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민자의 날 행사 장면.

어제(13일) 펼쳐든 이 곳 한인 스포츠신문에서 눈길이 가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뉴욕 이민자의 날' 행사가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참가하는 한인단체들의 기자회견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민법 문제는 이라크전과 더불어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다.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행사는 아침 일찍부터 행사가 시작된다. 장소도 맨하튼 맨 끝, 자유의 여신상을 찾아가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배터리 공원(Battery Park)이다. 집에서 가자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릴 것 같다.

뉴욕 이민자의 날, 선두에 선 한국 풍물패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는 뉴욕이민자연맹(NewYork Immigrants Coalition)이라는 곳이다. 뉴욕 내 90여개 이민관련단체들의 연합기구이다.

이민자연맹의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장소를 이 곳으로 택한 것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엘리스섬이 미국 건국 초기에 이민자들이 들어오던 관문이었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주로 유럽계 이민이 들어오던 곳이다. 흑인들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쪽의 설리번섬, 아시아계 이민은 샌프란시스코의 에인절섬 쪽으로 들어 왔다. 에인절섬이나 설리번섬의 경우, 입국 심사과정의 인권침해는 악명이 높았다.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모여서 낮 12시까지 시청으로 행진을 하고, 시청 앞에서 집회를 가진 뒤, 시의원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펼치는 일정이다. '한국에서도 익히 보아왔던 동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전 10시. 여기저기서 모여든 이민자들로 공원 한 가운데 잔디밭이 북적거렸다. 다양한 언어가 적힌 피켓과 플래카드가 펼쳐지고 뉴욕이민자연맹의 상근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시아계 이민 중에 한인도 적지 않아서인지 한인들도 많이 보인다.

마침 생활한복을 입은 한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뉴욕 청년학교의 정승진 회장이다. 뉴욕이민자연맹의 실무책임자를 소개해주겠단다. 이번 행사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으란다. "어! 이거, 영어를 잘 못하는데…"라는 말이 막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데, 이 단체의 실무책임자가 한인이란다.

"그럼 한국말을 하나요?" "그럼요, 잘 하지요."

▲ 이민자의 날 행사에서 풍물을 치는 풍물패. 한 외국인도 흥에 겨워 풍물패 대열에 합류했다.
오호! 한인이 뉴욕이민자연맹의 실무책임자라….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홍정화씨를 소개받았다. 나중에 반드시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바쁜 그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다. 일단 사무실 전화번호 하나만 달랑 받아두었다.

행진을 시작하기 전에 각각의 이민그룹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짤막한, 정말 짤막한 연설들을 하고 행진대열을 갖추는데, 선두가 한인 풍물패다. 어느새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든 시위대는 풍물패의 뒤를 따라 시청으로 움직였다. 평일인 것을 감안하면 많은 인파다.

잠시 뒤 그라운드 제로에 서서 중간 집회를 했다. 여기에서는 SEIU(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서비스 노조에서 나와서 일종의 '연대사'를 했다. SEIU는 간호사, 빌딩 청소용역부, 운전사 등 공공서비스 영역의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조합이다. 미국과 캐나다·푸에르토리코 지역의 국제노조인데, 노조원이 180만명이라고 한다.

풍물패를 이끌고 있는 정승진 회장에게 물으니 이민자들의 취업이 많아서 아무래도 서비스 노조는 이민자들과 친숙하다고 한다.

19세기 미국 이민자, 그리고 2006년 한국의 이주노동자

잠시 틈을 보인 홍정화씨에게 물었더니 오늘 행사의 목적은 "시의원들을 대상으로 ▲이민자들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 ▲적절한 주거와 의료의 보장 ▲공공서비스에서의 언어지원 등의 핵심 요구사항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001년부터 시작된 '이민자의 날' 행사는 첫해 150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해가 갈수록 참가자가 늘어나서 올해는 10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다양한 인종이 참여하고 있지만, 얼핏 보기에도 라틴 계열이나 중국계와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 계열이 압도적으로 많다.

오늘 행사에서 뉴욕이민자연맹이 배포한 요구사항을 보면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안전하고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위험 상태 주택을 시급히 복구하게 하는 주택관련 규정 시행법을 제정해야 한다. 또한 사용 언어와 관계없이 모든 뉴욕시민에게 주택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평등주택 서비스 이용 법안'도 제정해야 한다.

둘째, 영어교실과 이민가정 및 이민노동자를 위한 법률서비스를 확충해야 한다.

셋째, 이민자와 영어학습자를 위한 공공교육체계를 향상시켜야 한다.

넷째, 이민자의 공공의료 혜택 이용 권리를 확립해야 한다.

이런 요구사항을 보며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갖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로 애꿎은 목숨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에게 행해졌던 비인간적인 대우를 들으면, 미국이 19세기와 20세기 초 이민오던 흑인들과 아시안들에게 하던 모습을 한국이 재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때만큼 흉악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이민자 정책이 그만큼 전근대적이고 원시적이라는 이야기다.

▲ 이민자의 날 거리행진 장면.
"우리는 지금 정의를 원한다"

행진 참가자들은 2시간여 뉴욕 거리를 행진하는 내내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We Want Justice)"고 외쳤다. "무엇을 원하는가(What we want)"를 선창하면 "정의(Justice)"를 "언제 원하는가(When we want)"를 선창하면 "지금(Now)"를 외쳤다.

앞서 요구한 정책들은 이민자들에 대한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의'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 앞에서 진행된 집회에서 표를 의식한 소수 인종 계 시의원들이 줄줄이 나와서 협력을 약속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의 이주노동자 정책을 다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태그:#이민, #이민자의 날, #미국, #이민법, #중간선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