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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사북사태를 다룬 동아일보 기사
ⓒ PDF파일(캡처)
▲ 동아일보에 실린 사북사태 내용
ⓒ PDF파일(캡처)
"건설정부는 현재 30개에 이르는 탄광을 오는 99년까지 10개만 남기고 폐쇄하고, 주요 탄광지역을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해 스키장·골프장 등 위락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할 방침이다. 통상산업부는 5일 현재 7백40여만t인 연간 석탄생산량을 99년까지 4백30만t으로 줄이기로 하고 이러한 석탄산업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전국 30개 탄광 가운데 99년까지 △장성 도계 화순 등 석공 탄광 3개 △동원 삼척 경동 한보 등 민영대탄광 4개 △의령 만호 등 민영중소탄광 3개 등 10개를 제외한 20개 탄광이 폐쇄된다. 정부는 내년부터 가격보조, 발전용탄 배정 등 지원을 이들 10개 탄광에 집중할 계획이다." - 한겨레(1995년 4월 6일)

1989년 석탄합리화계획이 시행되면서 석탄산업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1988년 347개이던 탄광 중 93년말 이후 살아남은 탄광은 44개에 불과했다. 6만2천여명이던 광원도 94년말엔 1만5천여명으로 줄어들었다.

강원도 속초 태생이던 영화감독 박광수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을 극장에 내건 게 이듬해인 1990년이다. 지금은 농업이 죽니 사니 하지만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넘어오는 기간 그 몫은 석탄산업의 것이었다.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강원 정선군 사북읍에서 벌어진 '사북사태'는 그런 갈등의 시발점이었다. 어용노조와 임금 소폭 인상에 대한 항의로 일으킨 이 사태에서 경찰관 1명이 숨지고 160여명의 민간인과 경찰이 부상을 당했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관련 인물 31명을 구속하고, 50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총 81명을 군법회의에 넘겼다.

흔히 '막장인생'이라는 말로 표현되듯 이들은 도저히 물러설 곳이 없는 삶을 살았다.

"스물한 살 때부터 27년째 광산 일을 해온 중앙개발 광원 김정경씨의 얘기는 그런 처지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배운 기술이라고는 땅 파는 것밖에 없어 도시로 나가 날품이라도 팔아보려 해도 당장 방 한 칸 얻을 돈이 없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서 어떻게 먹고 살란 말입니까." - 한겨레신문(1994년 12월31일)

불과 10여년 전 일이다. 하지만 벌써 탄광산업은 추억이 됐다. 우리나라에 남은 연탄공장 몇 개, 폐철로를 활용한 관광열차 등이 가끔씩 뉴스가 될 뿐이다. 그 와중에 얼마 전 큰 칼을 목에 쓰고 죽비로 자신을 수백대씩 때리는 시위를 하는 전 강원랜드 복지재단 상임이사 성희직(50)씨의 사연이 뉴스면을 장식해, 그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성씨는 광부 출신으로 3선의 강원도의원(민중당)을 지냈다. 1991년 당시 지자체 선거에서 민중당 출신으로 유일하게 광역의원을 지내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80년대에서부터 90년대 그렇게 강원도 탄광지역은 진보세력의 주요 거점이었다.

내리막 석탄사업, '지키느냐' '활용하느냐'

▲ <훌라걸> 1965년 혼슈 지방의 최대 탄광촌 토키와 탄광이 배경이다.
ⓒ 미디어2.0
<훌라걸>(시라이시 마미 글, 민경욱 옮김)은 1965년 혼슈 지방의 최대 탄광촌 토키와 탄광이 배경이다. 당시 일본에선 이미 대규모 석탄산업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다시 아들에게 곡괭이를 쥐어주며 석탄산업을 숙명이라 생각하며 일해 온 이들에게 석탄산업 폐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 지역에서 일하다 이미 석탄산업은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하고, 살 길을 찾아 떠난 뒤, 하와이안센터라는 구상을 갖고 다시 찾아온 요시모토는 지역민들에게 배신자다. 그가 데리고 온 하와이안댄서 강사 도모카도 지역민들에게 망측한 존재일 뿐이다.

주민들은 하와이안 댄서가 벌거벗고 추는 스트립 댄서나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요시모토의 구상은 당연히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책에서 모든 어른들은 선탄산업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책이 끝날 때까지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확고한 광부 요지로가 하와이안 댄서 강사 마도카를 사랑한다. 광부의 딸인 사나에는 이 지긋지긋한 삶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기미코는 사나에의 가장 절친한 친구다.

이 중 가족을 부양하며 학교조차 다닐 수 없었던 사나에는 하와이안 댄서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

"일단 손톱에 석탄이 들어가면 아무리 씻어도 안 지워져. 비누로 씻어도 소용없어. 이런 손을 가진 열여덟 살짜리가 세상에 어디 있겠니?…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누구는 전통을 유지하고자 하고, 누구는 새로운 삶을 꿈꾼다. 결국은 삶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이 던지는 것은 화두는 '어떠한 삶이냐'다. 또한 이 책은 전통과 현대문명의 충돌과 조화를 다루면서, 여성의 숙명과 진보를 다룬다. 이 점에서 책에서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할 인물은 탄광을 지키는데 있어선 가장 강경파이면서 여자의 숙명을 말없이 받아들이는 지요의 행동이다.

▲ 영화 <훌라걸스> 흥행과 평단 양쪽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 훌라걸스
"탄광의 여자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탄광에서 일하는 남편을 돕는다. 실실 웃으면서 남자들에게 교태나 부리고 엉덩이를 흔들거나 다리나 벌리는 게 아냐!" - 지요의 말 중에서

영화 <훌라걸스>에 대해

소설 <훌라걸>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바로 최근 개봉한 영화 <훌라걸스>다. 요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아오이 유우(타나카와 키미코역)가 출연해 관심을 끈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일본에서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연말 영화상에서 5개 작품상을 수상한 <훌라걸스>는 '키네마준보' 2005년 최고 영화 선정, 2007년엔 일본 아카데미 11개 부문 수상 등 흥행과 작품성 양 부문에서 평가를 받았다. 제작자(이봉우)와 감독(이상일)이 모두 한국인이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 김대홍
결론적으로 탄광을 가장 떠나고 싶어 했던 사나에는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딸의 댄서일을 적극 막고자 했던 지요도 뜻을 이루지 못한다. 최고 댄서를 꿈꾸었던 마도카는 결국 이 시골마을의 댄스 교사로 눌러앉는다. 그렇다면 과연 꿈을 이룬 사람은 누구일까.

또 하나, 책엔 '프로'에 대해 논쟁하는 대목이 나온다. 탄광작업 도중 한 댄서의 아버지가 갱이 무너지면서 돌아가시는데, 그 날은 중요한 공연이 있는 날이다. 과연 '프로'라면 공연을 그만둬야 하는가, 웃음을 흘리면서 공연을 마무리해야 하는가. 1차산업인 석탄산업에선 필요 없었던 이 질문이 하와이안센터로 상징되는 서비스산업에선 필요하다.

그래서 과연 전통과 현대는 어떻게 결별하고 손을 맞잡았는지 궁금했다.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했던 그 용감하고 어린 주인공들은 과연 그 뒤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지은이는 독자의 그런 마음을 안 모양이다.

"기미코는 조반하와이안센터의 대성공으로 도쿄 연예계로부터 수많은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자신이 자란 토호쿠의 하와이에서 춤을 추다가 서른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 현재는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기미코의 오빠 요지로는 조반하와이안센터가 문을 연 10년 뒤인 1976년, 조반 탄광의 마지막 갱이 폐쇄될 때까지 자긍심을 가지고 광부로 계속 일했다. 그리고 마도카는 하와이안센터의 개장 이후 35년 동안, 이 도호쿠에서 댄스 교사를 계속하며 일흔을 넘긴 지금도 훌라댄스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1976년, 탄광은 명실상부한 '하와이'가 되었다" - 에필로그

훌라 걸

시라이시 마미 지음, 민경욱 옮김, Media2.0(미디어 2.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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