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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자이 민간인 학살때 살해된 사람들.
ⓒ 김효성
나라가 분단된 것을 빼고는 그들에게는 부족할 것도, 더할 것도 없었다. 평화로운 농촌마을. 노인이 물소를 부려 논을 갈고 아이들이 논두렁을 마음껏 뛰어다녔던 마을. 전형적인 베트남의 마을의 모습이었다.

고자이(Go Day)는 베트남 중부 응아빈(Nghia Binh)성(현재의 빈딩성)의 떠이선현(Huyen Tay Son) 떠이빈 싸(Xa Tay Vinh) 의 안빈(An Vinh) 마을에 있던 작은 둔덕이었다.

안빈 마을에 한국군이 닥친 것은 1966년 2월 26일. 한국군은 마을 사람들 380명을 모아 불과 1시간만에 모조리 살육해버렸다.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고 한국군은 만행을 저지르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것은 뀌년시에 위치한 빈딩성 통합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빈안(안빈의 현재 이름) 지역 민간인 참살 보고서'의 고자이 지역에 관한 내용이다. 고자이 지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은 1988년 7월 7일에 씌어져 해당 현, 성의 인민위원회의 인증을 걸친 정부 기록 자료이다. 해당 자료를 더 살펴보자.

'고자이는 1966년 빈안 싸 에서 일어난 참살 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2월 26일 남조선 군대는 빈안 싸 각 농촌에서 농민들을 소집했다. 또한 근처 싸의 농민들도 소집한 후에 피의 살인을 저질렀다.고작 1시간 동안 그들은 모두 380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남조선 군대의 피에 목마른 야만성의 본질이 여기서 드러나게 되었다(중략)'

또한, 빈딩성 통합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집에는 고자이 지역 뿐만 아니라 빈딩성 전체에서 벌어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게다가 학살 일시, 장소 뿐만 아니라 민간인 희생자 수와 그 명단이 매우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자료집에 따르면, 빈딩성 내에서 공식 확인된 민간인 학살은 총 8차례로 이 과정에서 총 1581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 고자이 학살문건(빈딩성 통합박물관 소장)
ⓒ 김효성
빈딩성 통합박물관에서 자료정리업무를 맡은 흐엉(37)씨는 "이곳에 와서 이 자료를 본 한국인은 당신이 네 번째다. 처음 온 사람은 불과 한달 전에 온 구수정씨다. 이 자료가 당신과 당신의 나라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베트남 측의 정부기록이 명확한데도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은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기반성 부재와 베트남측 피해자의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9년 구수정씨가 <한겨레21>을 통해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밝힌 이후, 양국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지만, 한국 정부는 구두로 유감을 표시했을 뿐,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또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베트남의 유족들은 거의 대부분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에서 생업에 종사하느라 한을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있다. 게다가 베트남 정부는 공식적으로 투자액 수위를 다투는 한국과의 관계악화를 염두하여 민간인 학살문제가 당분간은 이슈화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관련된 모든 일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지난 2월 빈딩성 떠이선현에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국의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소속 회원 40여 명이 일주일간의 의료 봉사를 위해 이곳까지 날아온 것이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골분들을 위해 '봉사' 가 아닌 '사죄' 하러 왔다는 그들에게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김효성 기자는 베트남 중부에서 KOICA 협력요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싸(Xa)는 사회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Commune의 개념을 가진 행정구역이다.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응모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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