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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끌어온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미FTA 협상 타결내용을 각 분야별, 쟁점별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다섯번째 진단대상은 '농업'입니다. 이와 관련해 송기호 통상전문 변호사가 보내온 글을 네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이 글은 세번째입니다. <편집자주>
▲ 지난 2002년 1월 환경운동연합, 여성민우회 등 시민·환경단체 회원 30여 명이 식약청앞에서 GMO표시제를 완화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반대하는 긴급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예수의 제자 도마(토마스)는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듣자 "자신의 눈으로 예수의 손에서 못 자국을 보지 않고선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그 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말한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도마에게 손을 만져보게 하였고,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한다.

성경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때로는 보이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한미FTA의 농업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 그러니까 쌀·쇠고기·오렌지·포도와 같은 것들이 한미FTA 농업분야의 모두가 아니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것이 있다. 한미FTA는 한국 농업과 식료체계의 법ㆍ규제ㆍ정책에 대한 격렬한 공격이다.

미국이 협상 최후 순간에 관철시킨 '농업생명공학 양해서'를 보자. 이 양해서는 "미국이 '미국산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s)의 수입과 관련된 한국의 법(laws)·규제(regulations)·그리고 정책의 명료화(clarification)를 요구했고, 한국이 이를 다짐(confirm)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미FTA 있으면, 한국 '유전자변형생물체 규제법'은 있으나마나

양해서의 의미를 알려면 한국의 한 법률을 찾아 보아야 한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은 2001년 3월 28일 제정되었다. 그러나 아직 시행조차 되고 있지 않다. 왜 이 법률은 무슨 업보로 6년이 넘도록 알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걸까? 바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수입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률이 6년간 잠자게 된 외면상의 이유는 그 부칙에 한국이 '카르타헤나(Cartagena) 의정서'를 비준하는 날로부터 시행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을 규제하는 국제법 원칙을 최초로 밝힌 이 의정서는 한국이 2000년에 서명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이를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도 지극히 이례적이다. 세계화의 첨단국가인 한국은 왜 이 조약에 서명해놓고 7년이 되도록 비준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 현재 140개국이 이 의정서에 비준하였고, 북한도 2003년 7월에 했다.

왜 이렇게 이상한 일이 거듭 생겼을까? 오늘날 세계에는 환경과 농업을 바라보는 두 개의 패러다임이 전쟁을 벌이고 있다.

▲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은 지난해 8월 미국산 광우병소고기 수입반대 및 유전자 조작쌀 수입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나는 경쟁력 농업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농업도 결국 하나의 산업이며, 효율성과 가격경쟁력논리가 지배해야 한다고 본다. 농업을 제약하는 환경 문제, 혹은 농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문제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자연은 자본으로 대체할 수 있다.

바로 농업생명공학, 곧 유전자변형생물체가 그들의 핵심적 대안이다. 미국이 바로 이 진영의 대표이다. 미국은 앞의 의정서에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농업을 단순히 산업의 하나로만 보지 않는다. 농업의 목적은 단지 경쟁력에 있지 않다. 더 중요한 농업 과제는 우리 세대의 식료 수요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필요할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술과 자본이 자연의 역할을 대체하는 데는 근본적 제약이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해칠 수도 있다.

인간의 기술이 개발한 농약과 제초제가 생태계에 이로운 야생 곤충과 야생 식물을 멸종시켰고, 다수확 품종 개발은 수많은 다양한 종자들을 사라지게 했다. 그 결과 우리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도 필요한 생물다양성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한국의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이 6년 넘게 시행되지 못한 까닭은 바로 이 법률이 후자의 농업 패러다임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률은 그 제정 목적이 '유전자변형생물체로 인한 국민의 건강과 생물다양성의 보전 및 지속적인 이용에 미치는 위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제1조).

국내 환경영향평가 기준도 한미FTA가 좌지우지

▲ 2002년 유전자조작식품 수입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는 시민·환경단체.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만일 한국이 7년째 미루고 있는 카르타헤나 의정서를 비준하여, 위 법률이 기나긴 동면을 끝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국의 건강영향평가 및 환경영향평가('위해성 평가')에서 승인을 얻지 못한 미국산 유전자 변형 옥수수·콩·사료 수입이 금지된다. 미국이 한미FTA의 마지막 순간에 위의 양해서를 관철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양해서의 구체적 내용을 보기로 하자. 한국의 법령은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위해성 평가를 크게 시험 및 연구 용도로 수입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양분한다. 여기서 이른바 '식용ㆍ사료용ㆍ가공용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s-FFP)에 대한 영향평가라는 매우 민감하고도 중대한 문제가 있다.

예컨대 식용 용도로 유전자 변형 콩을 미국에서 수입할 경우, 콩의 100% 전량이 오로지 식용으로만 처리되지 못하고, 누군가에 의해 한국의 자연에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로 인한 위험성을 사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 콩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곧 토양 재배실험을 해서 그 위해성을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농림부 장관이 2002년에 제정한 '유전자변형농산물의 환경위해성평가 심사지침'에는, 식용·사료용이라도 원형상태로 국내 환경에 방출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환경위해성 평가를 하도록 되어 있다(제3조).

어려운 용어를 무릅쓰고 평가 기준을 소개하면, '토양 이화학성에 미치는 영향' '토양 또는 수계에서의 생존능력' '포자생성여부' '토양 유용미생물ㆍ주변 곤충ㆍ동식물에 미치는 영향' '식물병원균과의 유전물질 교환 가능성 여부' 등을 기준으로 위해성을 평가하도록 하였다.

한미FTA의 양해서는 바로 이러한 한국의 평가 기준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다. 미국은 한국이 식용 사료용 가공용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 이러한 '예정된 사용 용도에 관련되고 적합한(relative and appropriate to the intended use) 평가기준'에 따라 진행하도록 하였다(양해서 제1항).

이는 농림부 장관이 고시한 평가기준을 심대하게 제약하는 것이다. 왜 미국은 이를 관철시켰을까? 한국에 수출되는 미국산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절대다수가 식용ㆍ사료용ㆍ가공용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새로운 유전자 변형 작물이 출현하더라도, 이것이 기승인된 유전자변형작물의 '전통적인 교잡'에 의해 생산된 '후대교배종'일 경우, 그새 변형체로 인해서 인간과 동식물의 생명과 건강에 새로운 과학적 위해성이 창출된다고(introduce) 믿을 만한 이유가 없으면 한국이 이 새 변형체에 대해 위해성 평가를 아예 할 수 없도록 하였다(제2항).

이 복잡한 합의의 실질적 의미는 미국에서 새로운 교잡 변형작물이 출현하더라도, 이유없이 위해성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가입한 유엔 생물다양성 협약의 원칙인 사전방지원칙을 사실상 부인하는 것이다. 생물다양성 협약은 완전한 과학적 확실성이 결여되었다고 해서 생물다양성 보전 대책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였다.

그 밖에 심각한 조항들을 자세히 살필 여유는 없다. 예컨대 실제 유통단계에 적용되는 매우 중대한 표시제에서도, 한국의 법률과 규제가 미국이 예측할 수 있는(predictable) 것이어야 한다고 했는데(제3항), 이로써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져 유전자변형식품 표시의무제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미국이 한국의 표시제에 사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근거가 만들어졌다.

식품·농업정책에 미국이 상시 개입 가능

▲ 4월 1일 오전 11시 환경운동연합은 한미FTA 협상 저지와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를 요청하는 긴급퍼포먼스를 벌였다.
ⓒ 조한혜진
이러한 평가가 과장된 것일까? 그렇다면 양해서의 다른 조항, '미국산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교역에 장애가 생길 경우 한미FTA에서 상설화하기로 합의한 위생검역위원회(SPS)와 기술장벽위원회(TBT) 등에서 논의하도록 하고, 한국이 카르타헤나 의정서를 비준할 경우 미국산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수입을 불필요하게 방해하지(unnecessarily impede) 않기'로 한 조항을 같이 보기 바란다.

미국은 아직 6년간의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수면 상태의 한국 법률을 대상으로 이렇게 미리 성형수술을 하였다. 어마어마한 내공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한미FTA에서의 미국의 실력을 다 보지 못했다.

미국은 한미FTA 위생검역 협상에서 이른바 지역조항을 삽입하였다. 이에 따라, 비록 미국의 워싱턴 주에서 쇠고기 광우병이 다시 발생하더라도, 한국은 미국 전역의 쇠고기에 대해 통일적 위생검역조치를 취하는 것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워싱턴주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의 다른 지역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수입을 허용하라고 미국이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현재의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이와 관련된 조항이 있지만, 이는 다자간의 협의와 승인 절차 등 그다지 실효성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앞에서 잠깐 보았듯이, 미국은 아예 위생검역위원회(SPS)와 기술장벽위원회(TBT)를 상설적이고 정기적인 조직체로 관철시켰다. 이로써 유기농 식품의 인증 기준, 유전자 변형 식품의 수입 승인과 표시제도, 한국의 위생검역조치 등 한국의 농업과 식료체계 법률과 규제 및 정책 전반에 대한 미국의 상시적 개입의 틀이 제도화되었다.

한국을 WTO에서 처음으로 제소한 국가가 어디일까? 미국이다. 그러면 제소 대상이 되었던 정책은? 한국의 농산물 위생검역조치였다. 한국이 두 번째로 제소당한 사건에서의 제소국은? 미국이다. 그 대상 정책은? 식품 정책이었다.

이처럼 한미FTA는 한국의 식료체계의 제도와 정책을 미국 농업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미국의 실로 집요한 노력이 마침내 결실 맺는 감동적인 사건이다.

한미FTA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 지난 2월 농민 20여명이 서울 명동 입구에서 한미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직접 기른 무 등 농산물을 길거리에 펼쳐놓고 기습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국과 미국의 농업에는 세 가지 격차가 있다. 우선, 농지 면적의 자연환경적 격차가 있다. 또 미국이 1933년 농업조정법에서부터 지금까지 75년 동안 지속해 온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도('loan rate' 제도) 등의 제도적 격차가 있다. 여기에 한국 국가권력의 오랜 촌락 지배와 급속한 공업화에서 비롯된 인적 역량의 격차가 있다.

올해부터 이른바 90조원, 그러니까 2004년부터 2013년까지의 농업 투융자 예산 총액에 지나지 않는 119조원에서 지난 3년간 이미 쓴 돈을 빼고 약 90조원을 올해부터 7년간 투입하더라도 이 세 가지 격차를 한국 농업이 따라잡을 수 없다.

게다가 지금 한국 농업에게 필요한 것은 농업 내부의 기득권 세력과 관행을 온존시킬 90조원이 아니다. 이런 90조원이라면 반대한다. 한국 농업의 고유한 특성과 장점을 받아 키워 주는 식료체계와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농업담당 세력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른바 쓰레기 만두 사건이 터진 지 3년이 넘도록 한국은 아직 '식품안전기본법'조차 갖고 있지 않다. 농민이 농산물의 효능 효과를 소비자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나라가 한국이다.

농업 이외에는 먹고살 특별한 것이 없는 전북의 농민들이 전북지역 학교 급식에 지역 농산물을 우선 사용하는 방향으로 예산을 지원하자고 만든 조례를 중앙정부가 나서서 대법원에 제소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농협 조합원 총회와 이사회의 결의사항을 농림부 장관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그 전부를 취소할 수 있는 법이 있는 곳이 한국이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한 통신회사의 회사원이라면, 회사 이사회와 주총에서 결정한 내용을 정보통신부장관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전부 취소할 수 있는 격의 법이 있다는 것을 독자는 믿을 수 있겠는가?

한미FTA의 본질은 결코 쌀이나 쇠고기 같은, 보이는 것에 있지 않다. 한국 농업의 희망과 장래를 담보할 식료체계와 그 제도가 미국 농업을 위해 왜곡되고 꺾이는 것이 바로 한미FTA이다. 한미FTA는 한국 농업ㆍ식품법의 좌절이다. 이것이 내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


태그:#한미FTA, #밥상, #유전자조작식품,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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