 가축만이 유럽으로부터 긴 여행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러한 여건으로 인해 호주의 가축들은 다른 지역의 풍토병으로부터 매우 효과적으로 격리될 수 있었다. 또한 엄격한 통관 및 검역절차와 가축에 대한 광범위한 방역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용해서 오늘날과 같은 건강한 식육산업을 이루게 됐다."

- 호주산 쇠고기가 미국산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발병한 광우병이 호주에서는 단 한 차례도 발생한 적이 없다는 것으로 호주산 쇠고기의 안전성은 증명됐다. 그리고 호주축산농가에서는 한국시장만을 위해서 비육우를 키운다. 미국은 해외시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이상 피터 위크스)

-호주산 비육우에는 풀만 먹고 자라는 소가 있고 곡물을 먹여서 키우는 소가 따로 있는데.
"한국과 일본 등지로 수출하는 쇠고기는 일정기간 곡물을 먹여서 키운다. 곡물을 먹이는 이유는 풀만 뜯어먹은 소의 고기는 육질이 질기고 고소한 맛이 없어 동양인의 입맛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육우는 보통 1년 정도 키워서 도축을 하는데, 도축하기 두 달 전부터 곡물을 먹인다. 그러면 살코기에 마블이 생겨서 차돌박이용 쇠고기를 생산할 수가 있다. 이건 순전히 한국과 일본시장을 위한 사육방식이다."

- 한때 유럽과 미주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이유가 곡물을 먹일 때 동물의 뼛가루를 섞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호주에선 순수하게 곡물만 먹이나?
"바로 그 대목에 호주축산업의 성공요인이 숨어있다. 싼 곡물을 먹이면 단기적인 수익은 늘어나겠지만 호주에선 그걸 포기했다. 수출용 곡물비육우의 위생 및 생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서 사료와 용수의 안전성, 수의학적 치료, 살충제 잔류검사 등을 철저하게 한다."(이상 알리스타 럭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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